사망자 159명.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로. 폭 5미터가 채 안 되는 좁고 가파른 골목.
1년 전 누구도 상상조차 못한 참사가 발생했다. 그날의 비극은 왜곡된 형태로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됐다. 자극적인 현장 영상, 근거 없는 뜬소문, 혐오와 비방. 이런 왜곡이 지난 1년을 가득 채우는 동안 시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켜야할 국가의 책임과 도의는 공직자들의 일관된 부인과 은폐 아래 희미해갔다. 애도는 메마르고 사회적 공기는 냉담해진다.
그럼에도 무언가는 꿈틀거린다. 설 자리를 무력하게 잃은, 그날의 실상을 객관적으로 증언할 목소리를 찾으려는 이들의 움직임이다.
올해 2월 재난참사를 기록해온 인권기록센터 '사이'의 작가들은 '재난참사인권 기록학교'를 열어 참사를 함께 기억하고 기록할 시민들을 모았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시민들은 작가기록단을 꾸리고 생존자와 유가족 곁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외면당해 온 그들의 이야기를 소중히 주워 담았다. 생존자와 유가족은 고통과 치욕에 시달리고 무력감과 분노에 몸부림쳤다.
'우리 지금 이태원이야'는 10‧29 이태원 참사 생존자와 유가족의 목소리를 담은 최초의 인터뷰집이다. 작가기록단은 약 9개월 동안 수차례의 인터뷰를 통해 이들의 애타는 마음과 트라우마, 참사 이후의 삶을 오롯이 기록했다. 참사에 누구보다 가까이 자리한 생존자와 유가족부터 지역노동자와 지역주민까지 그날의 재난을 둘러싼 구술을 통해 참사를 다각도로 재구성한다. 책은 총 3부로 구성됐다.
'몇백명이 손을 뻗고 살려달라 외치고' 있는 골목길 앞에 '진짜 난장판'만이 펼쳐질 뿐이었다. 1부 '그날 이태원에서는'은 참사 당시 현장과 이후 1년 동안 생존자들이 맞닥뜨리고 겪어낸 일들을 담았다. 그리고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그날의 시간을 붙잡고 놓아줄 수 없는 희생자 유가족들의 이야기도 함께 얹었다. 이들의 생생한 증언은 안전할 권리가 완전히 실종된 사회의 비극적 참상을 묵직하게 체감하도록 한다. 희생자를 떠나보낸 뒤 남은 생을 살아갈 수도 놓을 수도 없는 참담한 심경에도 그날의 진상을 규명하고자 외치는 유가족의 목소리는 더욱 먹먹하다.
2부 '너를 만나러 가는 길'에서는 동생, 언니, 누나의 빈자리를 맞닥뜨린 형제자매 유가족에게 집중한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 활동에서는 형제자매 유가족들의 역할이 두드러진다. 아직 청년인 이들은 깊은 슬픔에 허덕이면서도 황망해하는 부모들 사이에서 의견을 제시하고 중재자를 자처했다. 이들은 동기를 잃은 현재의 혼란을 견뎌내는 동시에 학업과 취업, 노동, 자립, 연애, 결혼, 육아 등 미래의 불안을 떠안고 살아내야 하는 어려움을 털어놓는다.
3부 '도시에 울려 퍼질 골목 이야기'는 희생자의 친구, 그리고 이태원 주민과 노동자의 구술을 기록했다. 이를 통해 사회적 재난으로서의 이태원 참사를 마주하고 '재난 피해자와 당사자는 과연 누구인가'라는 새로운 질문 앞에 선다.
이 책은 희생자와 이태원을 둘러싼 다양한 사람의 목소리를 통해 이태원 참사를 다각적이고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안내한다. 희생자의 마지막 숨결과 온기를 기억하는 연인, 가족을 자임할 만큼 절친했던 벗을 잃은 친구, 이태원이 삶터이자 일터였던 주민과 노동자가 되새기는 지난해의 그날은 이태원이라는 지역, 핼러윈이라는 문화, 애도라는 서사에 대해 우리가 지니고 있던 완고한 인식을 깨우치게 한다.
이 기록을 더 많은 이와 공유하고 같이 기억하는 일, 참사의 진상을 밝히는 행동에 함께하는 일, 부서진 세계를 공감과 연대의 끈으로 다시 묶어내는 일이 이태원에서 지금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348면,1만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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