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력이 자꾸 떨어진다고 70대 부인이 내원하였다. 계모임 날짜를 잊어버리고 있다가 친구가 전화 와서 그때서야 생각이 나고, 휴대폰을 어디다 두었는지 한참을 찾는 일이 잦아져서 치매가 아닌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몇 해 전 남편이 중풍으로 돌아가시고, 혼자 있으니 허전하고 남편이 내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뿐이라고 했다.
항상 둘이 산에 다니고, 같이 식사하고 친구도 필요 없고 둘이서만 지냈는데, 날이 추워지고 어두운 저녁이 다가오면 쓸쓸한 고독감이 밀려왔다. 이제 나를 돌봐줄 사람도 없는데 치매라도 걸리면 큰일이라서 나를 좀 고쳐달라고 눈물을 훔치신다.
시간의 강을 건너버린 인연과의 재회를 기다리고 기다리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이별처럼 돌이킬 수 없는 것이 세월이고, 이제 자신도 가만히 떠날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우울의 심연에 깊이 잠기면, 세상과 차단된 듯이 기억력이 떨어지고 시간도 모르고 방향 감각도 잃어버리기도 한다.
평소 하던 일도 잘 못해서 마치 치매로 오인할 수가 있다. 그래서 우울증으로 인한 인지기능저하를 가성치매라고 한다. 우울증을 잘 치료하면 인지기능이 완전히 회복된다. 평소 우울, 외로움, 사회적 고립감을 잘 해결하면 치매 발생률이 감소된다. 이처럼 마음이라는 소프트웨어를 관리하는 것은 '뇌'라는 하드웨어에 엄청난 영향을 준다.
기억력 저하를 보이는 경우는 건망증, 가성치매, 경도 인지장애, 치매 등 원인이 여러 가지다. 1000억 개에 이르는 사람의 뇌세포는 서로 손을 내밀어 시냅스를 형성하여 표면에 주름이 많이 잡히고 꽉 차있는 모양이 된다. 반면 쥐의 뇌는 시냅스 형성이 적어서 표면이 평평하다.
뇌의 노화가 진행되면 머리숱이 줄어들 듯이 뇌세포도 점차 줄어서 부피가 작아지고 싱크홀 처럼 푹 파인 공간이 생겨난다. MRI 로 뇌를 촬영해보면 뇌의 나이를 쉽게 알 수 있다. 기억의 입력을 담당하는 해마라는 부위부터 문제가 생기고, 바싹 마른 호두처럼 되고 쭈그러들어서 결국 치매로 진행된다.건망증과 치매는 다른 문제다.
건망증은 해마의 세포가 소실된 게 아니라 장기 기억으로 저장되지 못해서 생기는 증상이다. 너무 바쁘게 살면서 해야 할 일이 너무 많거나 멀티로 처리할 일이 쌓이거나 처리할 힘이 떨어져서 평소 하던 일도 힘겨워 질 때 나타난다. 건망증은 번아웃 증후군의 한 증상이다.
치매는 해마의 세포가 소실되어서 기억 자체가 입력이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같은 기억 저하를 보이더라도 원인이 무엇인지에 따라 치료법이 다르고 병의 경과도 다르기 때문에 잘 감별해야 한다.
외래 진료에서 어르신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병이 치매다. 치매는 뇌세포와 뇌혈관에 문제가 생기는 병이다. 이들의 손상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면 치매를 예방하는 길이 된다. 그럼 언제부터 치매 예방을 위해 노력해야 할까. 바로 지금이다. 치매는 나이 든 사람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수십 년에 걸쳐서 서서히 진행되기 때문에, 바로 오늘부터 마음과 몸을 잘 관리해 나가야 치매를 막을 수 있다.
우리는 얼굴이 동안인지 관심이 많다. 잠을 못자거나 신경을 많이 쓰면 기미도 생기고 눈 밑에 다크 써클이 생긴다. 피부와 마음 상태는 서로 밀접하다. 얼굴이 동안인 것처럼, 뇌도 동안처럼 젊은 뇌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얼굴의 주름살이나 탄력에 차이가 나듯이 뇌도 피부 이상으로 사람마다 차이가 난다.
어떤 것들이 우리 뇌 건강에 도움이 될까에 대한 연구들이 많다. 가장 중요한 방법 3가지를 소개하면, 식이 조절, 스트레스 관리 그리고 운동이다. 이 중에 가장 먼저 실천할 것은 운동이다. 운동은 신체를 건강하게 하지만, 몸을 움직이면 기분도 좋아져서 항스트레스 효과가 엄청나다.
치매에 걸리면 절대 안되! 라는 마음으로 강박적으로 운동에 매달리다 보면 부상도 입게 되고 스트레스가 가중된다. 그래서 10분을 하더라도 즐겁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작심삼일이 아니라 꾸준히 할 수 있는 게 더 효과적이다. 정말 실패하지 않을 수 있는 정도로 목표를 낮게 잡는 게 좋다.
일주일에 하루 10분 정도 걷기. 그 정도 운동으로 무슨 효과가 있겠냐고 하겠지만 성공 경험이 더 중요하다. 내 몸에 좋은 습관으로 남게 되고 소소하지만 실패하지 않고, 어느 날부터 하지 말라고 해도 운동 시간이나 강도가 점차 늘어나게 된다.
치매 예방에서 중요한 것은 인지 비축분(cognitive reserve)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빈혈이 있으면 철분을 충분히 비축해줘야 하듯이, 인지적인 자산을 늘여가야 한다. 예를 들면 틈틈이 강의도 듣고, 즐거운 활동이나 인문학적 공부를 하면 고무줄이 쭉 늘어나는 것처럼 뇌세포는 가소성이 있어서 뇌 깊숙한 곳에 오래 많이 저장할 수 있다.
평소 좋은 습관이나 배려, 아름다운 말투는 자동 기억으로 저장되어서, 젊은 날의 추억과 생기와 눈빛까지 모두 사라져 버려도 마지막까지 매너 있는 모습으로 남을 수 있다. 이런 이쁜 치매 환자분들을 진료하다보면 그 분의 가난했던 날들, 힘겨웠던 인연들과 삶의 궤적이 더욱 빛나는 것을 볼 때가 많다.
제게 오래 치료받아오던 치매 환자분께서 자신의 아들 결혼식에 의사가 축의금을 보내지 않아서 섭섭하다고 화를 내셨다. 엄마같이 의지하고 좋아했는데 짝사랑이었냐고 언성을 높였다. 함께 온 부인은 이 사람이 노망했냐고 막아섰지만, 사람의 아픈 마음을 치료하고 나를 믿고 자신의 인간적 약점까지 다 열어놓은 분들을 돌본다고 하면서, 아들을 늦깎이 장가보내는 노년의 심정을 진심으로 알아주지 못한 아둔한 의사였구나.
특별히 베풀고 살지도 못하고, 나는 정신과 의사로서 어떤 이에게 진심어린 위안이 되었나 하는 자책도 들었다. 노년기 환자를 치료하다보면 나 자신의 부족함과 인색함, 미숙함에 대해 서늘한 각성이 들 때가 많다. 축의금 보낼 계좌번호 불러주세요. 했더니 긴 계좌번호를 유창하게 불러주신다. 치매 치료가 잘 되고 있는 것이니 마음이 놓이기도 한다.
두 번째는 문화적 활동이다. 어느 교장 선생님은 퇴임 후 성악교실에 다니면서 콩쿨에도 참가하고 오페라 아리아 가사를 모두 암기해내신다. 엄청난 거다. 친구들과 좋은 자연도 보고 여행도 가고 댄스도 배우는 것도 좋다.
세 번째가 친밀한 관계다.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힐링 프렌드가 얼마나 있느냐가 마음 관리에 중요하다. 저의 환자인 90세 할아버지는 친구의 부고를 알리고 조문을 가고, 반평생 동기회 총무 일을 해왔다고 하신다. 뇌의 소프트웨어를 잘 돌려주어 뇌의 노화도 덜되고 뇌기능이 지금도 잘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내 부고를 알려줄 친구가 없어.' 할아버지의 말을 들으니, 사람은 누구나 순서없이 자신의 영혼에게 이제 그만 떠나자고 하는 순간을 맞이하기 마련이다. 영국의 시인 존 던의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시처럼.
누구든 그 자체로서 온전한 섬은 아니다.
모든 인간은 대륙의 한 조각이며, 전체의 일부이다.
만일 흙덩이가 바닷물에 씻겨 내려가면
유럽의 땅은 그만큼 작아지며,
만일 갑(岬)이 그리되어도 마찬가지며
만일 그대의 친구들이나 그대의 영지(領地)가 그리되어도 마찬가지이다.
어느 누구의 죽음도 나를 감소시킨다.
왜냐하면 나는 인류 전체 속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는지를 알고자 사람을 보내지 말라!
종은 그대를 위해서 울리는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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