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정(가명·42) 씨는 어릴 때부터 태권도가 좋았다. 단순히 태권도복이 새하얬기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깨끗하고 새하얀 태권도복을 입으면 새사람이 된 것만 같아서, 원래 입고 있던 누더기 옷을 잠시 잊을 수 있어서,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강한 사람이 된 것만 같아서, 그래서 그랬는지 모른다.
민정 씨는 오늘도 마음속의 태권도복을 입고 살아간다. 하나뿐인 아들을 지키기 위해서.
◆지옥 같은 '그'와의 동거 생활에 무너져 내린 턱, 빠져버린 치아
아버지가 의도치 않은 교통사고로 수감됐다. 이후 어머니는 세 남매를 두고 집을 나갔다. 모두 민정 씨가 4살 때 있었던 일이다. 민정 씨는 그때부터 오빠, 남동생과 함께 친할아버지 아래서 컸다. 부모의 부재, 가난한 형편… 어린아이가 마주하기엔 힘겨운 현실이었다. 그래도 민정 씨는 태권도로 버텼다. 초등학생 때 다녔던 체육관에서 태권도를 접한 뒤 중학생 때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어른이 된 이후엔 태권도를 마냥 좋아할 순 없었다. 체육특기자 전형으로 대학에 진학하고 2학년이 됐을 때, 민정 씨는 태권도를 관뒀다. 돈이 문제였다. 훈련을 받느라 따로 아르바이트할 수도 없는데, 국내외서 열리는 대회에 참가하려면 참가비부터 비행깃값, 숙소비 등을 스스로 부담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대학 졸업 후 동네 체육관을 전전하던 민정 씨는 아는 언니와의 식사 자리에서 처음 '그 남자'와 만났다. 5살 연상에 말끔한 정장 차림이었던 그는 금융권에서 일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로부터 두 달이 지났을 때, 번호를 알려주지도 않았는데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민정 씨도 착실하고 똑똑해 보이는 그가 싫지 않았다. 사귄 지 5개월쯤 됐을 무렵부턴 원룸 집에서 동거를 시작했다.
동거한 지 두 달이 지나자 말끔한 정장 속에 감춰져 있던 그의 진짜 모습이 본격적으로 드러났다. 그날따라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만취했던 그는 자신의 비밀을 얘기했다. 금융권에서 일하는 건 새빨간 거짓말이고, 사실 아무 직업도 없는 백수라 했다. 나중에 이혼 과정에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는 외국인을 상대로 전세 사기를 친 전적이 있는 사기꾼이었다. 뒤통수가 얼얼했지만, 그간의 정 때문에 이별을 고하진 않았다. 대신 둘 중 하나라도 돈을 벌어야 했으니 민정 씨는 일을 구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민정 씨가 도망칠 것으로 생각한 그가 현관문에 잠금장치를 설치했기 때문이다. 민정 씨는 집 앞 편의점도 자유롭게 갈 수 없었다. 이젠 동거가 아니라 감금이었다.
헤어지자고 하면 폭행이 시작됐다. 얼른 다 맞고 그냥 쉬고 싶단 생각이 들 정도로 그는 한번 시작하면 수십번씩 주먹을 휘둘렀다. 그 주먹에 민정 씨의 얼굴 뼈가 무너져 내리고, 치아도 다 깨졌다. 경찰에 신고해 봐도 경찰은 '같이 동거하는 사이에 잘 해결해 보라'는 말만 할 뿐이었다. 경찰이 지구대로 돌아가고 나면 가혹한 보복이 이어졌다.
◆겨우 탈출했지만, 아들은 혈액암, 엄마에겐 온갖 병 들이닥쳐
그와의 사이에서 원치 않은 아이까지 생겼다. 출산을 위해 병원에 갔을 때, 쉽게 오지 않을 탈출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준(가명·12)이가 태어나고 퇴원한 직후 민정 씨는 남편의 눈을 피해 하준이를 안고 병원 안에 있는 중환자 보호자 대기실로 도망쳤다. 그곳에서 몰래 생활하다 하준이 울음소리에 들켜 쫓겨났다. 그 뒤로도 대형 병원 대기실들을 전전하며 유령처럼 살았다. 기저귀 살 돈이 없어 병원 침대 시트를 잘라 썼다. 영양 상태도 엉망이라 하준이에게 먹일 모유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 생활도 오래가진 않았다. 남편이 '후배'라고 부르는 깡패들이 병원에 들이닥쳤다. 택시에 태워져서, 다시 그 끔찍한 곳으로 끌려갔다. 더 끔찍한 사실은 그가 '남편'이 돼 있었다는 점이었다. 하준이 출생신고를 하면서 민정 씨 주민등록증을 몰래 들고 가 혼인신고도 같이 한 것이었다.
남편의 폭력성은 태어난 지 50일도 안 된 아들에게 고스란히 표출됐다. 그가 의자로 얼굴 쪽을 내리치는 바람에 하준이는 오른쪽 눈을 다쳤다. 이 때문에 지금도 하준이는 거의 왼쪽 눈으로만 세상을 보고 있다. 원치 않게 생긴 아들일지라도 사랑하는 자식이었다. 이대로 여기 있다가는 사랑하는 하준이를 지킬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정 씨는 하준이를 안고 맨발로 집을 뛰쳐나갔다.
남편을 피해 그전처럼 병원 대기실, 찜질방, 지인 집 등을 전전했다. 그 과정에서 이혼도 했다. 이혼 절차를 밟으며 그와 엮이는 것 자체가 두려웠지만 해야 하는 일이었다. 전 남편이 된 그는 이혼 후에도 여러 번 민정 씨를 찾아와 폭력을 저질러 경찰도 여러 차례 출동했었다. 현재는 민정 씨 상황을 딱하게 여긴 한 교회 권사의 도움으로, 전 남편이 있는 곳을 떠나 다른 지역에서 LH 전셋집을 구할 수 있었다. 이제 이곳에서 모든 걸 잊고 하준이와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하지만 초등학교 2학년 때, 하준이 입 안에 하얀 버섯처럼 보이는 균이 피어났다. 혈액암이라고 했다. 수술적 치료는 따로 없는 대신 정기적으로 주사 치료를 받으며 생활을 이어가고 있지만, 면역력이 약해 한번 다치면 쉽게 낫지 않는 등 일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정 씨 건강 상태도 말이 아니다. 지난 6월부터 혈뇨와 방광염 등으로 건강이 급격히 악화해 늘 기저귀를 착용하고 있다. 숨 쉬는 게 힘들어 산소호흡기를 달고 살며 부정맥과 빈혈도 심해 한 달에 서너 번은 응급실에 실려 간다. 전 남편과 살면서 생긴 공황장애, 불안증, 단기기억상실 등으로 정신과 약도 먹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전 남편 때문에 치아가 온전치 않아 음식 섭취가 어려워 기본적으로 건강을 유지하는 게 힘들다는 것이다. 보조 틀니 대신 임플란트를 심으면 좋겠지만 치료 비용만 2천만원이 훌쩍 넘어 정부보조금 121만원으로 살아가고 있는 현실에 꿈도 못 꾼다.
하준이에겐 자신밖에 없는데, 얼른 건강해져서 기초생활수급자 신세에서 벗어나 일을 하고 싶은데…. 끔찍한 시간을 지나오는 사이 몸 구석구석이 망가지고 말았다. 갑갑해져 오는 가슴에 또다시 산소호흡기를 찾는 민정 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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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성금내역]
◆어린 시절 두 차례 화재 겪으며 가난하게 자라 지금도 목욕탕 일하며 힘겹게 홀어머니 모시고 있는 계보영 씨에게 2,289만원 전달
어린 시절 두 차례 화재를 겪으며 가난하게 자라 지금도 목욕탕에서 일하며 힘겹게 홀어머니 모시고 있는 계보영 씨(매일신문 10월 24일자 10면)에게 2천289만6천원을 전달했습니다.
이 성금엔 ▷전시형 10만원 ▷권규돈 3만원 ▷이강준 3만원 ▷이병규 2만5천원 ▷신종욱 2만원 ▷석봉호 1만원 ▷성영아 1만원 ▷우순화 1만원이 더해졌습니다. 성금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식모살이·보육원 생활하고 결혼 뒤엔 시동생한테 성관계 협박 등 시달렸던 최연희 씨에게 2,787만원 성금
식모살이·보육원 생활 등 어린 시절부터 갖은 고생을 하고 결혼했으나 시동생의 성관계 협박으로 트라우마 안고 현재 독거 중인 최연희 씨(매일신문 10월 31일자 10면)에게 58개 단체, 309명의 독자가 2천787만3천248원을 보내주셨습니다. 성금을 보내주신 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에스엘(주) 200만원 ▷피에이치씨큰나무복지재단 200만원 ▷건화문화장학재단 150만원 ▷(주)대구은행 100만원 ▷(주)태원전기 50만원 ▷다우약품 50만원 ▷신라공업 50만원 ▷한라하우젠트 50만원 ▷㈜태린(김철우) 40만원 ▷최상규이비인후과 40만원 ▷㈜신행건설(정영화) 30만원 ▷한미병원(신홍관) 30만원 ▷(주)동아티오엘 25만원 ▷㈜백년가게국제의료기 25만원 ▷금강엘이디제작소(신철범) 20만원 ▷대백선교문화재단 20만원 ▷대창공업사 20만원 ▷대흥분쇄기(한미숙) 20만원 ▷(주)구마이엔씨(임창길) 10만원 ▷(주)우주배관종합상사(김태룡) 10만원 ▷경주천마운전전문학원 10만원 ▷김영준치과의원 10만원 ▷대구동양자동차운전전문학원(최우진) 10만원 ▷부성중량(박주현) 10만원 ▷세움종합건설(조득환) 10만원 ▷신성산업(김용환) 10만원 ▷이재만 대구지방세무사회 회장 10만원 ▷창성정공(허만우) 10만원 ▷(주)이구팔육(김창화) 5만원 ▷건천제일약국 5만원 ▷구미 이수제 돈까스 5만원 ▷국제정밀(김용근) 5만원 ▷동산내과 (박경아) 5만원 ▷동산내과 (박준석) 5만원 ▷베드로안경원 5만원 ▷봉산교회(김명묵) 5만원 ▷선진건설(주)(류시장) 5만원 ▷세무사박장덕사무소 5만원 ▷우리들한의원(박원경) 5만원 ▷위브디자인(김영민) 5만원 ▷이전호세무사 5만원 ▷전피부과의원(전의식) 5만원 ▷정한건설 5만원 ▷채성기약국(채성기) 5만원 ▷칠곡한빛치과의원(김형섭) 5만원 ▷흥국시멘트 5만원 ▷국선도풍각수련원 3만원 ▷두산에너빌리티(한창우) 3만원 ▷매일신문구미형곡지국(방일철) 3만원 ▷보성카써비스(김영수) 3만원 ▷청산(우창하) 3만원 ▷청아테크(최현수) 3만원 ▷본죽(이종승) 2만원 ▷서성상회(박형근) 2만원 ▷베이크화목(김치옥) 1만원 ▷사단법인대한민국힐링문화진흥원 1만원 ▷태릉표구화랑 1만원 ▷하나회(김미라)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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