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에 걸쳐 우리 민화를 연구해 온 민화 학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민화와 관련한 여러 분야에 대해 함께 살펴보고 토론하는 장이 마련됐다.
3일 계명대학교 대명캠퍼스 계명동산관에서는 한국민화연구소의 제15회 학술세미나가 열렸다. 이날 세미나에는 50여 명이 참석해 4시간 넘게 열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국민화연구소는 2009년 한국과 중국, 일본의 민화를 다룬 첫 학술세미나를 시작으로 화조도, 책가도 등 화목별 연구, 색채 등을 주제로 15년간 매년 세미나를 열어왔으며, 이번 학술세미나는 코로나로 인해 3년 만에 오프라인으로 개최됐다.
사회를 맡은 박본수 경기도박물관 책임학예사는 "이번 세미나는 민화 연구가 얼마나 심화, 확장됐는지 알 수 있는 세미나"라며 "특히 연구자들의 세대 교체가 눈에 띈다. 젊은 연구자들의 열정을 눈여겨봐달라"고 말했다.
◆민화에 영향을 준 다양한 분야 연구
이날 윤진영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사전편찬부장은 '민화와 궁중회화, 전통과 변화의 맥락'을 주제로 기조강연을 펼쳤다. 윤 부장은 강연을 통해 18세기 전반에 걸쳐 민화에 영향을 준 궁중회화, 그로부터 영향을 받은 민화의 변화 과정을 세기별로 살펴봄으로써 민화의 개념과 범주를 재정립하고, 새로운 창작의 방향을 모색하는 데 도움이 되고자 한다고 밝혔다.
그는 "민화의 전개과정은 과거와 현재를 함께 조망하는 시각이 필요하다. 이는 전통과 현재가 단절된 것이 아니라 하나로 연결된 유기적인 관계로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18세기 후반기에 등장한 민화는 19세기,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변화를 거듭하면서도 지속적으로 그려졌다. 19세기 전반기에는 궁중회화를 모방하는 현상이 크게 작용했고, 20세기 초에는 전통적인 궁중양식을 지속하면서도 전통에서 벗어난 창의적인 경향을 보여주기도 했다"며 "21세기인 지금은 19세기, 20세기 초의 유행기와 같은 민화의 중흥기를 맞이하고 있다. 창작을 지향한 작가들의 활동이 큰 유행기를 구가하고 있는데, 과거의 미술양식을 현재의 작가들이 창의적으로 모방 및 계승하고 있는 분야는 민화가 유일하다"고 강조했다.
장진아 국립전주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이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요지연도와 궁중회화 계병'을 주제로 첫 발표를 시작했다. 장 실장은 병풍 그림을 위주로, 특히 첩병풍 형식의 고사인물화 '계병(契屛)'의 등장을 궁중화풍의 형성과 연결지어 살펴봤다.
유재빈 홍익대 미술사학과 교수는 '정조(正祖)의 당물(唐物) 인식과 활용'이라는 주제 발표를 통해 정조가 당대 어떠한 중국 수입품들을 접했으며 그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했는지 기록을 통해 분석했다. 또한 정조로부터 당물을 하사 받은 신하 김조순의 기록을 통해 어떠한 것이 하사됐으며, 하사 받은 자의 반응은 어땠는지를 함께 얘기했다.
◆자수 병풍, 일본 인쇄화 연구도
세번째 발표는 이은지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원의 '근대 전환기 왕실과 민간의 자수 병풍 제작과 활용'으로 진행됐다. 이 연구원은 대한제국 황실 자수 병풍의 수급, 활용 양상을 입체적으로 검토하고 국내외 유물의 입수 경위와 관련 기록을 살펴 민간에서의 자수 병풍 유통, 수집 양상을 분석했다.
그는 "조선 후기 민간에서 자수 병풍이 유통된 방식을 통해 민간에서는 전문 장인에 의해 제작돼 품질이 우수하고 고가로 거래되는 자수 병풍, 그리고 하나의 수본으로 대량 생산해 품질은 낮으나 높은 경제성을 지닌 자수 병풍이 함께 유통되고 있었을 가능성을 제기해본다"며 "근대 전환기에는 자수 병풍 향유 대상이 외국인에게까지 확장되면서 이들 사이에 자수 병풍에 대한 수요층이 형성됐으며, 수집 열기가 고조된 상황까지 파악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향후 궁중과 민간의 자수품 전반에 대한 제작 상황을 살펴보는 심화 연구가 이뤄진다면 궁수와 민수의 특성, 연관성을 규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박근아 대전시청 학예연구사는 '도쿄 쇼비도의 중국 수출용 인쇄화에 관한 연구'를 주제로 발표했다. 박 연구사는 근현대 일본에서 그림엽서를 비롯해 미술 관련 인쇄화를 가장 활발하게 제작했던 미술전문 인쇄회사 '도쿄 쇼비도 화국'에 주목해 창업해서부터 중국 등 수출용 인쇄화를 제작하게 된 배경, 영업 목록, 인쇄화의 종류 등을 소개했다. 또한 근대 이후 일본의 인쇄소에서 제작한 인쇄화가 일본뿐만 아니라 중국, 나아가 조선에까지 판매, 유통되면서 일본과 중국의 취향을 조선에서 동시에 수용, 향유할 수 있게 됐음을 설명했다.
주제발표가 끝난 뒤 고연희 성균관대 동아시아학과 교수를 좌장으로 한 종합토론이 이어졌다. 토론에는 김수진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연구교수, 김현진 영남이공대 사회복지·보육과 강사, 이경숙 박물관 수 관장, 박금희 온고지신학술연구소 소장이 참여해 열띤 논의를 펼쳤다.
권정순 한국민화연구소 소장은 폐회사를 통해 "다양한 주제 발표와 토론을 통해 전통미술 민화에 대한 지식을 탐하는 시간을 가지게 돼 유익한 시간이었다"며 "오늘 세미나를 여는 데 도움을 준 많은 관계자들과 연구자, 민화를 사랑하는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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