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씁쓸한 ‘연애 예능’

김교영 논설위원
김교영 논설위원

한 TV 연애 예능프로그램의 장면. 남성 출연자들이 소개된다. 한 남성이 외제차에서 내린다. 이 남성은 '연세대 졸업, 서울대 석사' 출신. 진행자들이 "서울대!"라며 놀란 반응을 보인다. 이어 등장한 남성의 직업은 의사. "와, 의사야!" 진행자들이 입을 쩍 벌린다. 또 다른 남성이 나타나자, "모델 아니냐" "훤칠한 아이돌상"이란 찬사가 쏟아진다. 한 남성이 "누나 3명"이라고 밝히니, 진행자들은 "여자들이 부담스러워할 것"이라며 손사래 친다.

여성 출연자들이 나타난다. 한 여성이 나오자, 진행자들이 "우와, 너무 예쁘시다"라며 추켜세운다. 이 여성은 '연구교수'이다. '지성美(미)까지 겸비'란 자막이 뜬다. 다른 여성이 등장한다. 진행자들이 "얼굴이 예쁘다"고 감탄한다. 이어 뜬금없는 제작진의 질문, "토익 몇 점이죠?" 여성은 "만점"이라고 답한다.

연애 예능이 인기를 끈다.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다'고 할 정도다. 연애 예능 몇 편을 시청한 뒤 느낌, 한마디로 씁쓸했다. 연애 예능에는 일반인들이 출연한다. 하나, '보통 사람'은 드물다. 스펙과 외모가 출중한 남녀들이 주류이다. 변호사, 의사, 대기업 사원, 기업 CEO…. 진행자들은 그들의 외모나 능력(상품성)을 강조한다. 대중문화평론가들은 "시청자들은 연애 예능을 통해 현실에서 결핍된 욕구를 대리만족한다"고 한다. 미래 불안으로 연애·결혼을 꺼리는 현실 청년에겐 연애 예능은 판타지이다.

연애 예능은 배금주의·외모 지상주의·선정성 논란이 따른다. 나이와 성별, 지역에 따른 차별적 표현도 많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방송언어특위는 8월 17일부터 20일까지 3개 연애 예능프로그램을 조사한 결과, 285건의 지적 사항을 발견했다. 특히 편견이나 차별적 표현이 문제가 됐다. '지방에서 올라오신 게 마이너스 요인' '사회 경험이 적어 배우자를 존중해 줄 수 있는 나이대' 같은 표현들이 사례로 꼽혔다. '돈과 몸'을 떠나 낭만, 웃음, 감동, 애환이 깃든 연애 예능은 불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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