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니가 가라, 하와이!’

서명수 객원논설위원(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서명수 객원논설위원(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1941년 12월 7일 일요일 오전 7시 53분. 휴일의 평화를 만끽하고 있던 하와이가 지옥으로 변했다. 나구모 주이치(南雲忠一) 제독이 지휘하는 일본 해군 연합함대 기동부대가 진주만에 정박 중이던 미국 태평양함대에 대한 대공습을 감행한 것이다. 선전포고 없는 공습으로 미 태평양함대는 전투 능력에 큰 타격을 입었지만 미국은 전열을 가다듬고 다음 날 선전포고를 하고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하와이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족적이 묻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 전 대통령은 하와이를 근거지로 독립운동을 펼쳤고, 4·19혁명으로 하야한 후 선택한 망명지도 하와이다.

영화 '친구'에서 배우 유오성(준석)이 장동건(동수)에게 해외로 도피하라며 "하와이로 가라. 거기 좀 가 있으면 안 되겠나?"라고 부탁하자 "니가 가라, 하와이!"라고 빈정거리는 장면이 떠오른다. 조폭 조직 간 갈등으로 친구를 해칠 상황에 처하자 해외 도피를 권한 것이다. 장동건은 유오성의 간절한 부탁을 '니가 가라 하와이!'라고 거부한 결과 참혹하게 살해됐다.

하와이는 발리와 몰디브, 칸쿤과 더불어 해외 신혼여행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비행기로 8시간 남짓 걸린다. 범죄자들이 주로 도피하는 중국이나 일본, 동남아도 있는데 영화는 굳이 '머나 먼' 하와이를 도피처로 선택했을까? 이 전 대통령은 하와이로 망명했다가 유해로 돌아왔다. 영화 속 '니가 가라 하와이'는 살아서 돌아올 수 없는 사지(死地)라는 의미로 차용된 셈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야 모두 중진들의 험지 출마 차출론을 제기하고 있다. 국민의힘 텃밭인 대구경북과 부산·경남의 3선 이상 중진들이 대상이다. 수도권에서 선수를 쌓아 온 더불어민주당 중진들도 마찬가지 압박을 받는다. 그러자 중진들이 이구동성으로 '니가 가라 하와이!'라며 반발하는 모양새다.

여당의 김기현 대표와 장제원, 권성동 의원 등 이른바 '친윤' 핵심들이 대거 수도권 험지로 출마, 당의 개혁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총선 구도가 달라질까? 여기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도 고향 안동에 출마하는 등 '험지' 출마로 맞대응하게 된다면 '니가 가라 하와이!'는 정치 구도를 새롭게 할 수도 있겠다.

didero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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