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에서 태어났지만 도시 직장인의 꿈을 안고 중소기업에 취직했다. 주야간 근무의 고된 직장 생활을 하고도 농사 짓는 부모님보다 낮은 소득에 귀농을 결심했다.
서른 살 늦깎이로 한국농수산대학에 진학해 바라본 농업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청년은 없고, 돈은 안 되고, 농사 짓는 분들은 연세가 많았다.
그러던 중 일본 홋카이도 농업 해외연수가 내 생각의 전환점이 됐다. 그곳에선 벼 대신 돈이 되는 콩과 밀을 대규모 기계화로 이모작 재배를 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기계화 농업, 돈이 되는 농사의 가능성을 봤다.
2010년 벼농사만 짓던 들녘에 콩 농사를 지으려고 다섯 농가가 영농조합법인을 만들었지만 콩 농사로 바꾸기를 꺼려 농지를 구하는 것도 어려웠다. 콩과 밀 이모작은 꿈같은 이야기였다. 주변 농업인들을 설득해 귀농 12년 만에 콩 농사를 정착시키고 대기업에 나물콩을 전량 납품하며 소득을 올렸지만 밀 이모작에 대한 갈망은 계속됐다.
국내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이 2022년 56.7㎏까지 줄고, 밀 소비량은 36㎏까지 꾸준히 늘어 제2의 밥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럼에도 밀 자급률은 1%에 그친다고 하니 식량 생산을 책임지는 농사꾼으로서 마음이 무거웠다.
지난해 이철우 경북도지사의 '경북 농업대전환' 비전 선포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기계화가 가능한 규모화된 농사, 농지를 놀리지 않는 이모작, 경영비를 줄일 수 있는 공동 영농. 무엇보다 고령화된 농촌의 현실을 타개할 농지주주제로의 전환은 정말 획기적인 발상이었다.
경북농업기술원의 들녘특구 사업 공모 소식에 망설임 없이 신청해 선정됐다. 드디어 대규모 들녘에 기계로 콩과 밀 이모작을 하게 됐다.
지난 6월 밀 밸리 들녘특구에서의 농업대전환 들녘특구 성공다짐식에 참석한 이 도지사가 특구 현판을 걸어주셨다. "들녘특구를 꼭 성공시켜 대한민국 농업을 확 바꿔야 된다. 기업형 농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 식품 가공산업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격려와 함께.
90농가가 참여하는 120㏊의 구미 도개면 들녘은 요즘 한창 콩을 거두느라 24시간이 모자란다. 콩 수확이 끝나면 들녘은 다시 밀밭으로 바뀐다. 이모작으로 농가소득은 두 배가 될 것이다.
밀 제분을 위한 경북 최초 우리밀 제분 시스템 설계도 시작했다. 연간 1만4천 톤(t)의 밀가루를 생산할 수 있는 용량이다. 경북 도민이 소비하는 9만7천t 밀가루의 14%에 이른다. 원료곡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려면 재배 면적을 4천㏊까지 늘려야 하나, 그때가 머지않았다.
또 다른 숙제는 판매다. 수입산 밀이 국내 소비자의 입맛을 사로잡은 상황에서 소비처 확보는 쉬운 일이 아니다.
구미 지역 12개 베이커리와 밀산업 발전협의체를 만들어 12종의 우리밀빵을 개발하고, 밀밭을 배경 삼은 치유 서비스 공간과 체험관도 준비하고 있지만 자체적인 노력만으로 어렵다. 우리밀 재배면적 확대와 소비 촉진을 위해 정부의 다양한 정책과 홍보, 소비자들의 관심이 필요하다.
경북 들녘에 농업대전환이라는 변화의 씨앗이 뿌려졌다. 이 도지사가 선포한 '청년이 돌아오고 농사만 지어도 잘사는 농촌'을 꿈꾼다. 변화의 결실을 맺으려 동분서주하는 이 도지사께 감사의 마음과 함께 들녘특구에서 농사지은 농산물로 따뜻한 밥 한끼 꼭 대접하고 싶다.
박정웅(샘물영농조합법인 대표) 경북 밀 밸리 들녘특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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