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초부터 미국의 이발소는 지역 사회의 중요한 장소로서 독특한 사회적 기능을 제공했다. 편히 만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 술집 정도밖에 없었던 아프리카계 미국인들과 노동 계층의 남성들에게 이발소는 동네 사랑방이었으며, 그들은 이곳에서 머리를 손질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지역 사회의 중요한 문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따라서 이발소의 한쪽에 손님들이 체스, 카드, 도미노 등의 게임을 즐기며 지역과 관련한 잡담이나 정치사에 관해 대화를 나누는 공간을 둔 곳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또 이발소는 노래를 부르는 곳이기도 했다. 이발소에 사람들이 모여 어울리다가 그중에서 목소리가 좋은 사람이 유행하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 다른 손님들과 이발사도 참여해 즉흥적으로 하모니를 만들었다. 이것이 '이발소 사중창(Barbershop Quartet)'의 기원으로, 그 특징은 반주 없이 남성으로만 부르며, 그 구성은 테너, 멜로디를 부르는 리드, 바리톤, 그리고 베이스로 돼있다.
이발소에 모여서 노래를 불렀던 아마추어 남성 사중창단들은 나중에 동네의 파티와 피크닉에 초대돼 노래를 부르곤 했으며, '민스트럴 쇼(Minstrel Show)'의 중간에 공연하기도 했다. '민스트럴 쇼'는 19세기 초에 미국에서 발전된 공연 형식으로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게으르고, 겁이 많고, 미신을 믿으며, 천하태평이라는 고정 관념에 근거해 이를 부정적으로 풍자해 우스꽝스럽게 묘사하는 촌극 또는 버라이어티쇼이다. 물론 인종차별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대부분 백인 배우가 얼굴을 검게 칠하고 공연했으나, 흑인들로만 구성된 민스트럴 쇼단도 있었다고 한다.
흑인들로 구성된 이발소 사중창단이 인기를 얻게 되자, 백인 민스트럴 쇼 단원들도 이를 모방하기 시작했다. 이어서 여성으로만 구성된 사중창단도 생겨나 미용실 사중창단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지만, 이 명칭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현재는 여성으로 구성됐더라도 이발소 사중창단으로 불린다.
이발소 사중창단은 노래 스타일뿐만 아니라 독특한 패션으로도 유명한데, 이들에게 있어서 가장 상징적인 패션 품목 중의 하나는 납작한 밀짚모자다. '보터 햇(Boater Hat)'이라 불리는 이 모자는 위가 납작하고 창도 편편하다. 주로 뱃사공들이 햇빛으로부터 눈을 보호하기 위해서 쓰던 모자이며, 베네치아의 곤돌라 사공이 쓰는 모자를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이들을 독특하게 만드는 수직의 굵은 줄무늬 재킷과 조끼는 핼러윈 축제의 단골 복장이기도 하다.
이발소 사중창의 인기는 지금도 계속된다. 이제는 남성뿐만이 아니라 혼성도 가능하다. 브리태니커 사전에 의하면, 1938년에 설립된 '미국 이발소 사중창 노래하기 보존 및 장려협회(SPEBSQSA, Inc.)'의 후신인 '미국 이발소 하모니 협회(Barbershop Harmony Society)'는 800개 이상의 지부와 3만8천명 이상의 회원을 두고 있다. 그리고 미국 이외에도 이발소 사중창과 관련한 조직이 12개 나라에 있으며, 미국 이발소 하모니 협회와 공식적인 동맹관계를 맺고 있다.
신문의 기사를 참조해 보면, 1975년에 2만9천713개소였던 우리나라의 이발소가 2021년에는 1만4천77개만 남았다고 한다. 우리도 이렇게 이발소는 없어져 가지만, 대신에 이발소 사중창단은 새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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