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 영원한 우등생은 없다

편집국 동부지역담당 부국장
편집국 동부지역담당 부국장

기자는 2007년 여름, 중국 산둥성 칭다오시에 있는 칭다오 맥주를 찾아갔다. '세계의 장수 기업' 취재를 위해서였다. 19세기 중반 아편전쟁 이후 서구 열강, 그리고 일본의 침략까지 받은 데다 공산혁명을 거친 중국이기에 100년 역사를 가진 기업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1903년 설립된 칭다오 맥주는 굴곡의 중국 역사 속에서 생존한 것은 물론,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해 있었다.

칭다오는 19세기 말 열강의 중국 침략기에 독일에 조차(租借)됐고 이곳에 들어온 독일 사람들은 자신들이 마실 맥주가 필요해 맥주 공장을 만들었다. 서구 열강에 이어 동북아 패권을 차지한 일본이 독일을 밀어내고 1916년부터 이 공장을 손아귀에 넣었고 1945년까지 이 공장을 경영했다. 1949년 중국 공산혁명이 일어났지만 중국공산당은 자본주의의 대명사로 불리는 맥주 공장을 없애지 못했다. 이미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는 품질에 도달, 대단한 규모의 외화벌이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상하이와 홍콩 증시에도 상장된 이 회사의 100년 넘는 성장 비결은 '정성스러운 마음'(誠心)이었다. 칭다오의 명산인 노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고집하면서 최고의 품질을 보장했다. 잡냄새가 없고 뒷맛이 깨끗하다는 게 소비자들의 일관된 평가였다. 맥주 공장 내에 박물관을 만들어 중국의 대표적 산업 관광지도 됐다. 이곳은 중국 최초의 공업관광시범지구이기도 하다. 기자가 갔을 때도 하루 2천여 명의 관광객이 찾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한때 수입 맥주 시장 1위를 거머쥐기도 했던 이 회사는 최근 큰 위기를 맞았다. 산둥성 칭다오 맥주 공장에서 남성 직원이 맥주 원료(맥아)에 소변을 보는 것으로 보이는 영상이 중국 인터넷에 퍼지면서 이미지가 추락했다. 영상 공개 직후 며칠 만에 이 회사 시가총액이 1조 원 넘게 증발하기도 했다.

품질 관리에 있어서는 한 치의 소홀함도 용납될 수 없음을 100년 기업 칭다오 맥주가 보여주고 있다. 100년 기업도 찰나에 휘청거리거나 무너질 수 있는 것이다. 1938년 대구에서 출발한 삼성이 세계 시장을 누비면서 100년 역사를 향해 순항해 가는 것은 작은 것도 놓치지 않은 정성 덕분이었다. 삼성 창업자 고(故) 이병철 회장은 '품질'이라는 개념조차 제대로 없었던 1968년, 대구에 본사를 뒀던 제일모직에 무결점 운동을 도입했다. 이 회장은 제일모직에서 와이셔츠를 생산할 때 전 세계 명품 와이셔츠 150벌을 구해 와 자신이 매일 입어 보고 제일모직 제품에 반영시켰다. 완전주의가 아니고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신념을 그는 갖고 있었다.

국가 경영도 작은 틈새를 미처 발견하지 못하면 큰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 두 차례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절망을 딛고 라인강의 기적을 일으킨 뒤 유럽의 모범생으로 올라섰던 독일이 좋은 예다. 러시아 천연가스에 지나치게 의존했던 독일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에너지 공급망 교란이 나타났고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경제가 타격을 받으면서 올해 예상 경제성장률이 -0.5~-0.2%로 주요 선진국 중 유일하게 마이너스 성장을 할 전망이다.

영원한 우등생은 없다.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발전국가를 만들고 선진국으로까지 올라선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작은 것 하나에서 실패가 나올 수 있다. 다른 사회 영역에 비해 유독 후진성이 심한 정치판을 보면 우리도 한순간에 추락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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