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 명 한 명 대화 나누며 그린 70명의 여성 독립운동가…힘 닿는 데까지 그려나갈 것”

대구미술관 이인성미술상 수상자전 ‘윤석남’
여성 독립운동가 채색 초상화 20점 등 전시
연계 청년특별전 신설…이성경 ‘짐작하는 경계’

윤석남, 차보석 초상, 한지에 분채, 210x94cm, 2022.
윤석남, 차보석 초상, 한지에 분채, 210x94cm, 2022.
대구미술관 2전시실 전경. 대구미술관 제공
대구미술관 2전시실 전경. 대구미술관 제공

지난해 제23회 이인성미술상을 수상한 윤석남 작가의 개인전이 대구미술관 2, 3전시실과 선큰가든에서 열리고 있다. 올해는 청년작가 지원과 지역 미술 활성화를 위해 처음으로 연계 청년특별전을 신설해, 이성경 작가의 개인전 '짐작하는 경계'를 2전시실 일부 공간에서 함께 선보인다. 두 전시는 12월 31일까지 이어진다.

◆여성을 넘어 휴머니즘으로

윤석남 작가
윤석남 작가

1939년 만주에서 태어난 윤 작가는 한국의 여성주의 미술을 개척하고 발전시킨 대표적인 작가다. 마흔에 독학으로 그림을 시작한 그는 40여 년간 '여성'이라는 주제에 전념하며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삶과 현실, 경험을 담은 작품을 통해 여성의 주체성을 부각하고 여성의 목소리를 드러내는 데 기여해 왔다.

이번 전시는 여성이라는 큰 주제 아래 생명과 돌봄의 가치 등을 다양한 매체로 조명한다. 특히 2전시실에 펼쳐진 거대한 한국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채색 초상화에서는 투쟁과 헌신의 여성사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최근 대구미술관에서 만난 작가는 "100점을 목표로 그리고 있고 70점 정도 완성한 상태"라며 "그 중 신작 위주로 20점을 전시했다"고 말했다.

"그 시대 사람 대접도 못 받던 여성들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는 얘기를 보고 가슴이 두근거렸어요. 나도 이 사회를 구성하는 한 사람이다 라는 것을 외치는 과정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힘이 있는 한 많은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그리고 싶은데, 남아있는 기록이 많이 없어 아쉽네요."

그는 "과장처럼 느껴지겠지만, 한 분 한 분 대화를 나누며 그림을 그렸다. 작업하면서 미안한 감정도 있었고,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 지에 대한 의문도 들었다"며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역사 속에 사라진 존재가 아니라 빛을 발하는 인물로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더 많은 초상화를 그리는 것이 나의 목표이자 과업"이라고 했다.

대구미술관 3전시실 전경. 대구미술관 제공
대구미술관 3전시실 전경. 대구미술관 제공
대구미술관 선큰가든 전경. 대구미술관 제공
대구미술관 선큰가든 전경. 대구미술관 제공

3전시실에는 1천25개의 유기견 조각들이 관람객을 맞는다. 작가는 인간에게 버림 받고 무력한 처지에 놓인 1천25마리의 유기견을 위로하고, 그들을 보살피는 이애신 할머니의 헌신을 기억하고자 지난 2003년부터 5년간 조각 작업에 몰두했다. 이번 전시는 방대한 규모의 이 작품을 접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이와 함께 선큰가든에는 작가의 '룸' 연작 중 하나인 '핑크룸 VI'가 전시됐고, 그가 2001년에서 2003년 사이에 일기를 쓰듯 남긴 수많은 드로잉도 2전시실에서 만나볼 수 있다. 당시 작가가 느낀 감정과 생각, 관찰, 일상 경험을 담아낸 드로잉 연작에는 작가 내면과 여성의 삶에 대한 소회가 은유적으로 담겨 있어 관람객들의 많은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다.

전시를 기획한 이정민 대구미술관 학예연구사는 "이번 전시는 윤석남의 시선을 따라가며 용기 있는 삶의 이야기를 마주하는 여정"이라며 "소외되고 지워진 존재들에 의미와 주체성을 불어넣는 작품을 통해 여성의 삶과 투쟁이라는 페미니즘을 넘어, 휴머니즘의 실천으로 확장된 차원에서 그의 예술세계를 만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성경 작가의 개인전
이성경 작가의 개인전 '짐작하는 경계'가 열리고 있는 대구미술관 2전시실 전경. 대구미술관 제공
이성경 작가의 개인전
이성경 작가의 개인전 '짐작하는 경계'가 열리고 있는 대구미술관 2전시실 전경. 대구미술관 제공

◆경계가 모호한 풍경의 향연

이인성미술상 수상자전 연계 청년특별전에 선정된 이성경(41) 작가는 일상 속 풍경을 작업의 모티프로 삼아 회화의 다양한 표현 가능성을 탐구한다.

영남대학교와 동대학원에서 한국화를 전공한 그는 한지와 먹, 목탄, 안료 등을 사용해 현대의 풍경을 그려내며 전통과 동시대적 감성을 연결한다.

특히 10여 년 이상 목탄이라는 재료를 탐구해왔는데, 작업을 지속하기에 쉽지 않은 재료임에도 완성도, 밀도감 있는 작업을 이어왔다. 그는 "목탄은 문지르는 행위를 통해 촉각적인 표현을 할 수 있고, 지울 수 있는 특성이 있으니 먹에 비해 그림 수정을 못한다는 것에 대한 공포심을 덜 수 있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작가의 작품은 주로 일상 속의 풍경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림자, 그림자가 된, 또는 그림자가 드리워진 풍경을 모티프로 삼았고, 그에 대한 관심이 최근에는 반영상(反影像)으로 이어지고 있다.

주목할 부분은 유리 빌딩이나 창문과 같은 이중 프레임을 활용한 표현 방식이다. 작가는 창 안쪽의 풍경과 함께 프레임이나 유리에 반영되는 이미지를 하나의 화면에 나타냄으로써 공간적 구조를 확장한다. 그의 작품에서 인물은 완전히 배제되지만, 풍경이나 특정 장소를 응시하는 혹은 스치듯 지나치는 누군가의 시선을 통해 사건-기억-잔상 등의 다양한 이야기 구도를 상상하게 한다.

그는 "안과 밖이라는 이분법적인 것에 대한 불편함이 경계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 안과 밖 사이에 존재하는, 우리가 짐작하는 영역에 대한 얘기를 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의 제목 '짐작하는 경계'는 작가가 직접 지은 것으로, 그가 몰두해 온 경계에 대한 시선을 함축하는 표현이다. 전시는 인공 연못을 담은 '땅의 창', 도로 위 흐릿한 대상을 포착한 '바람 그림자', 그리고 유리 빌딩에 반영된 이미지를 그린 '또 다른 그림자'로 구성된다.

이정민 학예연구사는 "이성경 작가는 현실에서 영감을 받아 자신만의 예술적 언어로 해석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회화 기법을 모색한다"며 "자연과 인공, 현실과 환상, 물리적 경계와 인식적 경계에 대한 탐구가 녹아있는 이번 전시는 이성경의 작품 세계를 보다 깊이 이해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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