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광장] 불행의 쳇바퀴, 반복강박

동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사공정규 교수

동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사공정규 교수
동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사공정규 교수

피하고 싶은 삶이 반복해서 일어난다는 느낌을 가져본 적 있나요? 일례로, 아버지가 알코올 중독자였고 알코올 중독자인 남편을 만나 이혼을 한 여자는 재혼을 하더라도 알코올 중독자를 만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녀는 아마 '지독히 팔자가 사나워서' 혹은 '억세게 운이 없어서' 그런 남자를 만났다고 생각할 것이다.

사람에게는 '반복강박'(repetition compulsion)이라는 것이 있다. 프로이트가 말한 정신분석학 용어로, 자신의 과거 경험이 자신을 고통과 불행으로 내모는데도 과거 경험으로부터 배우지 못하고, 계속 일정한 행동 양상을 반복하는 것을 말한다. 앞의 사례는 성장 과정에서 불행했던 과정이 성장한 이후에도 반복되는 경우이다.

우리는 왜 자신을 고통과 불행으로 이끄는 선택을 되풀이하는 걸까요?

사람은 태어나서 어린 시절에는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속수무책의 삶에 노출된다. 성장 과정에서 경험한 세상에 본인도 모르게 익숙해진다. 그리고 행복, 불행과 관계없이 익숙하기 때문에 마음이 편하게 느껴지는 '익숙한 편안함'을 성장한 후에도 무의식적으로 선택하게 된다.

앞의 사례에서, 그녀는 어렸을 때 아버지의 술주정을 보면서 진절머리를 쳤을 것이다. 비 오는 날 어머니의 머리채를 거머쥐고 먼지가 나도록 주먹질을 해대는 아버지를 보면서 어머니 대신 복수해 주고 싶다거나 죽이고 싶은 증오심을 가지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의 마음속에는 주정뱅이 폭력꾼 아버지 모습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남성상으로 뇌에 새겨진다.

그런데 어린아이에게 새겨진 남성상은 평소에는 무의식 속에 숨어 있다가 불쑥 튀어나와 다시 어머니와 같은 삶을 선택하게 된다.

만약 첫 남편과 이혼을 했다면, 이혼 후 두 번째 남편을 고를 때에도 '반복강박'이 출현하여, 다시 같은 선택을 하게 한다. 이렇게 어른이 되어서도 어린 시절의 불행했던 상황과 유사한 상황을 재연하게 된다.

같은 선택을 안 하면 그만인데, 이상하게도 어린 시절 불행을 반복한다. 왜 과거에서 벗어나 더 나은 인생을 선택하지 않는 것일까요?

알코올 중독자가 아닌 남성은 그녀의 내면에서 익숙하지 않기에 편안함을 느낄 수 없다. 하지만 알코올 중독자와 함께 있을 때 그녀는 두렵지만 익숙하고 편안함을 느낀다. 부모의 삶을 보며 뇌에 각인된 불행이지만 '익숙한 편안함'의 '반복강박'이 작동한다는 것을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녀는 또다시 불행의 쳇바퀴를 돌리는 선택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결과에 자기 문제를 보기보다 팔자 혹은 운명 탓을 하게 된다.

대체로 사람들은 익숙하지 않은 것보다 익숙한 것을, 불편한 것보다 편안한 것을 좋아한다. 익숙하지 않으면 불편하고, 불편하면 고통을 느낀다. 그러나 '반복강박'의 '익숙한 편안함'은 그 순간에는 편할지 몰라도, 우리 삶을 더 큰 고통과 불행으로 내몬다.

'반복강박'을 겪는 사람은 고통과 불행을 겪어도 그것이 자신이 반복하는 고통과 불행인지 모른다. 고통과 불행을 알아차린다 하더라도 '익숙한 편안함'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사람들은 미래의 더 큰 고통보다 당장의 작은 고통을 더 싫어하고, 미래의 더 큰 불행보다 당장의 작은 불행을 더 싫어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반복되는 고통과 불행의 쳇바퀴, '반복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우선 용기 있게 자신의 내면과 마주해야 한다. 때로는 전문가의 도움도 받아야 한다. '익숙한 편안함'의 불행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낯선 불편감'에 도전해야 한다. 그래야 나도 모르게 작동하던 '반복강박'을 벗어나 내가 진짜 원하는 행복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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