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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육사의 생생한 삶 담은 공간…중구 남산동에 ‘이육사기념관’ 16일 개관

(사)대구작가콜로퀴엄이 대구문학관과 함께 대구시로부터 위탁 운영

이육사기념관 외부 전경. (사)대구작가콜로퀴엄 제공
이육사기념관 외부 전경. (사)대구작가콜로퀴엄 제공
이육사기념관 내부 모습. (사)대구작가콜로퀴엄 제공
이육사기념관 내부 모습. (사)대구작가콜로퀴엄 제공

지역 출신의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인 이육사(1904~1944)를 기리는 이육사기념관(이하 기념관)이 오는 16일 대구 중구 남산동(중앙대로 67길 11)에 문을 연다.

안동이 고향인 이육사는 가족과 함께 대구로 이사 온 뒤 6번의 이사를 다녔다. 현재 이육사기념관이 들어서는 곳은 1922년 이육사의 가족이 거주하던 곳이다. 2020년 해당 부지 일대가 주택재건축사업에 들어가면서 생가가 철거됐고, 시공사가 기념관을 지었다. 기념관은 (사)대구작가콜로퀴엄이 대구문학관과 함께 대구시로부터 위탁 운영한다.

기념관은 ▷이육사의 삶과 독립운동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는 연보로 구성된 '이육사의 시간을 읽다' ▷대구 활동을 중심으로 지도와 함께 이육사의 독립운동 자취를 찾아볼 수 있는 '이육사의 발자취' ▷이육사에 대한 다양한 기록들을 영상으로 보는 '영상으로 만나는 이육사' ▷이육사의 기록을 사진으로 보는 '사진으로 만나는 이육사' 등의 전시 공간으로 구성됐다.

이육사는 '끝까지 지조를 지키며 단 한 줄의 친일 문장도 남기지 않은 작가'로 알려져있다. 영천 백학학원 교원, 도쿄, 베이징 유학 시기 몇 년을 제외하면 1932년까지 중외일보, 조선일보 기자로 근무하며 줄곧 대구에서 활동했고 스스로도 '대구사람 이육사'라고 밝혀왔다.

그의 저항정신은 1927년 장진홍 의사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탄 투척 사건에 연루돼 대구형무소에 투옥되면서 받은 수인번호 264를 필명으로 쓴 것에서 상징적으로 엿볼 수 있다.

또한 루쉰의 소설 '고향'을 번역했고, 윤곤강, 김광균 등과 함께 한 '자오선' 동인 활동, 그리고 '청포도'를 비롯한 '절정', '광야' 등의 시를 발표하며 문학적 업적을 쌓았다.

하청호 대구문학관 관장은 "이육사 선생의 주거지를 복원해 대구에서의 활동을 조명하자는 시민들의 오래된 요구가 비로소 결실을 맺게 되었다"며 "여러 단체 및 이육사문학관(안동), 대구시교육청 등 유관 기관과 함께 이육사 선생의 예술 행적과 독립 활동을 조명하고 알릴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기획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육사기념관의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이며, 매주 월요일과 1월 1일, 설날과 추석은 휴관이다. 관람료는 무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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