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다꾸' 시대다. 별걸 다 꾸미는 시대라는 얘기다. 획일적인 디자인으로 넘쳐 나는 기성품에 휩쓸리지 않는 MZ는 작은 소품 하나에도 공을 들여 나의 취향, 나의 감성을 새겨 넣는다. 누가 알아보고 평가를 하든, 혹은 나만 알고 있는 것이든 뭐든 상관 없다. 오로지 나의 만족을 위한 것일 뿐. 이른바 '셀프 커스터마이징' 유행은 옷, 신발과 같은 패션을 넘어 스마트폰, 다이어리, 카드 등 일상 생활 속 다양한 아이템으로 번져가고 있다. 이번 MMM은 '원 앤 온리'에 푹 빠진 MZ세대를 들여다본다.
◆디자이너는 바로 나야 나
"옷을 주문할 때부터 함께 입어보고 사진으로 남겨 놓는 과정 모두가 너무 좋은 추억이 됐어요. 어렵지 않게 가족들과 더 돈독해지는 방법이어서, 주변에도 많이 추천했답니다."
하혜민 씨는 지난해 가족들과 함께 단체티를 입고 여름 휴가를 다녀왔다. 앞에서 보면 평범하지만, 뒤에는 아버지, 어머니, 딸, 아들, 며느리, 손녀라고 큼지막하게 적힌 흰색 반소매 티셔츠였다. 각자 옷을 입고 머리 위로 하트를 그린 뒤 찰칵! 그렇게 남긴 사진은 두고두고 소중한 추억이 됐다고.
가족 단체티 뿐이랴. 친구들끼리 별걸 다 프린트해 넣은 옷을 맞춰 입고 사진 찍은 모습을 SNS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뭘 새겨 넣냐고? 각자의 MBTI나 '우/리/우/정/뽀/에/버'를 한글자씩 프린트한 건 너무 '순한 맛'이다. 영원히 삭제하고 싶은 나의 흑역사(예를 들면 초·중·고 졸업사진)를 100m 밖에서도 보일 정도로 대문짝만하게 넣거나, '번호 따가'라는 문구와 함께 각자의 연락처를 넣기도 한다. 혹은 반려동물 얼굴을 넣어 '자식 자랑'의 용도로 쓰기도 한다.
이렇게 셀프 커스텀 옷이 유행하는 이유 중 하나는 주문 제작이 어렵지 않기 때문. '단체티 주문 제작'을 검색하고 반소매티, 맨투맨티, 후드티, 조끼 등 다양한 옵션을 선택해 주문한 뒤, 업체 디자이너에게 프린트하고 싶은 내용을 카톡으로 보내면 간단한 상담을 거쳐 빠르면 일주일 내로 받아볼 수 있다. 그야말로 내가 입는 옷을 내가 디자인할 수 있는 셈.
왜 이렇게 잘 아냐고? 남들 하는 거 다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MMM팀도 최근 단체티를 주문 제작해봤다. 로고를 새겨 넣은 티를 입고 뒷모습을 찍은 사진을 보니 단합력과 소속감 뿜뿜..!!! 누가 봐도 MMM팀이잖아..?! 로고를 디자인한 이 기자는 세상에 4장밖에 없는 티셔츠의 디자이너가 됐다는 기쁨과 뿌듯함을 느꼈다고 한다.
넥스트. 셀프 커스텀 유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지비츠'다. 지비츠는 구멍이 송송 뚫린 고무 재질의 신발 브랜드 '크록스'를 장식할 수 있는 참이다. 내맘대로 붙였다 떼며 하나의 신발로 다양한 느낌을 연출할 수 있는 것이 장점.
지비츠는 디즈니, 포켓몬 등 귀여운 캐릭터부터 알파벳·숫자, 반짝거리는 주얼리, 발광하는 LED까지 종류가 수천가지에 달한다. 신발 꾸미는 거, 아이들만 좋아하는 거 아니냐고? 의외로 크록스 매장 내 지비츠 코너에서는 아이부터 어른까지 다양한 종류의 지비츠를 만지작거리며 고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내 스타일' 고른다는 데 나이가 무슨 상관이랴.
요즘은 오뚜기, 농심 등 기업을 비롯해 에스파 등 아이돌 그룹과의 협업을 통한 한정판 지비츠도 출시됐다고 하니 그 인기가 상당함을 알 수 있다.
직장인 김모(27) 씨는 "귀여운 지비츠를 발견하면 사진을 찍고 인스타그램에 올려 자랑한다.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나 취향을 공유할 수 있어 좋다"며 "계절에 따라, 그때 그때 기분이나 입은 옷에 따라 지비츠를 바꿔 끼우며 나만의 커스텀을 즐긴다"고 말했다.
◆식지 않는 유행, 다꾸·폰꾸
사실 셀프 커스텀 유행의 원조 격이자 조상과 같은 아이템은 옷도, 신발도 아니다. 바로 '다꾸', '폰꾸'. 손재주 좋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도전 욕구가 샘솟는 바로 그 다이어리 꾸미기, 스마트폰 꾸미기 말이다. 응용 버전으로는 필통 꾸미기, 에어팟 꾸미기 등이 있겠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다꾸'를 먼저 살펴보자. 고사리 같은 손으로 잡지나 신문을 오려 붙이거나 형광펜, 사인펜, 색연필로 알록달록 색칠해서 어떻게든 예쁘게 꾸며보려는 노력이 가상했던 지난날의 다꾸. '없으면 그리면 되지'라는 신념으로 인어공주 그리다가 실패해서 울트라맨으로 완성해버렸던 지난날의 다꾸….
요즘 다꾸하는 MZ들은 '다꾸샵'에 간다. 다꾸샵에서는 다꾸를 할 수 있는 스티커와 마스킹테이프, 엽서 등을 파는데, 그 종류와 갯수가 어마어마하다. 다꾸샵에 있으면, 상상하는 무엇이든 종이 위에 만들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랄까?
최근 TV프로그램 '나혼자산다'에서도 가수 악동뮤지션의 이찬혁과 그의 어머니가 다꾸샵을 방문해 다양한 다꾸 재료를 11만원어치 구매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그렇게 산 재료로 집에서 다꾸를 하며 힐링의 시간을 보내는 모습까지 완벽했다고 한다..!
특히 요즘은 미니 포토프린터, 라벨지, 실링 왁스 스탬프 등 전문(?) 다꾸템을 이용하기에, 가히 예술 작품과도 같은 결과물들이 탄생하기도 한다. 다이어리가 더이상 개인적인 감정이나 하루 있었던 일을 적는 용도가 아닌, 나의 개성과 미(美)의식, 센스 등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는 셈이다.
또한 꾸미는 것에 몰두하는 과정 자체를 즐기기도 한다. 대학생 이모 씨는 "내가 좋아하는 취향대로 이리저리 스티커를 붙이다보면 스트레스가 풀린다. 또 내가 어떤 색,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는지 좀 더 뚜렷하게 알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폰꾸'도 꽤 오랜 역사를 지녔다. 심지어 폰꾸 이전에는 삐삐에 스티커 붙이거나 구슬 고리 달고 다니는 '삐꾸'도 있었다. 2000년대부터는 폴더폰이든, 슬라이드폰이든 스티커를 붙이거나 케이스를 갈아끼우는 방식의 셀프 커스텀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요즘의 폰꾸도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다만 폰스트랩, 링홀더, 그립톡처럼 손에 폰을 고정하기 위한 아이템이나 키링, 스티커, 폰케이스 등 꾸밈을 위한 아이템들이 보다 다양해졌다. 특히 원하는 그림이나 사진으로 주문 제작하는 '커스텀 폰케이스'도 있다.
겉만 꾸미면 진정한 폰꾸가 아니다. 잠금화면과 배경화면, 위젯까지 내 취향과 편의에 맞게 설정해야 진짜 폰꾸 완성! 기본 설정 외에 예쁜 위젯 테마가 있는 별도의 앱을 내려 받아 폰을 꾸미기도 하는 것이 요즘 갬성(감성)이다.
◆진짜 별 걸 다 꾸며
MZ들은 생각보다 더 꾸미기에 진심이다. 폰꾸, 다꾸에서 "그정도는 나도 해봤지"라고 생각했다면 다음에 나오는 단어들은 조금 당황스러울 수도 있다. 특히 M세대보다 Z세대 사이에서 카꾸(카드 혹은 카메라), 폴꾸(폴라로이드), 깊꾸(기프티콘) 등 다양한 꾸미기 문화가 생겨나고 있다.
폴꾸는 좋아하는 아이돌의 폴라로이드 사진에 스티커나 큐빅 등을 붙여 장식하는 것이며, 카꾸는 기존에 획일적인 디자인으로 나오는 카드들에 스티커를 붙여 커스텀디자인한 것을 말한다.
또한 깊꾸는 누군가에게 카카오톡 기프티콘을 선물할 때, 바코드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에 손글씨로 메시지를 적거나 그림을 그리는 등 예쁘게 꾸며서 주는 것. 상대에게 바로 기프티콘을 선물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선물하기'를 해서 바코드를 캡처한 뒤 정성스럽게 꾸며서 그 이미지를 보내는 게 포인트다.
지금까지 소개한 셀프 커스텀 아이템들의 공통적인 특징이 뭘까? 바로 '정성'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나의 만족을 위한 것이든, 누구에게 줄 선물을 위한 것이든, 함께 하는 이들과의 단합을 위한 것이든 '맞춤 제작'에는 시간과 노력이 들어갈 수밖에 없을 터. 소소한 행복을 위해 정성을 쏟는 MZ들의 '별다꾸' 문화가 사랑스러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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