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의 가을, 대한민국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황당한 사건들에 몹시 지쳐가고 있는 듯하다. 초가삼간을 태운다던 그 빈대가 출현하지를 않나, 믿고 있던 '나의 아저씨'가 마약 혐의로 포토라인 앞에 서질 않나…. 개중 압권은 역시 일론 머스크와 펜싱 시합을 한다는 정체성이 모호한 인물의 등장일 것이다. 피곤할 정도로 말도 안 되는 그의 거짓말이 알려질 때마다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수많은 상식의 저변이 흔들리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포털 사이트의 댓글 반응 역시 이제 '그 두 여성'에 관련된 뉴스는 그만 보고 싶다가 대부분이다. 서사를 전공하고 연구한 사람으로서 이번 사건은 참으로 좋은 자료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비현실적 상황이 영화나 문학이 아니라 실제로 벌어지게 되면 얼마나 불편한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니까 말이다. 그들의 행적을 되짚어보다가 문득 서글프지만 위대한 소설 한 편이 떠올랐다.
침대에서 잠을 깬 그레고르 잠자라는 이름의 한 남자는 자신이 거대한 벌레로 변해있음을 알게 된다. 그는 벌레로 변한 자신의 몸을 확인하는 충격적인 순간에도 만약 회사에 가지 못한다면 직장에서 해고되어 부모가 진 빚을 갚지 못할 것이란 걱정을 하고 있다. 잠자는 어떻게든 침대에서 일어나보고자 애를 쓰지만 미세하게 꿈틀거리는 것 외에는 집을 나설 방도가 없다.
20세기 환상문학의 대표작인 카프카의 '변신' 속 첫 장면이다. '변신'의 가치는 세기를 뛰어 넘어 인정받고 있는데 그 이유는 시간과 공간, 역사의 구애를 받지 않고 무한한 비유와 상징으로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나니 한 마리의 징그러운 독충으로 변해버린 쓸쓸하고 피곤한 외판원의 이야기로 소설은 시작된다. 산업화에 따른 인간 소외나 정체성의 상실 같은 흔한 표현을 빌리지 않더라도 이 작품에 등장하는 충격적인 '변신'의 테마는 서사의 이면을 매우 먼 곳으로 우회시키는 역할을 함에 틀림없다.
이 이야기는 우선 현대 산업화 사회에서 낙오한 한 인간이 맞이하게 된 최후를 그리는 서사로 읽힌다. 또한 그레고르 잠자의 변신은 본래적 자아와 현실적 자아라는 개념을 통해 다시 설명될 수도 있다. 그의 본래적 자아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과정에서 점점 퇴색돼간다. 오직 돈을 버는 것을 최대의 과제로 삼게 된 그의 현실적 자아는 잠자의 본래적 자아를 공격하게 되고 그로 말미암아 파괴된 잠자의 정신은 그의 육체마저도 흉측한 곤충의 모습으로 변화하게 만든다. 벌레는 결국 끝없는 욕망의 좌절 속을 살아가야 하는 인간들의 비극적인 상징물인 셈이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생활의 발견'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인간답게 사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지만, 우리 괴물이 되지는 맙시다." 자본이라는 괴물이 성적 정체성의 판단마저 흐리게 했다는 사실이 참으로 아찔하고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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