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민주주의 위협하는 선거

조두진 논설위원
조두진 논설위원

선거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구성원 간 이견과 갈등을 해소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제도다. 민주주의가 유지, 작동되자면 공정한 선거와 결과에 대한 승복이 전제되어야 한다.

민주주의 선진국으로 평가받는 미국에서, 민주주의 근간인 선거가 오히려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키기 시작한 것은 2000년 11월 대선 때부터다. 당시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앨 고어는 공화당 후보였던 조지 W. 부시에게 선거인단 득표 266대 271로 패했다.(선거인단 1명 기권)

선거 다음 날 새벽, 개표 막바지. 승패를 결정지을 플로리다주(선거인단 25명)에서 부시가 이긴 것으로 보도되자, 고어는 부시에게 당선 축하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초박빙(0.5% 차이 미만)이었고, 검표에 들어가자 고어는 패배 인정을 취소했다.

이후 부시 측은 승리를 선언하며 '대통령직 인수 작업'에 돌입했고, 고어 측은 전면 수작업 재검표를 요구하며 법정 싸움을 펼쳤다. 검표, 재검표를 거치며 한 달 이상 공방전이 펼쳐졌다. 이 과정에서 미국인들은 둘로 쪼개져 '상대가 대통령직을 도둑질하려 한다'며 서로 비난했다.

대선이 끝나고 5주가 지난 2000년 12월 13일 고어는 "국민 단합과 민주주의 강화를 위해 승복하기로 했다"며 승복 선언을 했다. 하지만 상당수 민주당 지지자들은 패배도 승복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민주주의를 대놓고 위협했다. 그는 2020년 대선에서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에게 경합 주인 조지아주에서 패하는 결과가 나오자 조지아주 국무장관에게 '(선거 결과를 뒤집기 위한) 표를 찾아내라'고 압박했다. 당시 부통령 겸 상원 의장이던 마이크 펜스에게는 '선거 결과를 인증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민주주의를 부정하라는 요구였다. 대선 결과 인증을 막기 위해 트럼프 지지자들이 의사당에 난입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선거에 부정이 개입하거나, 선거 결과를 믿기 어렵다면 민주주의는 위험해진다. 우리나라 선관위의 투·개표 보안 관리 수준을 보면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국정원 합동 보안 점검에서 드러난 수많은 허점과 2020년 4·15 총선 때 제기된 온갖 의혹을 보면 말이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