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어떤 이유에서도 정당화될 수 없다.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데 안토니우 구테흐스 UN 사무총장은 이 사태에 대해 '역사적 맥락'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했다. 하마스와 이스라엘 중 누가 피해자이고 가해자일까?
필자가 상담을 한 A군은 학교에서 교사에게 욕하고 대드는 것은 물론, 친구들에게도 충동적 행동을 일삼았다. 같이 사는 그룹홈 선생님들도 A군을 버거워한다.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A군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호소한다.
그런데 A군은 태어나자마자 친부모의 얼굴도 모르는 상태에서 입양을 갔다. 입양 후 양부모는 이혼했고 A군은 양부와 함께 생활했다. 이어 양부가 아동학대자로 신고되면서 양부의 양육권이 박탈됐고, 양부의 친척 집에서 잠시 머물다가 파양된 끝에 그룹홈에서 생활하게 됐다. A군은 문제아일까? 아니면 폭력성을 지닌 정신질환자일까? 혹은 피해자일까?
A군은 그동안 병원에 다니고 상담·미술 치료 등 여러 치료를 받았지만 해결이 되지 않았다. 그룹홈, 학교, 상담 선생님, 교육청 관계자, 그리고 의사 등이 모여 상의를 하고 논의를 해봐도 마땅한 해결책은 없었다. 이런 아동을 수용할 수 있는 그룹홈으로 보내면 좋겠지만 그러한 곳은 없다.
사실 요즘 A군과 같은 아동들이 너무 많다. 일대일 상담에선 상담자의 가르침을 다 이해하고 수용한다고 하지만, 막상 실전에선 행동 조절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현장 담당자들과 비현장 담당자들의 견해 차이가 심하고, 아이를 잠시 본 사람과 같이 살고 있는 사람들 간 인식 차이가 크다.
정부에서도 이런 아동들을 위해 많은 정책을 펼치고 있다. 실질적으로 많이 개선된 부분이 있지만, 실효성은 아직 많이 부족한 것 같다. 이는 아동이 '생물학적 생존'에서 '사회적 적응'으로 넘어가는 단계의 사다리가 끊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 필요한 사회적 기술을 갖추기 위해서는 그 아동의 내면에 ▷자신과 사회와의 관계 설정 ▷자기 가치 및 자존감 회복 ▷자율성 회복 등의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
A군 같은 아동은 사회에 대한 불신이 마음 깊이 자리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불신 때문에 인지적 지식이 행동화로 이어지는 것을 방해한다고 볼 수 있다. 즉 아동의 내적 어려움부터 해결되어야 사회적 적응이 순조롭게 이루어질 수 있다.
필자에게는 수십 년간의 소아정신과 진료 등을 통해 얻은 결과가 한 가지 있다. 위와 같은 문제를 지닌 아동들을 모아 '자율성 회복 및 사회성 증진' 그룹 프로그램을 시급히 실시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 프로그램을 한두 번 실시한다고 아동들이 지닌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교육 당국과 의료 및 심리 치료자들이 합심해 이런 아동에게 맞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시행한다면 가장 효과적인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세상에 가해자, 피해자, 방관자가 있다면, 어쩌면 방관자는 잠재적 피해자이자 잠재적 가해자이기도 하다. 청소년 분야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 해결책을 하루빨리 찾아야 한다. 이것이 우리 사회에서 발생할 묻지마 폭력을 예방하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청소년 정신 건강에 대한 투자는 향후 지불해야 할 비용에 비하면 조족지혈일 것이다. 곡돌사신의 마음을 잘 이해해 주길 바랄 뿐이다.
박용진 진스마음클리닉 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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