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전 한국선거학회 회장)
국민의힘이 서울시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 이후 당 쇄신을 위해 혁신위원회를 출범시켰다. '푸른 눈의 한국인'으로 유명한 전남 순천 출신인 연세대 의대 인요한 교수를 위원장으로 임명했다. 인요한 혁신위는 비대위로 가기 위한 전 단계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기대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다양한 혁신안을 제시하면서 국민과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당 지도부 및 중진, 대통령과 가까이 지내는 의원들은 총선 불출마 또는 수도권 험지 출마 권고'가 당내 큰 파장을 일으켰다. 그러나 당 지도부와 윤핵관들이 이런 혁신안에 침묵하거나 강하게 반발하면서 혁신위가 흔들리고 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급발진으로 당의 리더십을 흔들거나 당의 기강을 흩트려 놓는 건 하지 않아야 한다"고 했고, 친윤계 핵심인 장제원 의원은 "알량한 정치 인생 연장하면서 서울 가지 않겠다"며 지역구 출마 의지를 분명히 했다. 당 지도부와 혁신위 간의 갈등은 일단 김기현 대표와 인요한 위원장이 만나 잠정 봉합하는 모습을 보였다.
인요한 위원장도 "누구보고 불출마하라고 이야기한 적 없다"며 한발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갈등의 불씨는 언제든 되살아날 수 있다. 인요한 혁신위가 국민의 지지를 받아 성공하려면 몇 가지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첫째, 최우선 순위에 대한 원칙이다. 혁신위는 윤석열 정부 집권 1년 5개월 만에 국민들이 왜 등을 돌리고, 집권당이 민생을 챙기지 못하고, 보궐선거에서 참패했는지 그 이유에 대한 심층적 분석을 통해 그 원인을 밝히고 이를 토대로 혁신의 최우선 순위를 정해야 한다. 국민의힘에 당장 필요한 것은 '통합과 포용'이 아니라 '반성과 성찰'이다.
당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가로막고 있는 거대한 벽을 무너뜨리는 것이 우선이다. 당이 대통령실 눈치를 보지 않고 수직적 관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용기 있는 행동'을 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만드는 것이 급선무다. 이것이 혁신의 본질이 돼야 한다.
둘째, 한국 정치에서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정치 개혁의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 특히, 비대하고 집권화된 중앙당 운영 시스템을 바꾸고, 제왕적 당 대표 체제를 종식시킬 수 있는 정당 개혁이 필요하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정당이 국고 보조금에만 의존하는 전근대적 정당 시스템을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게 개혁하고, 국민에게 공천권을 돌려 줄 수 있는 공천 개혁에 대한 구체적인 개혁안을 제시해야 한다.
여성과 정치 신인들이 차별받지 않도록 현역 기득권 중심의 법과 제도도 대폭 바꾸어야 한다. 최근 혁신위 특강에서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가 "이번 혁신위원회는 정당 민주주의를 확보할 수 있는, 정착시킬 수 있는 상향식 공천에 초점을 맞춰서, 혁신위가 당에 권고하는 방향으로 해야 한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셋째, 사즉생의 각오로 국민만 바라보며 활동해야 한다. 인 위원장은 혁신위 첫 회의에서 "혁신은 국민 눈높이로 내려가 국민의 목소리를 듣고 반영되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최근 인 위원장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윤 대통령 측으로부터 '소신껏 끝까지 당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거침없이 하라'는 신호가 왔다"고 언급했다.
김기현 대표의 지적처럼 "당무에 개입하지 않고 있는 대통령을 당내 문제와 관련해서 언급하는 것"은 패착이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혁신위는 권력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믿고 국민과 함께하는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
넷째, 자기만의 정치 불가 원칙이다. 위원장이 '설화'나 자기만의 정치를 위한 개인 행동으로 혁신의 동력을 사라지게 해서는 안 된다. 인 위원장은 제주 4·3평화공원을 참배한 뒤 "우유를 마실래, 아니면 매를 좀 맞고 우유를 마실래 이런 입장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주변 인사들에게 "독약 처방을 하겠다"는 말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발언들은 상당히 무례하고 교만한 모습으로 비칠 수 있다. 인 위원장이 "나는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이미지 메이킹에만 집중하면 큰 어려움에 봉착할 것이다. 혁신위원장이 혁신위를 자신의 정치 입문의 장으로 이용하려고 하거나, 공천을 받기 위해 지도부 눈치를 본다면 혁신의 대상으로 전락하면서 혁신은 물 건너간다. 여하튼 교만은 혁신의 적이다. 인요한 위원장이 낭만 닥터가 아니라 불굴의 혁신가로 성공하려면 위에서 제시한 원칙들을 지키며 민심을 얻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실패한다.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전 한국선거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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