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골목과 푸드코트

김동혁 소설가

김동혁 소설가
김동혁 소설가

대구는 '길'이나 '거리'보다는 '골목'으로 상권의 이름을 붙이는 경우가 잦다. 이런 현상에 뚜렷한 역사적, 사회학적 증거를 들이댈 수는 없지만 워낙 유명한 '약전골목'이 강력한 가부장의 권력처럼 오래 전부터 대구의 명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설'을 떠올려본다. 비단 약전골목뿐만 아니라 남일동 진골목, 안지랑 곱창막창골목, 동인동 갈비찜골목, 북성로 공구골목, 인교동 오토바이골목, 향촌동 수제화골목, 동성로 야시골목 등 수많은 골목들이 대구의 밑바닥 상권을 책임지고 있다.

이 역시도 개인적인 생각이기는 하지만 대구에서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골목은 교동의 이자카야골목일 것 같다. 잘 알고 있겠지만 이자카야(居酒屋)는 일본식 선술집이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저녁 회식을 마친 후 가볍게 한 잔 더하며 아쉬움을 달래기에 좋은 안주와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런 저런 골목이 유행처럼 생겨나고 또 쇠락하는 일이야 뭐 특별할 것이 있겠냐마는 대구 교동의 경우는 조금 색다르게 느껴지는 것이 있다. 바로 노포의 활용이다. 사실 교동 인근은 동성로 쪽에 비해서 새로운 건물들이 거의 지어지지 않았고 기존 건물의 내부를 수리해서 쓰는 일도 드물었다. 분명 중심가, 그러니까 대구 사람들이 잘 쓰는 말로 '시내'는 맞지만 어딘가 외면 받고 버려진 느낌이 꽤 오랫동안 계속되어 왔다.

말 그대로 옛날 골목이었다. 운치 있다고 하기에는 조금 무질서했고, 그렇다고 다 파헤쳐서 새로운 건물을 만든다고 한 들 경제성을 보장할 수 없는 묘한 처지에 놓여 있는 것 같았다.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동아백화점 주변을 조금만 걸어 봐도 교동의 건물들이 어떤 처지인지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다. 지어진 지 거의 100년에 가까운 건물들이 여전히 상업에 활용되고 있었지만 그 상가의 가치는 매우 초라했다는 것 역시 사실이다.

그런데 흰색 반팔 티셔츠와 통 넓은 청바지를 입고 챙을 구부리지 않은 모자를 쓴 젊은 사장들이 교동의 그 낡은 상가에 모이기 시작하면서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맥주상자 위에 방석을 깔아 만든 의자와 창틀에 합판을 덧대어 만든 테이블, 뒷자리 손님과 등이 맞닿을 만큼 좁은 실내까지. 오래되고 낡아서 천대 받던 그 노포가 이제는 '힙(hip)'한 명물들이 되어가고 있다.

한때 노인들마저 외면했던 그 상가에 스물 몇 살 젊은이들이 모여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다가 '골목이란 이렇게 살아나는 것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심재생 어쩌고 하는 교수들의 논문이나 골목 상권 부활을 위한 지자체의 프로젝트로는 교동의 노포를 힙하게 바꾸지 못했을 것이다. '돈 냄새'를 맡은 상인의 능력은 상상을 초월하는 법이다. 만약 교동에 있던 낡은 상가를 밀어버리고 시에서 만든 푸드코트가 세워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임대료도 착하게 받고 세금도 깎아주는 파격적인 조건이 주어진다고 하더라도 과연 그것이 골목의 구실을 할 수 있었을까?

행정과 연구에는 '방법'만 있을 뿐 '분위기'가 없다. 전 세계에서 가장 눈 높은 우리나라의 소비자들이 분위기 없는 식당을 찾아가겠는가. 그럼 국가와 지자체는 무엇을 해야 하냐고? 그들은 골목을 만들려고 하지 말고 만들어진 골목을 잘 보호하고 그 골목의 역사와 길이가 더 길어질 수 있는 정책을 연구하면 된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