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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227>유비의 용인, 제갈량의 신의

미술사 연구자

정선(1676-1759),
정선(1676-1759), '초당춘수(艸堂春睡)', 비단에 채색, 28.7×21.5㎝,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소장

'초당춘수'는 위, 촉, 오 삼국의 정립을 거쳐 진나라 성립까지 중국의 역사를 소설화한 '삼국지연의'의 인상적 이야기인 삼고초려를 그린 겸재 정선의 고사인물화다.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는 14세기 명나라 때 나왔지만 1천여 년 간 축적돼 온 영웅과 호걸들의 흥미진진한 활약상에 대한 대중들의 공감의 결정체다.

방대한 분량이라 2천여 명의 등장인물에 대한 인물사전이 따로 있는 것은 박경리 선생의 대하소설 '토지'도 그렇다. 유비가 주인공이고 촉나라가 우리 편이라는 게 통설이지만 제갈량이 사실상 주연이라는 의견도 있다. 왕은 타고나는 신분이므로 독자들은 유능한 참모인 제갈량에게 더욱 감정이입이 됐을 것 같다. 그만큼 등장인물의 형상화가 평면적이지 않은 소설이다.

제갈량이 위나라 정벌을 위해 출병하며 올린 '출사표'는 '고문진보'에 실려 조선의 사대부들에게 많은 공감을 받았다. 유비가 죽고 아들 유선을 모시던 제갈량이 전쟁에서 살아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마치 유서를 쓰듯 국가를 위해 하나하나 당부하며 올린 글이다. 제갈량이 끝까지 유비에 대해 지킨 '신의(信義)'는 '삼국지연의'의 주요 교훈이다.

누가 봐도 첫 주군보다 모자라는 아들이고, 유비조차 나라의 보존을 위해서라면 그대가 나라를 거둬도 좋다고까지 했다. 왕좌를 차지하기 위해서라면 혈육까지 죽이는 일이 역사에 무수했다. 제갈량의 충심(衷心)은 유교사회 조선에서 더욱 충신의 모범이었다.

삼고초려는 제갈량의 거듭된 거절에도 불구하고 유비가 세 번이나 찾아가 결국 신하로 삼았다는 '용인(用人)' 대표적 사례다. 천하의 인재를 모아 일세의 위업을 이루려 한 영웅들은 용인술의 천재였다.

대숲을 두른 깊은 산중의 초가집은 차양을 달아냈고 담장은 돌도 나무도 아닌 풀로 짠 삿자리로 둘렀다. 대문도 없는 조촐한 집이다. 마당에는 단정학 한 마리가 있다. 낮잠은 이런 초당의 은자에게 어울린다.

소나무 가지 근처에 제목과 제화, 서명이 있고 오른쪽 아래의 언덕에 8글자가 더 숨어있다.

형익도(荊益圖) 은재하벽(隱在何壁)/ 형주와 익주의 지도는 어느 벽에 숨겨 두었는가?

공괄산비(恐聒山扉) 병원종자(屛遠從者)/ 산속 사립문을 시끄럽게 할까 시종을 물리쳤다네

유비와 제갈량은 명군(明君)과 양신(良臣)으로 역사에 남아 명량천고(明良千古)의 모범적 사례가 됐다. '초당춘수'는 중국의 역사소설인 '삼국지연의'가 조선의 상류층에서 폭넓게 읽혔음을 알려준다. 영조는 '삼국지연의' 탐독자였고 '서유기', '수호전' 등을 애독했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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