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각과 전망] 이웃을 이웃이라 못 부르는 동네

최경철 동부지역 취재본부장
최경철 동부지역 취재본부장

지난 21일 이강덕 포항시장, 주낙영 경주시장, 김두겸 울산시장이 울산에 모였다. 경계를 맞대며 남북으로 이웃 생활권인 3곳의 동해안 지방정부는 지난 2016년부터 '해오름 동맹'을 맺고 협력사업을 추진해 왔는데 이날 모임도 그 연장선이었다.

3곳은 경북과 경남을 통틀어 어느 동네보다 잘사는 지역으로 꼽힌다. 울산은 글로벌 완성차 메이커 현대차가, 포항에는 포스코, 경주에도 연간 매출 10조원이 넘는 한국수력원자력 본사가 자리해 있다. 그런데 이들 3곳의 단체장들은 모이기만 하면 "껍데기뿐"이라는 한탄을 내놓는다고 한다. 지난 21일 모임에서도 똑같은 하소연이 쏟아졌다.

포항만 해도 포항 본사 기업 포스코의 본사 기능 축소 움직임으로 인해 포항 시민들 속앓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최근엔 미래기술연구원의 수도권 분원을 포항 본원보다 무려 24배나 더 크게 만든다는 계획이 드러나 큰 충격을 줬다. 포스코는 지주사(포스코홀딩스) 본사도 서류상 주소지만 포항이고 실질적 본사 기능은 서울에 모두 두고 있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

울산은 현대차의 출발지요, 생산 거점이지만 현대차 본사 기능은 물론, 본사 주소지도 서울이다. 국가 에너지 대계를 위해 저준위방폐장을 받아든 경주 시민들의 희생과 결단으로 한수원 본사가 경주로 왔지만 본사 기능이 경주에 있다고 자신 있게 얘기하는 이들은 눈 씻고 봐도 찾기 어렵다.

이 현실이 세계 어느 자본주의 선진국을 둘러봐도 일반적이고 보편적 현상이라면 그냥 투덜거림 정도로 끝내야 한다. 하지만 기업 본사 기능이 서울에만 존재하는 이 모습이 전 세계에서 우리만 가진 특수하면서도 기형적인 것이라면 새로운 제도적 설계를 통해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일본 시총 1위 도요타자동차 본사는 생산 공장이 있는 아이치현 도요타시에 있다. 기자는 도요타자동차 취재를 간 적이 있는데 본사가 도쿄가 아니어서 불편함이 있지 않느냐는 기자 질문에 "전혀 없다"는 즉답을 도요타차 임원으로부터 들은 기억이 난다. 제조업 강국 독일을 봐도 세계적 화학 기업 바스프 본사는 인구 16만 명뿐인 루트비히스하펜, 폭스바겐 본사는 인구가 12만 명에 불과한 볼프스부르크다.

포스코에 투자했고, 대구 달성의 대구텍 지분을 사들였던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이 2007년 10월 대구에 왔을 때 기억이 떠오른다. 그는 기자가 동석했던 대구텍에서의 기자회견에서 "고향 오마하(네브래스카주)의 49년 된 집에 산다"고 했다. 투자 중심지 뉴욕이 아닌 시골로 여겨지는 오마하에서 투자회사 버크셔 해서웨이를 경영하는 그는 좋은 기업이라면 지구 끝까지라도 찾아다닌다고 소개했다. 어디든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세상에서 오마하라는 위치는 결코 걸림돌이 아니라고도 강조했다.

본사가 서울에 있어야 기업이 잘 돌아간다는 것은 핑계일 뿐이다. 글로벌 기업들이, 세계적 투자자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다수의 상시 근로자들이 일하는 곳, 생산 현장이 있는 지점에 기업 본사를 두고, 실제 본사 기능도 두는 것이 글로벌 스탠더드다. 기업 자율에 맡겨둘 일이 아니다.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키우기 위해 기업 본사 소재지와 실질적 본사 기능에 대한 제도 재설계를 정치권이 해야 한다. 포스코든, 한수원이든, 이대로라면 포항·경주 시민이 이웃을 이웃이라 부르지 못한다. 이웃 없는 외톨이가 승승장구하는 것을 못 봤다. 외톨이 기업이 수두룩한 나라의 미래 역시 캄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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