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 소속 큐레이터의 경우 외부 전시를 기획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해당 기관에서 겸엄을 허용하는 경우가 없을뿐더러, 전시 기획뿐만 아니라 연계 행사 준비, 사업 공모에 따른 행정 업무 등 몰려드는 일로 여유가 없을 터.
박천(37) 영천 시안미술관 큐레이터는 기관 소속 큐레이터로는 흔치 않게 지역 곳곳의 외부 전시들을 활발하게 기획해오고 있다. 코로나 시기 시안미술관에서 진행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비롯해 수창청춘맨숀에서의 'Hoxy...당근이세요?' 등 지금까지 50여 개의 전시를 기획했고, 예비기획자 육성 프로젝트 '큐레이팅 101' 등 신선한 활동들도 선보여왔다.
최근 대구예술발전소에서 만난 그는 "조금 유별난 케이스다. 워라밸이 거의 없을 정도로 열심히 살고 있다"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그는 전시 기획이라는 용어조차 생소하던 2010년대부터 이 일에 뛰어들었다. 2010년 계명대 학부 3학년일 때 학회장을 하면서 경북대, 대구대, 대구예술대, 대구가톨릭대, 안동대, 영남대 등 7개 대학과 함께 연합 전시를 기획한 것이 첫 시작이었다. 그는 "대학생들이 그림을 걸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으니, 우리가 직접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다"며 "주제 없이 각자의 그림을 내건 정도였지만, 교수 등의 도움 없이 오롯이 160여 명 참여 학생들의 노력으로만 완성된 전시였다"고 회상했다.
이후 교육학 석사, 미술학 박사 과정을 밟으며 그는 전시 기획도 하나의 미술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현장의 사정은 녹록치 않았다. 그는 "작가들끼리 모여서 전시하면 되지, 왜 기획자가 필요하냐고 묻던 때였다"며 "전시 오프닝마다 뛰어다니며 열심히 자리를 잡으려 애썼다"고 말했다.
돈은 안되고 판은 좁고, 기획자를 대상으로 한 지원사업도 많지 않았던 때라, 생각해보면 젊은 기획자가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판을 좀 더 키우고 더 큰 프로젝트를 하기 위해 그는 2017년 '스테어스' 그룹을 만들고 젊은 기획자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 때쯤 기획했던 '스테어스아트페어'가 나의 활동 중 가장 기억에 남아요. '영무예다음'이라는 아파트 건설업체에서 모델하우스 공간을 선뜻 내줬습니다. 당시 자생적인 아트페어들이 서울에서 유행하던 때라, 대구도 좋은 작가, 작품들이 있으니 해보고 싶었죠. 젊은 작가 위주로 60여 명이 모였는데 정말 해보고 싶었던 걸 실현할 수 있었던 기회여서, 모든 과정들이 고생보다는 즐겁게 느껴졌습니다."
그는 지난 8~10월 대구예술발전소에서 진행한 '하이퍼 임프레셔니즘'도 기억에 남는 전시로 꼽았다. 그는 "요즘 작가들은 예전처럼 협회나 단체에 소속되지 않고 개인적으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 작가간, 지역간, 매체간 교류할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번 전시로 끝나는 게 아니라 작가들이 교류할 수 있는 지속적인 프로젝트로 끌고 나가려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 전시기획자로 활동해오는 게 쉽지 않은 길이었다. 어떤 사명감이 없으면 지속하기 힘든 일이라는 생각"이라며 "대구경북에서는 매년 6~7개 대학에서 미대생들이 쏟아져 나온다. 인재들이 많고 미술 역사가 깊은 도시기에 그래도 희망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박 큐레이터는 앞으로 대구를 중심으로 세계적인 스토리를 만들어내고 알리는 방향으로 연구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역사적으로 대구가 가진 미술의 힘이 적지 않고, 지금 국내 미술의 중추를 담당하는 분들도 대부분 대구경북 출신들이다. 대구는 그만큼 예술적인 스토리가 풍부하고, 에피소드 소재들도 충분한 도시"라며 "앞으로 그런 얘기들을 잘 엮어내보고 싶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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