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3.30~2023.11.12"(대구에 첫발을 디딘 날과 사망일자)
대구를 사랑한 한 지휘자가 대구에 영원히 잠 들었습니다. 지난주 경북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이틀동안 조문객을 받았으며, 명복공원에서 화장한 후 팔공산 도림사 추모공원에 안장했습니다. 불가리아에 살고 있는 친지들은 시신 인도를 원치 않았으며, 사후에도 대구와 함께 하기를 기원했습니다.
1955년 불가리아에서 태어난 독일 시민이자 대구 명예시민 마에스트로 줄리안 코바체프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2014년 대구로 와서 2023년 3월까지 대구시향의 상임지휘자로 시민들의 클래식 열풍을 이끈 주역입니다. 그의 공연은 9년 내내 "전석 매진"이라는 꼬리표가 항상 따라다녔습니다. 클래식 대중화의 선두주자 역할을 한 셈입니다.
살아 생전 코바체프와 10차례 가까이 점심식사를 함께 했습니다. 불고기나 돈가스 등을 함께 먹은 후에 커피 한잔 하면서 늘 웃곤 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하이 퀄러티 개그를 구사하는 그는 어설픈 영어로 억지로 웃기려고 했던 제 멘트를 살려주는 리액션으로 함께 한 이들에게 잔잔한 미소를 머금도록 했습니다. 권영진 전 대구시장 시절에 스타 지휘자로 각광받았던 그는 바뀐 홍준표 시장에게도 '이런 아이디어가 있으니, 좀 만나게 해달라'고 했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상임지휘자 직책을 내려놓고, 독일로 돌아갈거라는 예상도 했지만 '제2의 고향' 대구에서 살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문화를 사랑하는 지역 중견기업 '태창철강'의 문화예술 담당자로 영입됐으나, 이후 급격히 건강이 악화되며 갑작스런 비보를 전하게 되었습니다.
사망 당일에는 대구시향 사무장으로 함께 일한 오상국 대구문화예술진흥원 예술진흥부장이 하늘나라로 가기 몇 십분 전에 전화를 받고 바로 자택으로 갔지만 이미 그는 병원으로 실려가 싸늘한 시신이 되어 있었습니다. 개인 매니저 역할을 하며, 의식주에 불편함이 없도록 도와준 오 부장은 사후에도 상주 역할을 하며, 코바체프와의 운명같은 인연을 가슴 속에 담아두고 있습니다.
매일신문사와의 특별한 인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코바체프는 TV매일신문 미녀와 야수(권성훈 앵커와 김민정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토크 20분'에 출연해 영어와 우리말을 넘나들며, 큰 웃음과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미녀와 야수와 '동물 맞추기' 게임에서는 '티라노사우르스'를 흉내내는 야수의 동작을 맞춘 후에 박장대소한 기억도 새록새록합니다. 더불어 2020년에는 탑리더스 아카데미에서 "나의 음악인생"이라는 주제로 멋진 강의를 들려줬습니다.
두 가지 아쉬움이 마음 속을 불편하게 하기도 합니다. 지휘 도중 쓰러지는 바람에 인공심장 박동기를 달고 살아야 했기에, 건강관리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 했음에도 너무 무심한 듯 생활했습니다. 병원 가는 것도 싫어했으며, 무엇보다 독한 담배를 하루에 2,3갑을 피울 정도로 애연가였습니다.
또, 만 10년을 대구에 살았는데, 한국말을 배우기 위해 좀 더 노력했더라면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하는 점입니다. 그는 기본적인 인사말 정도는 구사했지만, 뇌 구조를 복잡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그런지 한국말을 배우려는 의지를 불태우지 않았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자유롭게 살다가, 자유 영혼이 되어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김종성 전 대구예총 회장은 조문온 날 이런 말을 던졌습니다. "집시처럼 살다, 집시처럼 떠나." 일견 동의합니다. 코바체프는 68년 평생에 정식 결혼을 한 적이 없습니다. 당연 직계 가족도 없습니다. 현재 연락이 되는 친지도 사촌지간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내년 이 맘 때쯤 그를 추모하러 갈 공간이 대구에 있다는 건 정말 다행입니다.
사람의 운명은 알 수 없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알고 계시나요? 코바체프는 우리가 잘 아는 프란시스 코폴라 감독의 대작 '대부'에서 주연 알 파치노(마피아 보스)의 아들 역할로 정식 캐스팅 제의를 받았으나, 음악을 위해 포기했다는 사실을. 그런 결정을 한 후에는 명지휘자 카라얀으로부터 지휘를 공부해, 세계적인 인지도를 가진 마에스트로의 삶을 살았습니다. 사후에도 코바체프는 '대구의 마에스트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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