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지하철로 출퇴근한다. 아침마다 환승역에서는 익숙한 풍경이 반복된다. 열차를 갈아타기 위해 계단을 뛰어가는 젊은이들 모습이다. 지각하지 않으려는 마음은 이해되지만, 안전사고 위험이 걱정된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본다. 만약 뛰어가지 않아도 열차를 탈 수 있도록 배차간격을 조정하면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까? 이것이 기술의 문제일까, 아니면 손님을 배려하는 마음의 문제일까?
기술 개발과 관련해서 우리는 세계 최고의 첨단기술을 개발해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일에 온통 관심이 쏠려 있다. 일종의 하이테크(high-tech) 전략이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반도체, 디스플레이, 이차전지 등 우리가 이미 앞서 있는 분야에서는 초격차를 유지하고, 또 양자, 바이오 등 떠오르는 부문에서는 '될성부른 떡잎'을 찾아 열심히 키우자는 것이다. 그래서 달에 우주선을 보내는 것과 같은 야심 찬 문샷(Moonshot)형 과제가 추진되고, 세계 최고의 기술 파트너와 협업이 강조된다.
충분한 재원이 뒷받침된다면 여러 분야에서 최첨단 기술에 도전하는 것은 좋은 전략일 수 있다. 하지만 내년에도 경기 침체는 이어지고 세수는 줄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의 R&D 투자 규모도 축소되어 국회에 제출된 상황이다. 즉 지금은 그간의 연구개발을 돌아보면서 구조조정 방향에 대해 고민할 시기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여기서 구조조정이란 높은 성과가 기대되는 특정 분야에만 자금을 집중투자하는 포트폴리오 조정에 그쳐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올바른 방향은 하이테크에 하이터치(high-touch)를 접목해 다양한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이다. 다음과 같은 구체적 방법이 가능하다고 본다.
첫째, 문샷과 룬샷 프로젝트의 균형이다. 샤피 바칼은 그의 저서 〈룬샷〉에서 성공 가능성이 전혀 없어 보이는 허무맹랑한 꿈과 같아 보여 다들 무시하고 홀대하는 룬샷(Loonshots)형 프로그램이 결국 비즈니스의 판을 바꾸게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핸드폰 강자였던 노키아에서 애플의 아이폰이 출시되기 이전에 그와 비슷한 아이디어가 제시되었으나 경영진의 거절로 빛을 보지 못하고, 결국에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사례도 있다. 당장 성과가 없어 보인다고 무조건 줄일 것이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엉뚱한 생각을 시도해 보는 기회는 최대한 늘려야 한다. 연구개발에서도 잔뜩 들어간 힘부터 빼야 진짜 성과가 나타난다.
둘째, 적정기술(appropriate technology)에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는 하이터치를 결합하는 방법이다. 인프라가 충분하지 않은 개발도상국에서는 첨단기술보다 환경에 맞는 중간기술이 생활에 더 도움이 된다. 물이 귀한 사막 지역에서는 아이들도 물을 날라야 하는데, 드럼통 가운데 구멍을 뚫어서 바닥에 굴리는 큐드럼을 개발해 물을 나르는 시간과 에너지를 절약하게 만든 기술이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나이가 많은 기성세대에게는 기능이 다양한 첨단기술보다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적정기술이 더 잘 먹힐 수도 있다고 본다. 이어령 교수도 〈디지로그〉에서 디지털 기술과 아날로그 감성이 결합된 제품과 서비스가 중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셋째, 실패한 기술에서 성공의 단초를 찾아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연구 결과가 성과로 이어지지 못한 이유가 기술의 문제라기보다는 생각의 부족에 기인한 것이 상당히 많다고 생각한다. 접착력이 떨어지는 3M의 테이프는 포스트잇으로 재탄생하였다. 사용자를 배려하는 차원에서 기존 기술을 다시 생각하고 실패한 사례들을 재결합해 본다면 또 다른 기회가 생길 것이다. 서두에서 제기했던 지하철 환승 문제도 기술 문제라기보다는 배려 문제라고 생각한다. 예산이 부족하더라도 충분히 시도해 볼 수 있는 다양한 구조조정 방안은 존재한다.
하이테크 기술은 우리의 생활에 편리함과 효율성을 제공한다. 그 대가는 일상에서 은근히 빠른 해결을 부추기면서 삶의 여유를 갉아먹는 것이다. 사람에 대한 배려가 없는 기술은 우리의 삶을 파괴하거나 황폐화시킬 수도 있다. 이제 하이테크는 하이터치를 만나야 한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이 하이테크 부문을 주도한다면, 우리 인간은 하이터치 부문에서 적절한 역할을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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