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몰라도 되는 절차는 없다

김태진 논설위원

김태진 논설위원
김태진 논설위원

16일 있은 대학수학능력시험 종료와 함께 수험생들의 눈은 사회·문화 13번과 수학 22번 등의 정답에 쏠렸다. 지나치게 어렵다는 목소리였다. 이들의 아우성에 현직 강사들도 합세했다. 난도 조절 실패 문항으로 지목했다. 오지선다형 문제니 찍어도 정답률이 20%는 나와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모든 수험생이 찍는 건 아니니 산술적으로 말할 순 없어 보인다. 28일 오후 5시에 이의 신청 등을 종합한 정답이 공개된다. 왜 그게 정답인지 설명하는 과정도 뒤따른다. 만일 오류가 있는 것이라면 빠른 인정으로 신뢰도를 높여야 한다. 수능시험은 매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국가기관이 신뢰를 쌓는 방식이다.

그라운드의 지배자로 불렸던 축구 심판의 태도가 VAR(Video Assistant Referee) 도입 이후 확연히 달라졌다. 자신의 눈이 완벽하지 않다는 걸 인정하고, 빠른 인정만이 최선의 방식임을 깨달은 것이다. 2016년 클럽 월드컵에 VAR을 처음 도입한 이후 FIFA에는 재경기 청원 선동이 사라졌다. 100년이 넘는 역사의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도 비디오 판독을 2014년 도입한 이후 영역을 넓히고 있다. 오심으로 인한 불필요한 논쟁이 줄어들자 스트라이크 볼 판정도 로봇 심판에 맡길 것이라 한다.

완벽한 오판인 듯해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권위를 세우려는 집단도 있다. 1960년대 중국 공산당의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은 당의 무오류 신념이 빚은 대참사였다. 무오류에 집착하면 누구도 비판할 수 없게 되고 자기합리화의 극단으로 치닫게 된다. 반기를 들면 반동으로 처단됐던 광기의 시대였다. 결국 그 시대는 예술 작품이 희화화하는 단골 소재가 됐다. 1970년대 북한 당국은 시도 때도 없이 주민들에게 명태를 나눠 줬다고 한다. 학용품을 사러 가도 명태를 주고, 일하고 돌아갈 때도 명태를 줬다. 탈북자들의 증언이다. 어획량이 크게 늘었지만 보관이 어려웠던 탓이었다. 이를 미화하기 바빴던 친북주의자들의 전언은 달랐다. 북한 사회는 정이 넘쳐 만나는 사람마다 명태를 나눠 주며 서로 먹으라 했다며 낭만적 화폭처럼 묘사했다. 당에 오류란 없다는 거였다.

더불어민주당이 현재의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에서 위성정당을 포기하면 내년 총선에서 최대 35석까지 국민의힘에 뺏길 수 있다는 시뮬레이션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지역구 득표율과 정당 득표율을 연계해 의석수를 배분하는 방식은 산식의 까다로움으로 지금도 원리를 모르는 국민이 상당수다. 민주당의 시뮬레이션 실현 여부는 국민들에게 관심사가 아니다. 국민들은 여전히 국회의원도 잘 모르는 복잡한 투표 제도를 국민들에게 요구하는 건 어불성설이라 여긴다. 이런 마당에 야권 일부에서는 여전히 수정해 계속 쓰자는 목소리를 낸다. "국민들은 그 사실을 알 필요 없다"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대의를 잃은 발언이다. 아이들 축구도, 집안마다 다르다는 고스톱도 규칙부터 합의하고 시작한다. 내 뜻을 대신해 줄 대표를 뽑는 절차를 몰라도 된다는 걸 어떤 국민이 수긍한단 말인가.

헌법재판소가 합헌 결정을 내린 만큼 정당성도 얻었다지만 야합의 흑역사로 기록될 가능성이 농후한 제도다. 이해득실을 계산해 규칙을 바꾸려 꼼수를 쓰고 있는 걸 국민들은 지켜보고 있다. 의석 확보라면 야합도 마다하지 않는 이들에게 표를 줘도 될지 고민한다는 건 명확하다. 저의가 뭔지 이미 온 국민이 알아 버렸는데 고쳐 쓸 생각을 한다는 건 만용으로 비칠 뿐이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