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서 가장 말하기 힘든 두 가지 말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처음 만났을 때의 '안녕'이고, 다른 하나는 헤어질 때의 '안녕' 이다.
둘 중 나는 후자가 더 힘들다. 처음 만나 사람들에게 인사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으나, 오랫동안 만났던 사람들과의 헤어짐에 있어 무슨 말을 어떻게 건네야 할 지 도통 생각이 나질 않는다.
최근에 오랫동안 근무하던 병원에서 다른 병원으로 이직을 하게 되었다. 여러 사정들이 얽히고 설키는 가운데 긴 시간 고민 끝에 옮기게 되었다. 여러 죄송하고 미안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지만 짧지 않은 세월동안 나를 찾아준 많은 아이들, 그리고 엄마, 아빠들에게 너무 미안하다. 생활 반경이 다른 곳이어서 '그곳까지 오시라'는 말은 차마 할 수가 없었다.
옮기는 시간이 다가오면서 두 달 전부터는 아이와 부모님들께 직장을 옮기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양해를 구했다. 처음에는 어떻게 이야기를 할 지 몰라서 많이 망설였다. 사실 '구태여 이런 이야기를 해야 되나?', '보호자들이 별 관심 없지 않을까?' 등 여러 생각들 속에 말을 꺼내면, 모두들 많이 아쉬워해 주셨다. 옮기는 병원으로 '먼 길이지만 오겠다'는 분도 계셨고, '가지 말라'고 만류하는 부모님들, 그리고 그동안 '오랫동안 고마웠다'는 아이들의 편지를 받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그동안 '열심히 살아왔구나' 라는 생각도 들면서, 아쉽기도 하고, 허전하기도 하고…. 내 안의 한 부분이 떨어져 나가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오랫동안 함께 해서, 아이들의 주치의가 되고, 부모님들과도 친해져 스스럼없이 지낸 시간. 신생아 때부터 만난 아이가, 걷기 시작하고, 말하고,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생이 되는 모든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았기에 그런 아이들을 떠난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그 과정 중에 즐거운 일이 있을 땐, 부모님과 함께 기뻐하고, 아이가 아파서 입원하게 되면, 부모님과 함께 걱정하며 보낸 시간들. 아이의 삶을 부모님과 함께 공유했던 것이다. 더불어, 함께 즐겁고 힘들었던 시간의 한 조각을 나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다른 어떠한 과에서도 가질 수도, 느낄 수도 없는 소아과 만의 매력이라 생각된다. 아이들의 성장과 발달을 부모님과 함께 느끼고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작별의 인사를 나누며, 부모님들께 '그동안 감사했다'는 말을 전하며 아이들에게 '안녕' 이라는 말을 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언제 만날지 알 수 없고, 금방금방 아이들이 자라서, 나중에 보면 전혀 못 알아 볼 수 있으니,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생각에까지 이르니, 진료실 문 밖을 나서는 아이들이 더욱 애틋해진다.
미국의 소설가 니콜라스 스파크스는 그의 소설에서 이별을 이렇게 말했다.
"안녕이라는 것은 단순한 작별의 인사가 아니다. 이건 감사의 인사인 것이다. 나의 삶으로 들어와서 나에게 기쁨을 주고, 나를 사랑해주고, 나의 사랑에 대한 보답을 준 것에 대한 감사인 것이다. 그리고, 내가 영원히 간직할 수 있는 추억을 준 것에 대한 감사이기도 한 것이다."
나의 삶에 아이들과 부모님들이 들어왔고, 까칠한 몇몇 부모님들 때문에 아주 조금은 힘들기도 했지만, 아이들 때문에 즐겁고 기뻤으며, 나를 믿고 신뢰해주는 부모님들 때문에 행복했으며, 영원히 간직할 추억이 내게 주어졌기에 아이들과 부모님께 감사드린다. 또, 아이들과 부모님들의 삶 속에 내가 들어가게 되었고, 아이들이 아프고 힘들 때 최선을 다해 도움이 되려고 노력하였고, 아이들을 사랑하려 많이 노력했다고 자부한다.
병원을 떠나면서, 작별의 인사를 남기지 못한 많이 아이들과 부모님들께 이 자리를 빌어 말씀드리고 싶다.
"그동안 너무 고맙고 감사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그리고 엄마, 아빠들과 함께 아이들의 삶의 한자락을 함께 나눌 수 있어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이동원 대구가톨릭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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