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MZ세대 50명을 대상으로 '가장 최근 가슴이 뛰었던 순간'을 모아 쓴 기사를 기억하는지. 당시 원래 계획했던 아이템이 펑크난 걸 메꾸려 급하게 취재한 것 치고,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는 등 주변 반응이 꽤 좋았다. 기사가 나간 뒤 내 마음이 두근거렸던 순간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다른 사람들의 얘기를 보며 감동과 자극을 얻었다는 얘기들이 곳곳에서 들려왔다.
그래서 이번에는 MMM(매일 MZ 매거진)팀이 X세대(1960~80년대생)의 얘기를 들어봤다. X세대가 어떤 세대인가. 남들의 시선 따위 신경 쓰지 않는 개성 넘치는 삶도 살아보고, 일과 육아의 전쟁에서도 두 눈 부릅뜨고 살아남았고, 마침내 오랫동안 꿈꿔왔던, 혹은 가슴 깊이 간직한 소망을 하나씩 꺼내 새로운 삶에 거침없이 도전하는 세대 아닌가.
'열정의 원조'다운 이들의 열정기록부를 공개한다. 얘기 하나하나가 감동의 연속이니 눈물 주의. 기사를 보며 자신의 열정이 불타올랐던 때가 언제였는지를 생각해보는 것도 좋겠다.
1. 권유미(50·화가)= 지난 8월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페스티벌에서 오페라 '멕베스'를 봤다. 짙은 울트라마린 색의 배경에 가로로 긴 밝은 옐로우빛 나무 의자가 굉장히 미니멀하고 세련된, 아주 큰 무대가 눈에 확 들어왔다. 그동안 비구상 작업을 고심하던 중이었는데 아주 좋은 소스가 돼 지금 전시 중인 '희유의 빛'이라는 작품을 만들게 됐다. 새로운 작업에 중요한 소스를 얻게 한 베르디의 오페라 '맥베스'가 최근 가장 뜨거운 가슴을 가진 순간의 기억이다.
2. 김ㅇ숙(56·회사원)= 세 자녀의 어머니다. 아무래도 아이들의 일이 잘 풀렸을 때가 인생에서 가장 가슴이 뛰었던 것 같다. 첫째 딸이 대학교를 합격한 것도 기분이 좋았고, 둘째 딸도 언니와 같은 대학에 합격했을 때가 많이 기억에 남는다.
3. 김남훈(49·복싱선수)= 2023년 11월 11일을 잊을 수가 없다. 대회 최고령 출전자로 복싱대회에 출전했던 날이다. 붉은색 경기복을 입고 링 위에 섰을 때 두근대던 심장. 펀치를 날릴 때의 그 쾌감! 1년 반 동안 연습했던 나날들이 머릿속을 싹 스쳐갔다. 그리고 공동우승이라는 쾌거도 이뤘다. 오십. 반백살 전에 무언가를 해냈다는 사실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나는 죽을 때까지 이 날을 잊지 못할 것 같다.
4. 김동혁(47·소설가)= '따끔하실 겁니다' 백옥 같은 피부의 여자 원장이 내 미간과 이마에 주사 바늘을 찔렀다. 난생 처음 느끼는 생경한 통증이 사정 없이 얼굴 전체로 퍼져나갔지만 동시에 알 수 없는 짜릿함도 뇌수의 깊은 곳까지 흡수되고 있었다. 이름마저 세련되고 팽팽한 느낌을 주는 그 약물, 보톡스. 나는 20여 년 전으로 돌아가 마치 '남들의 시선 따위는 눈곱만큼도 신경 쓰지 않는' 그 때의 X세대가 된 것처럼 한결 반짝이는 모습으로 피부과를 걸어 나왔다.
5. 김미경(60·주부)= 1988년에 결혼하고 90년, 92년에 아이를 낳았다. 이 아이들이 태어났을 때를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이 아이들은 첫 걸음마를 떼고, 유치원을 가고, 대학 졸업을 하며 점점 커갔다. 제 밥벌이를 하겠다고 힘든 몇 년을 보내더니 좋은 곳에 취업을 했다고 한다. 그 때의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6. 김미선(58·주부)= 두 아이의 엄마다. 평소에 아이들이랑 많은 관계를 맺지는 못하고 있다. 그런데 아이들의 깜짝 이벤트 선물이 기억에 남는다. 기념일 등도 아닌데 문득 "엄마가 생각났다"는 말에 기분이 많이 좋았다. 무뚝뚝하면서도 '엄마를 생각해주고 있구나'하는 마음이 들어 기분이 좋았다.
7. 김수옥(56·미술치료사)= 올해 초부터 백화점 문화센터에 다니면서 가슴이 뛴다는 느낌을 받는 것 같다. 학창시절 미술을 좋아했었고 대학 전공도 미술을 택하게 되면서 한때 화가의 꿈을 가지기도 했었는데 지금까지는 생계가 급해 제대로 된 그림을 그리지 못했었다. 그래도 나이가 어느 정도 들고 나니 내가 원했던 그림, 나만의 그림을 그려보자는 생각이 점점 들었고 올해 초부터 수업을 들으면서 조금씩이나마 그림을 그리게 되면서 가슴이 뛰는 느낌을 받았다. 향후 조그맣게라도 개인 전시를 하고 싶다는 꿈도 있어서 노력하려고 한다.
8. 김ㅇㅇ(45)= 막내가 또래에 비해 저성장으로 항상 힘들었다. 최근 병원 검사에서 주사 치료 후 성장 속도가 빨라져 희망이 생겼다는 의사의 말을 들었을 때가 가장 벅찼던 것 같다.
9. 김은영(49·주부)= 최근 오래된 친구와 미술관을 갔다. 문화 생활 안 하고 지낸 지 오래 된 것 같은데, 친구의 성화에 못 이겨 떠난 여행이었다. 한 미술 작품을 보는 순간 눈물이 났다. 미술 작품의 아름다움 때문이었는지, 무엇 때문이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그때의 뭉클함을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그 날 이후 무엇이든 찾아서 해보려고 한다. 시간이 가는 게 참 슬프다.
10. 김희연(43·어린이집 교사)=대구 강정보에서 열린 70년대생 마라톤 대회에 참가했었다. 78년 말띠 친구들과 인디언 치마를 입고 신나게 달렸다. 엉뚱한 모습으로 참가했던 우정런. 친구와 함께라면 뭐든 좋았다. 모이기만 하면 깔깔대던 10대로 돌아간 것처럼 오래된 친구들과 강정보를 달렸다. 숨이 차오르자 가슴이 뭉클하고 뜨거워짐을 느꼈다. 친구들아~ 우리 신문 나온다~
11. 마연희(55·자영업)= 남편과 선을 봤던 그날. 잘생긴 남편의 모습에 한마디로 '뿅' 갔다. 하지만 남편은 애프터 신청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날 집에 돌아와 편지를 썼다. 오랜 시간 마음을 눌러 담아 편지를 쓰고, 그 편지를 남편에게 전할 때. 가슴이 참 많이 뛰었다. 그 편지가 전달되고 보름 후 우리는 결혼을 약속하게 됐다.
12. 문현주(44·대구미술관 홍보팀장)= 봄, 초여름 훌쩍 지난 것 같은 내 나이에 발레 슈즈를 신고, 어릴 때 이루지 못한 꿈을 향해 느림보 걸음으로 발레를 배우고 있다. 일을 이룬 성취감과는 또 다른 감동이 내 심장을 가득 채웠던 2019년 겨울을 시작으로 다행히 발레는 꾸준히 배우고 있고, 골절이 걱정되긴 하지만 토슈즈 신고 꼿꼿하게 설 수 있어 스스로 큰 칭찬 중. 콩쿠르 도전이 새로운 목표가 된 지금, 월요일마저도 행복하다.
13. 박ㅇ숙(50·회사원)= 세 아이의 엄마이자, 회사원으로 나만의 시간을 즐기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최근 오래된 친구들과 열린 음악회를 갔다. 그때 몸과 마음으로 함께 즐겼던 순간이 너무 좋았다.
14. 박문희(60·주부)= 질문을 받고 가족이 가장 먼저 생각났다.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 그리고 남편과 결혼했을 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말을 실감케 했던 딸 아들을 낳았을 때. 그리고 남편이 드디어 국시에 합격했을 때. 남편이 한의원을 개원했을 때. 이 모든 순간들이 기억이 난다. 번외로 남편에게도 물어봤다. 그랬더니 남편이 말한다. "우리 연애 초기에 보경사 갔을 때. 그리고 뽀얀 당신 얼굴 볼 때."
15. 박상기(48)= 태권도를 하는 아들이 이제 어느덧 졸업할 때가 다 돼서 사범으로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다. 직접 운동을 해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모습을 보니 다 컸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보람찼다.
16. 배ㅇㅇ(53)= 아파트 전세를 끝내고 비록 작지만 내 집을 마련해서 청소하고 새롭게 입주한 첫날 저녁이 기억난다.
17. 백정미(55)= 가수 이찬원의 대구 콘서트 티켓팅이 치열할까봐 걱정했는데 다행스럽게 딸이 vip석 두 장을 잡아줬다. 연말에 하는 콘서트인데다 분홍색 옷을 맞춰 입고 갈 생각을 하니 매우 설렌다. 이럴 땐 딸 밖에 없는 것 같다. 앞으로도 효케팅 잘 부탁해~
18. 백현자(50)= 아이들을 다 키우고 최근에 내 힘으로 일을 나가기 시작했다. 경력 단절에서 첫 월급을 받았을 때 보람찼던 것 같다.
19. 송호진(48·대학교수)= 42.195km의 풀코스 마라톤 올해로 19회 완주했다. 기록은 대략 3시간 30분 이후에서 4시간 이내 완주. 3시간 이내(2:59:59) 완주를 sub3라고 하는데 이것은 정말 다시 태어나도 나에겐 넘사벽인 듯하다. 하지만 기록이 아주 조금씩 sub3와의 격차가 줄어드는 순간 몹시 희열을 느끼곤 한다. 흔히들 인생은 마라톤이라고 하는데 출발점에서부터 42.195km 결승선까지는 고통과 힘듦이 교차되는 자신과의 싸움이다. 체력의 한계에 부딪치게 되고(특히 35km 지점), 극한의 인내심으로 결국은 피니쉬의 성취감을 맛본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로 오버페이스는 금물이며, 본인의 페이스에 맞게 달려가야 할 것이다.
20. 신은영(55·주부)= 어릴적 교회 친구들과 해마다 한두차례 모인다. 교회 유치부 주일학교 꼬꼬마적부터 알고 지냈던 55세 친구들. 만나면 우리는 깔깔깔, 호호호 하느라 바쁘다. 이번에는 1박 2일로 가창에 다녀왔다. 잠옷도 맞춰 입고 밤새 수다를 떨었다. 누구보다 맘 편하게 내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들. 모이면 나이를 잊고 그 시절로 돌아가 지금의 상황과 우울함이 사라진다. 기쁨이 배가 되는 나를 속속들이 잘 아는 친구들과 배려 넘치는 1박 2일. 참으로 행복했던 날들.
21. 심ㅇ섭(60·사업가)= 경기가 어려운 요즘, 사업이 잘 풀릴 때가 가장 가슴이 벅차다. 특히 공사 입찰을 했을 때다. 노력과 운이 함께 작동해야 되기 때문이다.
22. 우동윤(50·기자)= 대학시절 사진가를 꿈꿨었는데 어찌 하다보니 20년 가까이 방송기자를 하고 있다. 꿈을 잊지 못해 5년 전부터 혼자 사진 공부를 하며 틈틈이 개인 작업을 하던 중 지난 해 가을 고마운 분들이 좋은 기회를 주셔서 개인전을 열었고, 사진집 출판에 북콘서트까지 했다. 눈물이 날만큼 감격스러웠던 시간이었다. 내 나이 50, 아직은 본업에 충실해야 할 나이이지만 금세 다가올 퇴직 이후의 삶을 준비해야하는 나이이기도 하다. 많은 분들의 관심과 격려 속에 그 준비를 시작하게 된 것 같아 늘 기쁘고 감사하다.
23. 유0희(56·회사원)= 최근 라인댄스를 배우기 시작했다. 잘하고 싶은 마음에 집에서도 새로운 음악에 맞춰 스스로 연습도 하는 등 열심히 하는데, 너무 즐거웠다. 새로운 일이나 취미에 도전할 때 가슴이 뛰는 것 같다.
24. 유무숙(64‧주부)= 최근 가슴이 뛰었던 순간은 미국‧캐나다 해외여행을 다녀왔던 10월 초였다. 사실 2020년 4월에 가려 했던 여행이었지만 코로나19로 하늘길이 막혀 돈은 돈대로 버리고 공허한 마음만 남았다. 그러다 친구들과 다시 여행을 계획했고, 지난 10월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을 때부터 그간의 아쉬움은 이내 곧 설렘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다른 나라의 이색적인 모습을 마주할 때 '오는 데까지 오래 걸렸지만 잘 왔다'고 생각했다. 특히 오랫동안 보고 싶었던 나이아가라 폭포를 눈으로 봤던 게 가장 인상적이었다. 여행은 몸을 피곤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나이가 들고 보니 하나의 동기부여가 됐다. 내년에도 앞으로도 해외를 다니면서 늘 가슴이 뛰는 순간을 만들고자 한다.
25. 윤정희(52·회사원)= 엄마와 단둘이 제주도 여행을 떠났을 때가 생각난다. 평생 남편 외조 하느라, 자식 뒷바라지하느라 어느샌가 늙어버린 엄마와 함께 여행을 떠났다. 여건상 해외로 가지는 못했지만 엄마는 참 좋아하셨다. 엄마의 새로운 모습도 많이 봤다. 여행 내내 엄마는 에너지가 넘쳤고, 구경을 할 때는 소녀 같은 모습도 보이셨다. 그 나날들이 머릿속을 맴돈다. 그리고 나는 소망한다. 엄마와 이런 시간을 보낼 날들이 앞으로도 많아지기를.
26. 은ㅇㅇ(52)= 얼마 전에 배추 100포기 김장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가 가장 뿌듯했다. 수육까지 해서 가족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27. 이ㅇ자(49·사업가)= 요즘 새벽과 밤에 가벼운 산책을 시작했다. 특히 거의 매일하는 새벽 산책길에서 해가 떠오르는 장면을 볼 때 가슴이 벅차다. '또 새로운 하루가 시작됐구나'하는 마음이 들면서, 마음이 뭉클해진다.
28. 이ㅇ희(54·주부)= 집의 돈 관리를 도맡아한다. 그래서 늘 재정 문제에 압박 아닌 압박을 받는다. 그래서 그런지, ATM기에서 돈을 빼거나 넣을 때 나는 그 위이잉잉~하는 기계음 소리가 설렌다. 작은 금액의 돈이라도 마치 큰 금액의 돈을 뽑고 넣는 것 마냥 소리가 나는 것이 기분이 나쁘지 않다.
29. 이소ㅇ(52·전시기획자)= 전시 기획자의 일을 하고 있다. 작품을 감상하고 생각하고 읽고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글을 쓰는 삶을 살고 있다. 작품 감상의 소통 창구가 되는 단어나 문장을 찾았을 때가 내게는 가장 가슴 뛰는 순간이 된다. 머릿속은 맑고 밝아지며 벽이라도 뚫을 수 있을듯한 빛줄기가 보이는 듯한 벅찬 순간이 된다.
30. 이ㅇㅇ(45)= 부모님을 모시고 아내와 대만 여행 가는 날이 떠오른다. 부모님을 모시고 가는 첫 해외여행이라 뿌듯하고 벅찼지만, 아내의 여권이 날짜가 갱신 안돼 출국을 못하는 상황이었다. 결국 3명이 먼저 가고 다음날 긴급 갱신해 왔는데, 혹시 못올까 걱정돼 마음 졸였다.
31. 이ㅇㅇ(58)= 자녀가 원하는 곳에 취업했다고 전화 왔을 때 가장 보람찼다.
32. 임덕하(52·사회복지사)=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하고 25년간 아이들을 가르치던 일을 접고, 3년간의 준비 끝에 사회복지사로 노인주간보호센터에서 근무를 하게 됐다. 아침 일찍 출근해야하고 행정 업무도 처음 해봐서 만만치 않다. 또 다음날 자료 준비를 하느라 늦은 시간에 퇴근을 하기 일쑤다. 내 시간과 내 생활이 조금 부족 해지긴 했지만 매일 아침 불편하신 몸을 이끌고 오시는 어르신들을 생각하면 감사하고, 사회복지사가 처음인 내가 진행하는 프로그램들이 부족한 부분이 분명 많을텐데 다들 좋아해주셔서 더없이 감사한 요즘이다. 오십 넘어서 새로운 직업을 가지기 쉽지 않았고 주위 친구들은 이제 하던 일을 정리하고 쉬기도 하지만, 늦깎이 사회복지사는 힘들지만 즐겁고 보람도 느끼는 요즘이 다시 한번 찾아온 '가장 최근에 가슴 뛰었던 순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33. 전초아(44·가수)= 아마도 18살 때, 평생 노래를 하며 살아야겠다는 꿈을 가지게 됐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계속 꿈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 아직도 열여덟에 미래를 확신했던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여러 일을 겪으며 지금까지 살아왔지만 아직도 그때의 나를 잊지 못한다.
34. 정명주(56·아트스페이스펄 대표)= 이삼십대엔 열정을 바깥에서 찾았다. 집으로부터 탈출이 필요했던 시기에 무작정 프랑스로 날아갔다. 오로지 나를 위한 내 인생 최고의 도전이었으며 최상의 시기였다. 이후 일과 열정이 뒤섞였다. 2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열정은 긴장과 초조함으로 쪼그라들었다. 며칠 전 이십대를 함께 했던 친구를 거의 20년만에 만났다. 수평선이 넓게 펼쳐진 바다를 보며 솔밭을 왔다갔다 반복하며 옛이야기를 나누었다. 하늘과 맞닿은 뚜렷한 수평선을 바라보며 우리는 과거의 열정을 기억하며 찾고 있었다. 그날의 추억으로 가슴이 뛴다.
35. 정수진(43·큐레이터)= 컬렉터들과 그림 얘기를 하면서 행복함을 함께 느낄 때, 그리고 작품을 구매한 이후 두고두고 바라보며 감동을 받는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희열을 느낀다. 나를 통해 되도록 많은 분들이 미적 감수성을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 최근에 열렸던 아트페어에서 아는 분께 열심히 작품 설명을 해드리니,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칭찬해주셨을 때 참 좋았다.
36. 정ㅇㅇ(54)= 최근에는 가슴이 뛰거나 벅찬 일이 없었다. 힘겨운 날들이었고 업무면 업무, 가정이면 가정, 모든 안좋은 일이 나한테 몰려오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것 또한 지나가면 벅찬 일들이 생기지 않을까? 지금까지 잘 버티고 있는 게 보람차다고 하고 싶다.
37. 최일ㅇ(47·직장인)= 지난 수능일에 중3 첫째 딸과 한라산 등산을 했다. 제일 힘들다는 관음사에서 성판악으로 내려오는 코스로. 중학교 졸업 기념으로 딸한테 한라산 등산 어때? 라고 툭 던졌는데, 덥석 받았다. 새벽 4시 40분에 일어나서 6시 30분부터 오르기 시작했고, 내려오니 오후 3시 40분이었다. 딸과 함께 꼬박 9시간을 등산했던 게 참 기억에 남는다. 2주가 지난 가슴 속에 뭔가 뭉클함이 남아 있고, 지금도 내 인생에 한 페이지를 함께 장식해준 딸에게 고맙다.
38. 최창화(57)= 오랫동안 꿈꿔왔던 사도삼촌(4일은 도시 3일은 시골)의 삶을 실현하기 위해 제2의 집짓기를 실천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현재는 설계사와 함께 설계 단계에 있는데 관련 책도 사서 필요한 공부를 함께 하고 있다. 생각보다 알아야 할 것도 많고 복잡하다. 걱정 반 즐거움 반의 감정이지만 문제 없이 잘 마무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39. 하연희(56·회사원)= 교회를 다닌다. 지난 19일, 교회 내에서 작은 축제 및 음악을 펼칠 기회가 있었다. 몇 달동안 매주 연습한 기타 헌금송을 아무 실수 없이 마쳤을 때 많이 벅차올랐다.
40. 한선화(47·자영업)= X세대의 상징은 서태지와 아이들이 아니던가. 그들의 전성기부터 해체까지의 모든 순간을 함께 했다는 것이 정말 자랑스럽다. 1992년 여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MBC 인간시대에 방송했던 서태지와 아이들 다큐멘터리를 보겠다고 아이들이 단체로 항의하는 바람에 여름 수련회의 저녁 스케줄이 전면 취소 됐던 것. 그들의 데뷔 무대를 실제로 본 것은 내 인생 가장 신났던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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