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문환의 세계사] '읍참마속' 민주주의…그리스 도편추방제

오늘날 한국 현실 정치 반추
유물·유적 오롯이 남은 그리스 문명…추상 아닌 구상으로 역사 대면하게
민주주의 개혁가 집안 인물 3명도…가혹하리만큼 엄정한 잣대로 탄핵
포세이돈 신전에 남긴 바이런 글귀…美 포 시구로 "…위대함은 로마 것"

고대 아고라에서 바라본 리까비토스 언덕.
고대 아고라에서 바라본 리까비토스 언덕.

"암컷이 설친다"며 희대의 망언을 씨불인 민주당 최강욱 전 의원이 지난 24일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 대해 "정치적으로 편향된 언사를 남발하면 탄핵사유"라고 말했다. 최 전의원은 조국 전 장관의 아들에게 허위 인턴 증명서를 발급해 준 혐의로 지난 9월 18일 대법원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의 확정판결을 받았다. 사실상, 탄핵된 상태에서 한동훈 장관의 탄핵을 입에 올린 셈이다.

이에 대해 한동훈 장관은 22일 "공직자가 세금으로 샴푸 사고 가족에게 법카 줘서 소고기, 초밥을 먹으면 그건 탄핵 사유"라고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겨눴다. 이재명 대표는 이에 앞서 15일 민주당이 탄핵을 남발하는 것 아니냐는 취지의 질문에 "국토균형발전이 중요하다"는 동문서답을 내놨다.

민주당은 11월 9일 이동관 방통위원장, 손준성 검사, 이정섭 검사 탄핵 소추안을 상정했다가 실패했고, 30일 재상정했다. 국회 과반의석을 차지한 민주당의 탄핵 정쟁화가 한국 사회를 옥죈다. 탄핵의 기원으로 평가받는 고대 아테네 도편추방제의 근본정신은 무엇이었는지 타산지석으로 살펴본다.

이까비토스 언덕에서 내려다 본 아테네 시가지와 살라미스 해협.
이까비토스 언덕에서 내려다 본 아테네 시가지와 살라미스 해협.

◆B.C480년 살라미스 해전 페르시아 격파 주역 테미스토클레스

아테네. 2천500여년전 인류사 정치와 문화에 한 획을 그으며 그 잔영을 오늘날까지 교본으로 남긴다. 시가지 면모를 보기 위해 리까비토스(Lykavitos) 언덕으로 올라간다. 궤도전차를 타고 해발 277m 정상에 오르면 파르테논 신전이 자리한 아크로폴리스는 물론 저 멀리 에게해 푸른 물결이 손에 잡힌다. 에게해 건너편 살라미스섬도 아련히 눈에 들어온다.

아테네 관문 피레우스항에서 살라미스섬 사이 바다를 살라미스 해협이라고 부른다. 여기에서 B.C480년 9월 하순 그리스 도시국가들 연합함대와 페르시아 왕 크세르크세스 1세가 이끄는 함대가 부딪쳤다. 그리스 문명권 국가들의 운명을 건 이 해전에서 아테네의 테미스토클레스 장군이 연합함대 지휘권을 맡았다.

헤로도투스는 『역사(Historia)』 8장 43절에 그리스 연합함대가 아테네 함선 180척을 비롯해 378척의 3단 노선을 갖췄다고 적는다. 이에 반해 페르시아는 3배가 넘는 1207척이다. 2차 페르시아 전쟁의 운명을 가른 살라미스 해전에서 그리스 연합군은 테미스토클레스 장군의 지휘에 힘입어 승리한다.

B.C480년 살라미스 해전관련 기록을 담은 비석. 아테네 비문 박물관
B.C480년 살라미스 해전관련 기록을 담은 비석. 아테네 비문 박물관

◆전쟁 영웅 테미스트클레스 도편추방

옴모니아 광장 근처 아테네 국립고고학 박물관 옆 비문(碑文, epigraphy) 박물관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살라미스 해전 관련 기록을 담은 비석들이 탐방객을 맞아준다. "왜 그리스 문명인가?"라고 묻는다면 당대의 생생한 유물과 유적이 오롯이 남아 추상(抽象)이 아닌 구상(具象)으로 역사를 바라볼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동서 문명의 운명을 가른 해전 관련 기록을 보고 비문 박물관에서 나와 파르테논 신전 아래 고대 아고라(Agora)로 간다. 새물내 물씬 풍기는 웅장한 건물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B.C 2세기 페르가몬 왕국(터키 서부 해안의 그리스 왕국)의 아탈로스 2세가 세운 스토아(Stoa, 지붕을 갖추고 한쪽이 야외로 트인 복도)다.

아탈로스 스토아. 현재 아고라 박물관으로 활용된다.
아탈로스 스토아. 현재 아고라 박물관으로 활용된다.

1956년 미국 록펠러재단의 후원으로 복원된 '아탈로스 스토아'는 현재 내부를 아고라 박물관으로 꾸몄다. 주옥같은 고대 그리스 유물 가운데 아크로폴리스 북쪽 산록 우물에서 출토한 [테미스토클레스(ΘΕΜΙΣΘΟΚΛΕΣ)] 글자 도자기 접시들이 눈길을 끈다. 살라미스 해전 승리의 주역, 백척간두 위기의 조국을 구한 명장 테미스토클레스다. 무슨 사연일까?

3단 갤리선. 살라미스 해전 당시 아테네 3단 노선 복원 모형. 아테네 비문 박물관
3단 갤리선. 살라미스 해전 당시 아테네 3단 노선 복원 모형. 아테네 비문 박물관

살라미스 해전 8년 뒤, B.C 472년. 도자기 접시 오스트라콘(Ostrakon, 혹은 Ostraka)에 테미스토클레스의 이름을 적어 추방시킨 도편추방(陶片追放), 오스트라키스모스(Ostrakismos, 혹은 Ostracism) 유물이다. 테미스토클레스 옆에는 네오클레스(ΝΕΟΚΛΕΣ)라는 이름도 적혔다. 테미스토클레스의 아버지다. 동명이인을 분별하기 위해 아버지 이름까지 적는다.

테미스토클레스는 도편추방도 모자라 궐석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는다. 이에 페르시아로 망명해 생을 마쳤으니, 적과 아군의 차이가 무엇인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테미스토클레스 도편추방 내용을 담은 도자기. 아테네 아고라 박물관
테미스토클레스 도편추방 내용을 담은 도자기. 아테네 아고라 박물관

◆영웅도 같은 편도 가차없이 도편추방

이번에는 무대를 근처 키클라데스 박물관으로 옮겨 보자. 아테네 고대 생활 전시관에 진열된 키몬(ΚΙΜΟΝ) 오스트라콘. 테미스토클레스보다 10년 늦게 B.C 462년 도편추방된 인물이다. 역시 밑에 아버지 이름이 적혔다. 밀티아도(ΜΙΛΤΙΑΔΟ). 밀티아데스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밀티아데스가 누구인가? 살라미스 해전에 10년 앞선 1차 페르시아 전쟁 당시 B.C490년 그 유명한 마라톤 전투에서 페르시아에 대항해 아테네의 승리를 이끈 장군이다.

밀티아데스는 불과 1만명 아테네 시민군에 플라타이아에서 온 응원군 1천명을 합해 1만1천명의 팔랑크스(Phalanx, 중장보병 밀집대형) 전법으로 페르시아 대군을 물리쳤다. 마라톤을 찾으면 지금도 밀티아데스 장군의 동상이 우뚝 솟았다. 아테네 시민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던 밀티아데스 장군의 아들 키몬 역시 B.C 480년 페르시아의 재침 때 테미스토클레스가 이끌던 살라미스 해전에서 페르시아 격파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하지만, 아무리 공이 커도 독재의 기미만 보이면 가혹하리만큼 엄정한 잣대를 들이대 탄핵하는 제도가 도편추방제다.

밀티아데스 장군 아들 키몬 도편추방 내용을 담은 도자기. 아테네 키클라데스 박물관
밀티아데스 장군 아들 키몬 도편추방 내용을 담은 도자기. 아테네 키클라데스 박물관

밀티아데스 장군 동상. 마라톤 전투 현장.
밀티아데스 장군 동상. 마라톤 전투 현장.

◆도편추방은 읍참마속(泣斬馬謖)

도편추방제가 처음 도입된 직후 추방인물들을 보면 이런 의미가 더욱 분명해진다. B.C 487년 첫 도편추방 때 쫓겨난 인물은 과거 독재자인 참주 페이시스트라토스 가문의 일원 히파르코스였다. 중요한 점은 그 다음이다. 이듬해 B.C 486년 2차로 도편추방된 인물은 도편추방제도를 만든 아테네 민주주의의 영웅 클레이스테네스의 조카 메가클레스다.

이어 B.C485년 제 3차 도편추방 때 탄핵된 인물도 클레이스테네스의 조카인 칼리케노스였다. B.C484년 4차 도편추방 대상자도 클레이스테네스 가문 일원 크산티포스였다. 훗날 아테네 민주주의의 수호자로 평가되는 페리클레스의 아버지다. 그러니까, 도편추방제를 만들고 첫 번째는 독재자 집안에서 1명, 이후 3번은 도편추방제를 만든 민주주의 개혁가 클레이스테네스 집안 인물 3명을 탄핵했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민주진영 내의 인사부터 목을 치는 읍참마속이 도편추방제의 본질이다. B.C 5세기 13명의 지도자가 그렇게 아테네 권력에서 밀려났다. 민회에서 6천명 이상 시민이 찬성하면 10일 이내에 아테네를 10년간 떠나야 했던 탄핵제도의 추상(秋霜)같은 민주주의 정신에 새삼 고개가 숙여진다.

포세이돈 신전과 수니온 곶. 신전 기둥에 그리스 독립의용군으로 참가한 영국의 낭만파 시인 바이런의 문구가 남아 있다.
포세이돈 신전과 수니온 곶. 신전 기둥에 그리스 독립의용군으로 참가한 영국의 낭만파 시인 바이런의 문구가 남아 있다.

◆애드가 앨런 포, "영광은 그리스의 것" 영광의 참의미

아테네 남동쪽 40km 지점 수니온 곶으로 가보자. 쪽빛 하늘과 라피스 라줄리의 코발트 빛 바다가 어울려 붓도 없이 한 폭의 수채화로 피어난다. 수니온 곶 포세이돈 신전에 영국 낭만파 시인 바이런의 숨결이 새겨졌다. 1823년 오스만 튀르키예 제국에 대항해 독립전쟁을 벌이던 그리스로 왔다가 그만 말라리아에 걸려 37살 나이로 '덧없는 인생'에서 불귀(不歸)의 객(客)이 된 바이런이 여기에 글귀를 남겼다.

출입금지여서 신전으로 들어가 바이런의 글귀를 직접 볼 수는 없다. 19살 때 낸 그의 첫 시집 『덧없는 시편들(Fugitive Pieces)』의 제목처럼 바이런이 덧없이 떠난 20여년 뒤 아테네에 얼씬거린 적도 없던 미국의 작가 애드가 앨런 포가 1831년 18살 때 시를 썼다. 『헬레네에게(To Helen)』. 포가 죽은 뒤 1840년 나온 개정판에 다음 싯수가 실렸다.

"영광은 그리스 것이요, 위대함은 로마 것(To the glory that was Greece, And the grandeur that was Rome)". 그리스의 영광은 읍참마속의 민주주의 정신이 아닐까... 제편의 불법과 부도덕에 눈감은 채 탄핵을 정략으로 남발하는 정치 현실에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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