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장님, 꿈에 돌아가신 할머니가 보이던데, 그 후로 몸도 아프고 뒤숭숭한 게 뭔가 안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이 불안합니다." 이 분처럼 꿈 내용 때문에 상담을 하러 오는 분들이 있다.
꿈은 여러 가지 기능이 있다. 해결되지 않은 억울한 감정, 미련, 그리고 욕망이 드라마처럼 각색되어 꿈으로 나타난다. 꿈은 나를 이곳저곳으로 끌고 다니다가 낯선 곳에 버려두고 잠을 깨워버린다. 악몽으로 꿈자리가 뒤숭숭해지면 아침부터 기분이 좋지 않다. 사실은 악몽일수록 안좋은 기억이나 욕망을 더 털어내기 때문에 정신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도 있다. 악몽은 시리즈처럼 다음날 또 연속해서 꿀 때도 있다. 이럴 땐 그냥 드라마 한편 잘 봤다고 생각하고 탁 털어내면 된다. 꿈이란 뇌가 일하고 있다는 증거이므로 과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수면은 우리 생활에 많은 영향을 준다. 때론 부부 갈등의 중요한 원인이 되기도 한다. 남편은 머리만 대면 코를 골고 자는데, 부인은 작은 소리에도 잠을 깨서 못자는 경우가 그렇다. '마음 편히 먹고 자봐. 당신은 성격이 안좋아서 그래.' 남편이 이런 말을 하면 앞으로 살아야 되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잠은 몸과 마음을 쉬게 하는 최고의 보약인데 잠을 못자는 사람은 얼마나 괴롭겠는가. 짧은 인생인데, 왜 인생의 삼분의 일은 자면서 보내도록 설계가 되었을까. 잠의 의미는 무엇일까. 인생 자체가 고단하고 끊임없이 성장해나가는 중에, 잠을 자면서 쉬고 지친 자기를 위로해 가면서 살라는 의미가 아닐까.
수면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는 낮에 학습했던 기억을 장기 기억 창고로 옮기고, 복사본을 만들어 소뇌에 저장하는 일이다. 공부하는 학생이 잠을 자지 않으면서 공부한다면, 모래 사이로 물이 빠지듯, 저장되지 않고 헛수고만 하게 되는 셈이다.
우리 뇌에 있는 생체 시계가 잠을 조절한다. 이 시계는 각성과 수면, 두 가지 힘이 균형을 이루며 작동한다. 깨우는 힘인 각성과 재우려는 힘인 수면이 잘 조절이 되어야 잘 자고 잘 깰 수 있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머리가 바로 맑아지는 게 아닌 것은, 두 가지 힘이 서서히 교체되기 때문이다.
이른 아침에는 각성과 수면의 힘이 비슷하다가 점차 오후가 되면서, 수면 힘이 약해지고, 각성 힘이 커지면서 뇌도 잘 돌아가고 머리가 청명한 느낌이 들게 된다. 반대로 밤이 되면 각성도가 조금씩 줄어들다가 각성과 수면의 힘이 역전되면서 잠으로 빠져들 수 있다. 수면의 힘이 1%라도 세져야 잠이 오는데, 하품은 나는데 잠이 안 오는 황당한 경험을 할 때가 있다. 뇌 안에서 힘의 역학 때문이다.
피곤하다, 졸린다, 잔다. 이 세 가지는 비슷한 느낌이지만, 잠을 잘 자는 분들은 피곤하면 졸리고, 졸리면 자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루라도 불면을 경험한 분들은 피곤한 거 졸린 거 자는 것이 어떻게 다른지 정확히 구별한다.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불안장애 등의 원인으로 잠이 안오는 경우를 2차성 불면증이라고 한다. 이런 요인없이 불면증 단독으로 있는 경우를 일차성 불면증이다. 일차성 불면증에는 생체 시계를 잘 맞추어주는 생활습관 교정이 약 만큼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인지행동치료라고 하는데, 그 중 첫째는 생체 시계를 잘 조절하는 것이 필요하다. 불면증으로 고생해본 사람은 하루 잠을 못 자면 초저녁부터 누워 잠을 청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수면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잠자리에 누워 있는 시간 중 실제 잠 잔 시간의 비율을 수면 효율이라고 하는데, 10시간 누워서 6시간 자는 것 보다는, 여섯 시간 누워 다섯 시간 자는 게 더 개운할 수도 있다. 수면 효율을 올리려면 가장 졸릴 때 침대에 누워야 한다. 이때 각성도가 떨어지지 않고 잠이 오지 않으면 30분 이상 누워있지 않도록 한다. 일어나서 TV를 보거나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는다든지 하면서 나만의 휴식 거리를 하다가 다시 졸리면 눕도록 한다.
스트레스 때문에 며칠 잠을 못자면, 잠을 못잔다는 그 자체가 스트레스가 되어서 불면의 공포가 찾아오고 불면증은 만성화 된다. 잠을 못 자면 큰일 난다고 생각하는데, 이삼일 못자더라도 다음날 그렇게 망치지 않는다. 오늘 하루 안 자면 어때. 이런 마음으로 견디어 보는 것도 좋다. 내 마음의 방에 걱정거리 쓰레기 더미로 가득차 있을 때, 조금씩 덜어내고 비워버리다 보면 어느새 머리는 깨끗해지고 인섬니아의 짙은 안개 속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침대는 잠만 자는 용도로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침대에서 TV도 보고 음식도 먹고 컴퓨터로 일도 하면 사무실인지 침실인지 헷갈려서 리듬이 깨질 수 있다.
낮잠은 도움이 될까. 낮잠을 오후 3시 넘어서 한 두 시간쯤 자면 낮잠인지 밤잠인지 또 헷갈리게 된다. 가볍게 10분 정도 자는 건 좋은데, 오후에 30분 이상 자는 것은 불면증이 있는 분들은 불편해진다. 운동은 어떨까. 몸을 피곤하게 하면 잠이 잘 온다고 생각하고 3시간 정도 혹사시킬 정도로 운동하는 것은 오히려 잠을 방해한다. 가능하면 운동은 오전에 가볍게 하는 것이 낫다.
음식도 영향이 있다. 밤에 잠이 안오면 야식을 먹는 습관이 생기기 쉽다. 심리적 허기감에 먹는 야식으로 인해 불면증, 체중증가가 일어나는 것을 야식 증후군이라고 한다. 밤 10시쯤 음식물이 체내로 들어오면 뇌는 저녁식사로 오인할 수 있고, 그러면 수면이 뒤로 밀리고, 음식을 똑같이 먹어도 체중증가 더 일어난다. 배가 고파도 잠을 방해하니 따뜻한 우유 한잔 정도면 충분하고 과식은 절대적으로 안 좋다. 술은 어떨까. 술은 잠을 들게 하는 데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깊은 잠을 망가뜨린다.
아침에 일찍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고, 낮잠은 짧게, 밤늦게 과한 운동이나 야식은 피하자. 잠은 졸릴 때 몰아서 자고, 침실은 어둡고 잠만을 위한 공간으로만 만들자. 잠이 잘 오지 않을 땐 일어나서 다시 졸릴 때까지 기다리는 게 좋다.
김성미 마음과마음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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