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최근 대구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퇴직한 전문의 A씨는 예전에 근무했던 병원의 동료 의사에게서 자주 상담 전화를 받는다. "대학병원을 그만두고 개원하려는데 해보니 어떠냐"는 질문이 대부분이다.
A씨는 "예전에는 정년퇴직을 앞두고 개원을 고민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요즘은 이른 퇴직을 고민하는 동료나 후배들이 많다"며 "개원의가 수입이 더 좋다니 다들 생각이 복잡한 모양"이라고 했다.
#2. 대구시내 한 대학병원은 올해 1, 2학기가 시작될 때마다 신임 교수를 찾느라 애를 먹었다. 올 들어서만 교수 7명이 줄줄이 퇴직을 신청한 탓이었다.
이 병원 관계자는 "다행히 3월과 9월에 결원을 메워 우려했던 의료진 공백 상황은 피했다"면서도 "교수들이 병원을 떠나려는 낌새라도 보이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신경을 바짝 곤두세운다"고 했다.
한때 선망의 대상이었던 대학병원 임상교수들이 과중한 업무 부담과 경제적인 이유를 들어 교수직을 던지고 '개원의'로 전환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진료와 연구, 강의 등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는데다 개원의보다 경제적인 보상은 낮다는 게 이유다.
지역 필수의료를 지탱하는 축이자, 의료의 수준을 높이는 연구자로서, 유망한 의사를 길러내는 교육자의 역할을 하는 임상교수들의 이탈은 지역 의료 수준을 떨어뜨리고 의료전달체계를 망가뜨린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교수하실분 없나요?"…필수의료·인기과 모두 고민
대구 의료계에 따르면 지난 7월 서울아산병원 교수와 전임의 등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 7명이 줄줄이 사직서를 내면서 대구에서도 한때 긴장감이 돌았다.
'빅 5'로 불리는 수도권 대형병원 교수들의 집단 이탈 사태가 지역 의료계에서도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특히 흉부외과나 외과,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등 필수의료 과목에서 결원이 생길 경우 충원하는데 애를 먹는다는 게 지역 의료계의 설명이다.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한 학기가 끝나면 한 두명씩 그만두는 경우가 있는데, 퇴직한 교수만큼 경력을 가진 전문의를 찾기 어렵다보니 공백을 채우기 쉽지 않다"고 푸념했다.
성형외과나 안과, 피부과 등 소위 인기 진료과목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개원의가 대학병원 교수보다 수입이 훨씬 높다보니 교수직을 희망하는 이들을 찾기조차 어렵다는 것이다.
또 다른 대학병원 관계자는 "성형외과 내 '재건성형'처럼 인기 진료과 내 필수의료 분야를 담당할 교수는 정말 찾기 어렵다"면서 "군의관이나 공중보건의 복무를 끝낸 의사를 전임의로 모셔 1~2년 정도 일하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과중한 업무에 상대적 낮은 보상이 이유
대학병원 교수는 진료뿐만 아니라 강의와 연구 등 '의사'와 '교수'의 업무를 동시에 해야 한다.
최근 근무하던 대학병원을 퇴직하고 개원한 신경과 전문의 B씨는 "휴일에 병원에서 응급 상황이라고 전화가 오지 않는 것만 해도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라며 "아빠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없다던 가족들의 불만도 사라지고 삶이 좀 더 나아진 느낌"이라고 했다.
교수가 돼도 전공의나 전임의 때와 달라지지 않은 근무여건과 상대적으로 낮은 경제적 보상이 젊은 교수의 이탈을 부추기는 환경이 된다.
대학병원 교수 C씨는 "교수가 돼도 당직 근무나 응급 환자 호출을 많이 받지만 그만한 대가를 받지 못한다는 인식이 강하다"면서 "당직 수당이라 해봤자 2~3만원이 전부이고, 초과 근무를 해도 노동이 아닌 '당연한 희생'으로 여기는 풍토가 있다"고 말했다.
과중한 업무 부담도 교수직을 던지는 이유로 꼽힌다. 진료 외에도 학생 지도와 연구 실적 등 '의사'와 '교수' 역할을 동시에 해내야한다는 점 부담감을 느끼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것.
대구 한 대학병원 교수는 "일한 만큼 명예를 더 인정받거나 경제적으로 안정되는 부분이 없다보니 떠나는 이들을 잡는 게 참 어렵다"면서 "대학병원은 의사로서 정말 다양한 일들을 할 수 있는데, 함께하지 못하고 떠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다"고 했다.
전도유망한 교수들의 병원 이탈을 막으려면 처우 개선 등의 물질적인 보상에 교수로써 자긍심을 키울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대학병원 교수 D씨는 "교수들은 '그림자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채 자신들의 삶마저 병원에 희생하며 살고 있다"며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시스템 마련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대구 한 대학병원 원장은 "교수들이 떠나지 않도록 복지나 수당 부분에서 많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결국에는 필수의료 유지를 위한 국가의 재정 지원도 일정 부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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