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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의금은 가방순이한테 주세요”...결혼식장 新 풍속도

축의금, 부조함 대신 신부 측 친구에게 전달
'축의금=부모 몫' 문화 탓 본인이 받으려는 예비부부 늘어나
불필요한 관습이라는 지적도 제기돼

지난 3월 대구 시내의 한 예식장의 모습. 기사 내용과는 무관함. 매일신문 DB
지난 3월 대구 시내의 한 예식장의 모습. 기사 내용과는 무관함. 매일신문 DB

"축의금 아직 안 내셨죠? 저한테 주시면 신부에게 전달할게요."

최근 친한 지인의 결혼식을 찾은 김소향(28) 씨는 낯선 사람이 갑자기 말을 걸어 화들짝 놀랐다고 했다.

그는 본인을 신부의 '가방순이'라고 소개했고, "축의금을 본인에게 주면 된다"고 설명했다. 신부 지인들의 축의금을 모아 결혼식이 끝난 뒤 신부에게 전달한다는 것이다.

김 씨는 "처음에는 신종 사기 수법인 줄 의심했다가 신부가 본인 친구라고 소개해 준 뒤에야 축의금을 전달했다"며 "이렇게 따로 거둔 축의금은 신혼여행 경비나 하객 답례용으로 쓴다고 하더라"고 했다.

대개 부모가 관리하던 하객들의 축의금을 예비부부가 따로 받아 관리하는 사례가 점차 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결혼식 당일 신부의 도우미 역할을 하는 친구를 일컫던 '가방순이'가 큰 가방을 메고 다니며 지인들의 축의금을 거둔 뒤 예비부부에게 전달하는 역할까지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배경에는 MZ세대 특유의 개인주의적 성향에다가 예식 진행이나 결혼 비용 마련 등 결혼식에 대한 주도권 자체가 혼주에서 예비부부로 넘어갔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3일 웨딩업계에 따르면 축의금을 거두는 가방순이는 최근 3~4년 새 급격히 늘어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3년째 웨딩업계에서 종사하고 있는 40대 박모 씨는 "과거에는 부모 세대가 직접 웨딩스튜디오를 찾아오거나 상담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요즘은 결혼식 당일 외에는 혼주를 볼 일이 없다. 예비부부의 비용이 결혼식에 많이 투자되는 만큼 본인들이 축의금을 가져가고 싶어할 것"이라고 풀이했다.

웨딩플래너로 활동하고 있는 이지유 씨는 "MZ세대가 결혼식 당사자가 되면서 개인주의적 성향이 두드러지고 있는 것 같다. 요즘에는 신랑 측도 축의금을 따로 받는 친구를 두고 있다"며 "이 일로 결혼 전부터 부모와 다투는 예비부부들도 적지 않다"고 했다.

예비부부들은 경제적 부담을 줄이려면 축의금을 따로 받을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다음 달 결혼을 앞두고 있다는 이모(29) 씨는 "사진촬영과 드레스, 메이크업부터 결혼식장 비용에 답례품까지 생각하면 들어가는 돈이 너무 많아 축의금이 꼭 필요하다"면서 "어차피 내가 앞으로 갚아나가야 할 돈인 만큼 부모님의 양해도 구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축의금을 따로 거두는 문화가 범죄의 표적이 되거나 괜한 오해를 받을 수 있다고 우려하는 시선도 있다.

더구나 결혼식 비용은 자녀와 부모 간에 충분히 대화로 풀 수 있는 문제인데도 오히려 세대 간 단절을 조장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내년 초 결혼을 앞둔 김모(30) 씨는 "가방순이를 따로 두지 않을 생각"이라며 "돈이 관련돼 있는 만큼 부모님과 불필요한 오해가 생길 것 같다. 친한 친구가 그 일을 하느라 내 결혼식을 온전히 즐기지 못하는 것도 싫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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