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핑퐁외교, 미소 데탕트 등 역사를 쓴 미국 외교계 거목인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이 29일(현지시간) 100세 일기로 별세했다.
키신저 전 장관의 국제외교정치 컨설팅사 '키신저 어소시어츠'는 이날 "존경받은 미국인 학자이자 정치인 헨리 키신저가 11월 29일 코네티컷 자택에서 별세했다"고 발표했다.
키신저 전 장관은 냉전의 세계 질서를 바꾼 전략가로 평가받는 외교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통해왔다.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미국의 외교정책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특히 1972년 당시 닉슨 미국 대통령과 마오쩌둥 중국 주석간 정상회담 성사를 이끄는 등 미·중 수교의 토대를 닦았다. 또한 구 소련과의 데탕트(긴장완화)를 조성하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한반도 평화에도 관심을 가졌다. 1975년 유엔총회에서 한반도 긴장완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4자회담 개최를 제안했다.
◆나치 박해 피해 미국 이주
키신저는 1923년 5월 27일 독일 바이에른주 퓌르트에서 태어났다. 15세가 되던 해인 1938년 가족과 함께 나치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영국 런던을 거쳐 미국 뉴욕으로 이주했다.
뉴욕 시티칼리지에서 회계학을 전공하던 1943년 미 육군에 징집됐으며, 전후에는 독일 주둔 미 군정청에 소속돼 복무하기도 했다. 1950년 하버드대에서 정치과학 학사 학위를, 1951년과 54년에 각각 같은 대학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박사 학위 취득 이후 하버드대 전임강사와 정치학 교수로 있으면서 국제문제센터(Center for International Affairs)를 공동 설립하고(1958년), 미국외교협회(CFR)와 랜드연구소를 비롯한 싱크탱크와 미 국무부 등의 컨설턴트 등으로 활약했다.
특히 1957년에는 소련의 공격에 대한 '대량 핵 보복' 정책에 맞서 전술적 핵무기와 재래식 무기를 함께 사용하는 이른바 '유연 대응전략'을 강조한 '핵무기와 외교정책'(Nuclear Weapons and Foreign Policy)을 출간했다.
◆미중수교·미소 데탕트 길닦아
키신저는 닉슨 행정부에서 1969년 1월 국가안보보좌관, 1973년 9월에는 제56대 국무장관을 맡아 한동안 두 직을 겸직했다.
키신저는 특히 미중관계에서 큰 획을 그었다. 1971년 두 차례의 중국 방문을 통해 저우언라이 당시 중국 총리와 회담을 가졌고, 이는 이듬해 2월 닉슨 대통령의 방중 및 마오쩌둥 주석과의 미중 정상회담으로 이어졌다.
정상회담에서 닉슨 대통령과 마오쩌둥 주석은 미중 23년간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상호불가침과 평등호혜 등 5가지 원칙을 담은 상하이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미중은 닉슨 대통령과 마오쩌둥 주석의 회담 이후 상호 연락사무소 개설을 거쳐 1979년 공식 수교에 골인했다.
당시 닉슨 대통령은 국내에서의 베트남전 반전여론 등에 따라 데탕트를 추진했다. 키신저는 소련과는 데탕트 전략의 일환으로 1969년부터 전략무기제한협정(SALT I) 협상을 주도, 1972년 협정을 체결했다.
◆퇴임후에도 왕성한 활동
키신저는 국무장관 퇴임 이후에도 저술·연구 활동과 강연 등을 통해 미 외교정책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핵무기와 외교정책, 중국 이야기 등 다양한 주제의 많은 저서를 남겼다.
또 고령의 나이에도 국제 컨설팅 회사인 '키신저 어소시에이츠'(Kissinger Associates) 회장을 지낸 것을 비롯해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CFR, 애틀랜틱 카운슬 등의 멤버로도 활동했다.
반도체 패권을 두고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한창이던 올해 7월에는 중국을 깜짝 방문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만났다.
시 주석은 1970년대 미중 양국 사이에서 '핑퐁외교'를 주도한 키신저에게 "중·미 관계 발전을 추진하고 양국 인민의 친선을 증진하기 위한 역사적 공헌을 잊지 않을 것"이라며 키신저를 "'라오 펑유'(老朋友·오랜 친구라는 뜻)"로 표현했다.
앞서 올해 5월 100세 생일을 맞은 키신저는 코로나19 시기를 지나며 두 권의 책을 마무리 지었고 또 다른 집필 작업에 들어가는 등 왕성한 활동을 이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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