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정보 오독(誤讀)

김태진 논설위원

김태진 논설위원
김태진 논설위원

'2015 세계물포럼' 유치에 공을 들였던 대구시는 2011년 즈음 오일머니를 염려하며 아랍에미리트 경계설을 제기했다. 중동의 재력이면 모든 노력이 무위로 돌아갈 거라는 추측이었다. 아랍에미리트 정부 고위 관계자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어 물으니 "그게 뭔가. 물과 관련한 거라면 참다랑어 양식법이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세계물포럼에 큰 비중을 두지 않는다는 신호로 보였다. 치열한 경쟁을 강조하고 싶었던 대구시의 정보 오독으로 읽혔다.

스포츠 경기에서 정보량의 차이는 승부와 직결된다. 경기 정보를 분석한 선수들은 상대 선수의 움직임을 미리 그려보고 실전에 임한다. 기세 싸움에서 한 수 앞선 것이다. 1991년 한일 프로야구 슈퍼게임을 앞두고 한국 선수들의 정신력을 신뢰한 이들이 적잖았다. 1980년대까지 한국 야구에는 극기 훈련이 있었다. 산간 계곡 얼음을 깨고 들어가 '정신일도 하사불성'(精神一到 何事不成)을 외친다든지, 야밤에 공동묘지를 다녀오는 거였다.

한일전에 임하는 선수들의 눈빛은 달랐고 각본 없는 드라마를 여러 차례 재연한 터였다. 그러나 일본 투수들이 던지는 포크볼은 정신력만으로는 보이지 않는 구질이었다. 정신력이 실제 경기 영상을 반복 재생하며 버릇까지 파악한 상대를 이길 비책은 아니었다. 패인과 정보 부족의 상관관계는 숱한 전쟁사가 입증한다. 적벽대전의 풍향, 명량해전의 해류는 미리 파악한 정보였다.

'2030 엑스포' 개최지 투표 결과를 마주한 이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뜨악했다. 부산과 리야드의 득표수는 '29대 119'. 전체 투표수는 165표로 3분의 2 이상이 리야드를 지지했다. 부산의 노력을 폄하할 수 없지만 '졌지만 잘 싸웠다'는 격려는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개최지로 선정되지 못한 건 감내할 수 있는 예측이었지만 현격한 득표수 차이는 예측하지 못한 결핍이었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 '역전 기대감'이 온 나라에 부유했었다.

대통령은 담화에서 개선책을 찾아보겠다며 빠르게 패배와 과오를 인정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정보력이 이 정도인가'라는 자괴감은 쉽사리 떨쳐지지 않는다. 희망 회로만 돌린 건 아닌지 짚어볼 일이다. 외교 부실 논란보다 정보 오독으로 풀이하는 게 알맞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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