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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대첩 지휘소 있던 ‘봉의산’ 국가 평화의 중심지였다”

허준구 춘천학연구소장. 강원일보 제공
허준구 춘천학연구소장. 강원일보 제공

허준구 춘천학연구소장은 춘천대첩의 지휘소가 있던 봉의산(鳳儀山)을 "강원도를 넘어 국가 위기와 평화의 역사가 담긴 공간"으로 평가했다.

'상서로운 봉황(鳳凰)이 나래를 펴고 위의(威儀)를 갖춘 모습'이란 의미의 봉의산은 고려시대부터 춘천의 진산이었다. 1888년 고종 부부의 피난처로 춘천 이궁이 건립됐던 곳이고, 일본 강점기 때는 신사(神社)가 있었으며 현재는 강원도청이 있다.

허 소장은 "봉의산 중턱에는 '봉의산 순의비'가 있는데 1253년 몽골이 침입했을 때 도망가지 않고 '봉의산성'에 모여 한 명도 살아남지 않을 정도로 결사항전했던 2천여명의 주민을 기리는 공간"이라며 "이를 계기로 몽골은 침략 수위를 낮췄는데 결과적으로 이들의 희생으로 나라의 평화를 되찾았다"고 말했다.

봉의산 바로 아래에 있는 '근화동'은 춘천대첩의 방어선이 구축됐던 소양강이 흐르는 곳이다. 이곳에는 옛 캠프페이지 부지가 있다. 근화동의 캠프페이지는 한·중 수교의 결정적인 계기가 됐던 '중국 민항기 춘천 불시착 사건'이 발생했던 공간이다.

1983년 5월 5일 어린이날, 중국민항 소속 B-296 트라이던트 여객기는 승객 96명, 승무원 9명을 태우고 중국 선양을 떠나 상하이로 가다 공중 납치됐고, 연료가 모자라 춘천 캠프페이지에 불시착했다. 중국은 사건을 처리하려고 대표단을 파견해 한국과 협상을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양국 간 비공식 교섭 채널이 개설됐고, 교류를 하나씩 넓혀 나가 1992년 수교를 맺었다. 불시착 직후 중국 승객이 한국에서 처음으로 밤을 보낸 공간이 봉의산 자락의 춘천 세종호텔이다. 당시 강원일보 보도를 보면, 춘천시는 음식 등을 챙기며 세심하게 챙겼다.

허 소장은 "봉의산을 중심으로 한 소양강 주변은 춘천대첩의 격전지이자, 국가 평화의 오랜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공간"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를 '춘천에 왜 평화문화 기념관이 조성돼야 하는가'를 알려주는 역사적 사실로 보았다.

허준구 춘천학연구소장은 "춘천이나 강원뿐만 아니라 국가의 평화를 좌우했던 공간인 만큼 기념관 조성 사업이 추진된다면 국가적 과제로 추진돼야 한다"며 "지방자치단체뿐만 아니라 정부가 나서야 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한신협 = 신하림 강원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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