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내 개 내가 알아서 키우는데 왜?"…'목줄·쇠사슬' 묶인 시골개들

1m도 채 되지 않는 세상에 살고 있는 이들이 있다. 1m 목줄로 그릴 수 있는 원 안에서 먹고, 자고, 싸면서 평생을 살아간다. 바로 시골개
1m도 채 되지 않는 세상에 살고 있는 이들이 있다. 1m 목줄로 그릴 수 있는 원 안에서 먹고, 자고, 싸면서 평생을 살아간다. 바로 시골개 '방치견'이다. 시골개 진순이가 목줄에 묶인 채 사람의 온기를 그리워하고 있다.

우거진 풀숲 사이로 누런 물체가 왔다 갔다 거린다. 가까이 다가가니 누렁이 한 마리가 낑낑대고 있다. 사람이 반가운지 펄쩍펄쩍 뛰지만 짧은 목줄 때문에 움직임이 영 불편해 보인다. 그리고 그 앞으로는 언제 치웠을지 모르는 배설물과 텅 빈 밥그릇이 놓여 있다.

1m도 채 되지 않는 세상에 살고 있는 이들이 있다. 1m 목줄로 그릴 수 있는 원 안에서 먹고, 자고, 싸면서 평생을 살아간다. 바로 시골개 '방치견' 이다. 그리고 이런 안타까운 처지의 방치견에 개인 비용을 들여 집을 만들어주고 산책을 시키는 개인봉사자들이 있다. 유진영 씨는 지난 여름 누렁이 진순이를 처음 만났다.

◆1m 줄에 묶인 시골개의 삶

"회사에서 키우던 유기견이 하루아침에 사라져서 이곳저곳 찾아다니다가 시골까지 가게 됐었어요. 그때 인적 드문 밭 안쪽에서 강아지 소리가 들리더라고요"

진순이는 갈비뼈와 골반뼈가 드러날 정도로 마른 상태였다. 처음에는 당연히 누가 버리고 간 것이라 생각했다.

"일단 찾던 강아지를 찾아야 하니 주위를 둘러보던 중 진순이 주인이라고 하는 분을 만났어요. 관리가 너무 안 돼 있었기에 혹시 여행이라도 다녀오신거냐 여쭤봤고요".

하지만 유 씨에게 돌아온 건 좋지 않은 반응들이 대부분이었다.

"내 개는 내가 알아서 한다. 잘 키우고 있는데 왜 난리냐"

추위를 피하기에는 터무니없이 허름한 집과 도망칠 수도 없게 꽁꽁 묶어놓은 방치견의 목줄.
추위를 피하기에는 터무니없이 허름한 집과 도망칠 수도 없게 꽁꽁 묶어놓은 방치견의 목줄.
방치견 옆으로는 언제 치웠을지 모르는 배설물과, 텅 빈 밥그릇이 놓여 있다. 고무대야에 담긴 물에는 나뭇잎과 녹조가 둥둥 떴다.
방치견 옆으로는 언제 치웠을지 모르는 배설물과, 텅 빈 밥그릇이 놓여 있다. 고무대야에 담긴 물에는 나뭇잎과 녹조가 둥둥 떴다.

실제 기자가 다녀온 농촌 지역 곳곳에서는 짧은 줄에 묶인 믹스견들이 어렵지 않게 발견됐다. 밥이라도 얻어 먹으면 행복한 시골개에 속하는 편이다.

경북 상주에 사는 A(77) 씨는 "그래도 밥시간 되면 밥은 꼭 챙겨준다. 밭 지키는 개들은 밥도 제때 못 얻어먹는데 뭘 그러냐"라고 말했다. 바쁜 농촌의 일상으로 인해 시골개들은 도시 반려견들처럼 산책을 즐길 수도 없다. 노인 B(84) 씨는 "시골 노인들이 개 챙길 시간이 있겠냐. 도시 개들과는 다르게 생각해야 한다"라고 토로했다.

짧은 목줄에 묶어 남은 음식물을 주는 것이 무조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유 씨는 진순이가 계속 눈에 밟혔다. 짧은 목줄에 대한 슬픔은 고사하고 끼니를 못 챙겨 먹어 비썩 마른 진순이의 몸이 아른거렸다. "오지랖일 수도 있지만 '내가 안 가면 얘가 굶을 텐데'라는 마음으로 매번 가게 됐던 것 같아요" 이후 유 씨는 일주일에 3~4번 진순이를 만나러 갔다. 주거지와는 왕복 1시간이나 되는 거리다. "우선 밥을 챙겨주는 것부터 시작했어요. 물론 그때마다 견주는 보이지 않았어요"

짧은 줄에 묶인 방치견 모녀가 구조자가 주는 물을 헐레벌떡 마시고 있다. 시골개
짧은 줄에 묶인 방치견 모녀가 구조자가 주는 물을 헐레벌떡 마시고 있다. 시골개 '방치견'들은 밭이나 공장, 마당 한구석에서 평생을 묶여 지낸다.

일주일에 세 번씩 두 달을 내리 보니 진순이도 경계심을 풀었다. 그때 유 씨는 진순이와의 산책까지 욕심을 냈다. 리드줄을 연결해서 첫 산책을 했다. 진순이도 처음에는 불안해하더니 이내 풀냄새를 맡으며 좋아했다. 여기저기 다니며 배변활동도 했다고. "유튜브나 여러 온라인 카페를 돌아다니다 보면 방치견을 찾아가서 도와주는 개인 봉사자들이 많아요. 그분들을 보고 방치견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많이 배웠어요"

◆방치견 돕는 개인봉사자·동물단체

유튜브에 '시골개'만 쳐도 '시골개 산책'이라는 키워드가 자동완성된다. 시골에 방치된 강아지들을 무료로 산책시켜주는 봉사활동이 점차 입소문을 타고 있다. 견주에게 허락을 받고 튼튼한 개집을 놓아 주거나 강아지용 식기와 급수기를 지원하는 봉사자도 있다. 시골길을 자주 다니는 한 택배기사는 아예 사료와 육포를 차에 싣고 다닌다. 강아지를 출산하고 영양실조에 걸려 풀썩 쓰러지는 산모견을 발견했을 때에는 사료뿐 아니라 미역국을 따로 준비해 견주에게 맡겨 두고 가기도 했다.

방치견 진순이와 만돌이에게 새 집이 생겼다. 짧은 목줄도 긴 와이어줄로 대체됐다.
방치견 진순이와 만돌이에게 새 집이 생겼다. 짧은 목줄도 긴 와이어줄로 대체됐다. "감사합니다 봉사자님 월월!" 따뜻한 패딩까지 입혀진 진순이와 만돌이의 얼굴에는 행복함이 가득하다.

동물단체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동물단체 어웨어는 1m 목줄에 평생 묶여 사는 시골개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더 긴 줄, 와이어 줄, 깨끗한 사료 그릇, 개집 등을 지원해왔다. 일부 지자체들은 마당개 중성화 수술비 지원 사업도 하고 있다. 농촌지역에 사는 나이 5개월령 이상 마당개(실외사육견)의 중성화를 지원하는 사업으로 개인이나 마을 단위로 읍·면사무소에서 신청할 수 있다.

"여느 마당개처럼 진순이도 중성화가 안 돼 있었어요."

묶여 지내는 시골개들은 떠돌이 개로 인해 원하지 않은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며 많은 유기 동물을 만들어낸다.

"진순이도 임신을 했고 강아지 두 마리를 낳았어요. 견주는 그중 한 마리를 지인에게 입양 보냈고, 남은 한 마리는 진순이 옆에 묶어 놓고 키우겠다 하시더라고요. 그때 결심했어요. '만돌이(아기 강아지) 마저 진순이와 같은 삶을 살게 할 수는 없다. 이 둘을 해방시켜주자'라고요"

짧은 줄에 묶여 지내던 진순이가 첫 산책에 나섰다. 시골에 방치된 아무 품종의 강아지들을 무료로 산책시켜주는 봉사활동이 점차 입소문을 타고 있다.
짧은 줄에 묶여 지내던 진순이가 첫 산책에 나섰다. 시골에 방치된 아무 품종의 강아지들을 무료로 산책시켜주는 봉사활동이 점차 입소문을 타고 있다.

유 씨가 노력할수록 견주와의 관계는 점점 더 악화되기만 했다. 하지만 유 씨는 물러서지 않았다. 매번 간식을 사 가고 대화를 시도하며 견주의 마음을 바꾸기 위해 노력했다.

뜬장에 개를 키우는 보호자가 아닌 이상 생각보다 반감이 강하지는 않다. 그렇다고 양육환경을 처음부터 바꾸려고 하면 거부감을 가질 가능성이 크다. 몇 번씩 얼굴을 비추면서 하나씩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사실 보호자들도 마당개들에 대한 연민이 있다. 어쩌다 보니 태어난 개를 키우게 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결국 견주는 아들 연락처를 넘겨주었고 아들과 진순이의 상황에 대한 통화를 오래 나눴다. "다행히 아드님이 아버님에게 환경개선에 대한 부분을 어필해 주셔서 마음을 열어주셨어요. 그리고 나중에는 매주 제가 밥 챙기러 오는 모습을 보고 자신을 되돌아보게 됐다는 말도 하시더라고요. 지난 4월 개정된 동물보호법도 설득하는데 큰 도움이 됐어요."

◆지난 4월부터 동물보호법 개정

동물보호법은 마당견들도 엄연한 '반려견'으로 규정하고 있다. 지난 4월부터 시행된 동물보호법 개정안에 따르면 반려견을 밖에서 묶어 키울 때에는 최소 2m 이상의 줄을 사용해야 한다.

법에 규정된 '돌봄 의무' 범위를 넓혀 적절한 활동 공간을 보장하고, 다른 사람이나 동물과의 접촉 기회를 제공하는 등 단순히 먹이를 주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다양한 기본 욕구를 충족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여기에 깨끗한 물, 사료를 제공하며 기본적인 관리도 이뤄져야 한다.

결국 유 씨는 소유권 포기 각서를 받았다. 해당 반려견의 의무 및 권리 행사를 포기하고 권리 승계자에게 모든 권리를 승계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거기에는 추가 조항도 달렸다. 권리 포기자는 다시는 해당 구역에 반려견을 반려하지 않겠다는 점.

그렇게 진순이와 만돌이는 자유를 얻었다.

개인봉사자 유진영 씨는 방치견 보호자에게 소유권 포기 각서를 받았다. 해당 반려견의 의무 및 권리 행사를 포기하고 권리 승계자에게 모든 권리를 승계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거기에는 추가 조항도 달렸다. 권리 포기자는 다시는 해당 구역에 반려견을 반려하지 않겠다는 점. 그렇게 진순이와 만돌이는 자유를 얻었다.
개인봉사자 유진영 씨는 방치견 보호자에게 소유권 포기 각서를 받았다. 해당 반려견의 의무 및 권리 행사를 포기하고 권리 승계자에게 모든 권리를 승계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거기에는 추가 조항도 달렸다. 권리 포기자는 다시는 해당 구역에 반려견을 반려하지 않겠다는 점. 그렇게 진순이와 만돌이는 자유를 얻었다.

"진순이와 만돌이는 현재 개인이 운영하는 임시 임보처로 옮겨졌어요. 안정화되고 나면 진순이는 영구 가정위탁소, 만돌이는 해외 입양을 갈 예정입니다" 진순이와 만돌이 모두 예방접종 및 중성화도 마쳤다.

1m가 세상이던 진순이와 만돌이는 이제 드넓은 세상을 뛰어다니게 됐다.

그럼에도 유 씨는 마냥 좋아할 수가 없다.

"온라인에 '시골개 목줄', '시골개 쇠사슬' 등을 검색하면 1~2m 이내 길이에 불과한 상품들이 여전히 검색되고 있어요. 아직도 진순이와 만돌이 같은 강아지들은 넘치고 넘친단 말이죠"

노인 인구가 많이 거주하는 농촌 지역의 특성상 밖에서 묶어놓은 채로 개를 기르는 문화가 익숙하기 때문에 이를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여전히 많다. 아직까지 많은 시민들이 법에 대해 알지 못하고 동물 방치가 곧 학대라는 인식도 부족하다.

이에 동물보호단체들은 무엇보다 인식 변화를 이끌 수 있는 홍보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한 단체는 "마당견들의 일상 복지는 물론, 무분별한 임신과 출산을 막기 위한 중성화 수술 등의 필요성을 널리 알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취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지난 여름 인연이 됐던 시골개 백구를 떠올린다. 그리고 기자도 용기를 내본다. '돌아오는 주말 긴줄과 새 밥그릇을 사서 찾아 가야지. 주인 할아버지에게는 이 기사가 나온 신문을 가지고 설득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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