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아버지가 또 응급실로 실려갔다. 한경희(53) 씨가 홀로 있을 어머니를 돌보려 아침 일찍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높낮이가 제각각인 계단을 하나하나 딛고 오르다, 간간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난간에 몸을 기댄다. 겨우 다다른 집 안엔 방에 꽉 찬 침대가, 그 위에는 사랑하는 어머니가 눈을 감고 있다.
"엄마, 내 왔다." 자신을 깨우는 딸의 다정한 목소리. 다정함 뒤엔 애써 감춘 슬픔이 있다. 김예자(80) 씨가 미소를 가장한 딸 대신 한줄기 눈물을 흘렸다.
◆남동생 면회길에 당한 6중 추돌사고… 대수술만 7번
경희 씨의 아버지는 공군이었다. 아버지는 13년 복무를 끝으로 군복을 벗었다. 전역 후 아버지는 선짓국집, 복어 요릿집 등 여러 식당을 열었다. 하지만 벌이가 시원찮아 매번 오래 버티지 못하고 가게를 접었다.
금은방도 잠깐 운영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런 와중에 빚은 눈덩이처럼 불었다. 어머니도 가사도우미로 일하며 돈을 벌었지만, 상황은 나빠지기만 했다.
결국 외갓집 소유의 집을 담보로 사채까지 썼다. 이 일로 친정과 완전히 틀어졌지만, 어떤 수를 쓰더라도 피하려 했던 가정의 침몰은 막을 수 없었다. 경희 씨는 국민학교 1학년 때 봤던, 빨간 차압 딱지로 가득했던 낯선 집안 풍경을 아직 잊지 못한다.
이후 아버지는 전국의 산을 돌아다니며 약초를 캐고, 어머니는 시장에서 뻥튀기, 강정, 멍게 등을 팔아 마련한 돈으로 생계를 이어 나갔다. 열심히 일해도 형편은 늘 쪼들렸다.
보증금 100만원도 안 되는 비좁은 단칸방에서 온 식구가 생활했다. 대학도, 미래도 경희 씨에겐 모두 사치였다. 고교 졸업 후 경희 씨는 바로 옷 장사에 뛰어들었다.
이미 불우한 10대를 보냈다. 그랬기에 불운의 사고가 20대 청춘까지 앗아갈 줄은 상상조차 못했다.
23살 그 해 경희 씨는 입대한 남동생 면회를 갔다가 귀갓길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 장마철 고속도로에서 발생한 6중 추돌 사고였다. 경희 씨가 몰던 경차는 거대한 화물차들에 부딪혀 갈기갈기 찢겼다.
차량 밖으로 튕겨나간 경희 씨는 대형 탱크로리 아래 처박혔다. 사고 후 두 달 동안 중환자실에서 생사를 넘나들었다. 의식을 되찾고 나서도 서너 달은 정신이 오락가락했다.
7차례 대수술을 받는동안 20대가 훌쩍 지나갔다. 경희 씨에겐 온 몸의 수술 자국과 앙상한 오른팔, 수천만원의 병원비만 남았다. 당시엔 기초생활수급자가 아니었기에 어머니가 사방팔방으로 돈을 빌려 병원비를 마련했다.
경희 씨는 사고 이후 오른팔을 거의 못 쓰게 됐다. 일자리도 제대로 구할 수 없었다. 봄, 겨울에만 잠깐 스카프와 머플러를 팔고, 여름과 가을엔 식당 서빙 등 단기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결혼도 포기했다. 상처로 가득한 자신의 모습을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일용직 전전하는 힘겨운 삶…부모님 건강 악화까지
부모 곁을 떠나 홀로 산 지 10년, 끝난 줄 알았던 불행은 다시 들이닥쳤다. 어머니는 언제부턴가 말을 어눌하게 하고, 부축없이는 제대로 걷지 못했다.
상태가 점점 심각해지자 병원을 찾았다. 지난 2018년 뇌경색에 따른 우측 편마비 진단을 받았다. 뇌출혈로 번지는 걸 막고자 지금까지 주사와 약물 치료를 받고 있다.
아버지 역시 지난해 12월 기흉과 흉수 등 폐에 문제가 생겼다. 호흡곤란으로 응급실도 자주 찾는다. 최근엔 빈도가 잦아져 지난 한 달동안 2차례나 응급실 신세를 졌다. 인지 능력까지 떨어지며 신발을 신은 채 집안에 돌아다니거나, 변기 밖에 대변을 보기도 한다.
어머니 간호를 전담하던 아버지의 건강이 악화되니 덩달아 어머니도 골반 부위에 욕창이 생기는 등 건강이 덩달아 나빠졌다.
생계를 잇느라 숨 가쁜 경희씨의 삶은, 부모님 간병으로 더욱 피폐해지고 있다. 언니는 유방암과 자궁암으로 투병 중이고, 동생은 지난해 병으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상황. 아버지 치료비로만 벌써 800만원을 썼다.
감당하기에 너무나 벅차지만, 자식들에게 헌신해 온 부모님을 외면할 순 없다.
병약한 부모님의 거처부터 옮기고 싶지만 치료비 마련에도 허덕이는 상황에 새집은 '그림의 떡'이다. 현재 부모님은 지은 지 40년이 넘은 낡은 아파트에 살고 있다.
낡고 오래돼 집안 곳곳에는 곰팡이가 피었고, 겨울이 닥쳐오는데 보일러는 고장이 났다. 난방공사를 하려면 바닥 배관부터 뜯어야 하는데, 비용을 생각하면 도저히 엄두가 안 난다. 온수가 제대로 나오지 않아 겨우 물을 끓여 씻는 상황. 인근 목욕탕에라도 모시고 갈까 싶지만, 엘리베이터 없는 5층에서 경희 씨 혼자 거동이 불편한 부모님을 부축하고 내려갈 형편이 못 된다.
오늘도 어머니를 돌보러 온 경희 씨. 집안인데도 냉기가 코끝을 스친다. 전기장판만으론 이겨내기 어려운 추위. 작은 전열기를 끌어 당겨봐도 한기를 밀어내긴 역부족이다.
이번 겨울은 또 얼마나 매서울까. 부모님은 얼마나 버텨줄까. 이런저런 불안에 경희 씨의 표정도 차갑게 굳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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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성금내역]
◆재혼한 남편의 폭언, 폭행 시달리나 이혼 소송 막막한 이건하 씨에게 2,609만원 전달
불행한 어린 시절 보내고 지금은 재혼한 남편에게 폭언, 폭행 시달리나 이혼 소송 비용 막막한 이건하 씨(매일신문 11월 21일자 10면)에게 2천609만7천502원을 전달했습니다.
이 성금엔 ▷구미현대병원 25만원 ▷(주)삼이시스템 10만원 ▷달서구약사회 10만원 ▷이창영 5만원 ▷나선희 3만3천원 ▷이병규 2만5천원 ▷신종욱 2만원 ▷조혜란 2만원 ▷최정원 1만5천원 ▷최지원 1만5천원 ▷김성옥 1만원 ▷김종식 1만원 ▷박미화 1만원 ▷이서영 1만원 ▷이현민 1만원 ▷정혜원 1만원 ▷한정화 1만원 ▷이순덕 5천원 ▷이진기 5천원 ▷조철제 5천원 ▷심금자 1천원 ▷'어려운시기엔돕' 1만7천702원 ▷'무진 홍판달 입니다' 1만5천원이 더해졌습니다. 성금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성치 않은 몸으로 정신장애 아들 홀로 돌보는 신춘원 씨에게 2,602만원 성금
식모살이로 힘겨운 어린 시절 보내고 지금은 성치 않은 몸으로 다 큰 정신장애 아들 홀로 돌보는 신춘원 씨(매일신문 11월 28일자 10면)에게 52개 단체, 171명의 독자가 2천602만6천200원을 보내주셨습니다. 성금을 보내주신 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에스엘(주) 200만원 ▷피에이치씨큰나무복지재단 200만원 ▷건화문화장학재단 150만원 ▷(주)대구은행 100만원 ▷(주)태원전기 50만원 ▷다우약품 50만원 ▷신라공업 50만원 ▷아이큰숲치과(남동우) 50만원 ▷한라하우젠트 50만원 ▷㈜태린(배민경) 45만원 ▷최상규이비인후과 40만원 ▷㈜신행건설(정영화) 30만원 ▷한미병원(신홍관) 30만원 ▷(주)동아티오엘 25만원 ▷㈜백년가게국제의료기 25만원 ▷금강엘이디제작소(신철범) 20만원 ▷대백선교문화재단 20만원 ▷대창공업사 20만원 ▷대흥분쇄기(한미숙) 20만원 ▷(주)구마이엔씨(임창길) 10만원 ▷(주)우주배관종합상사(김태룡) 10만원 ▷경주천마운전전문학원 10만원 ▷김영준치과의원 10만원 ▷대구동양자동차운전전문학원(최우진) 10만원 ▷무한기술(윤종천) 10만원 ▷세움종합건설(조득환) 10만원 ▷신성산업(김용환) 10만원 ▷우리들한의원(박원경) 10만원 ▷이재만 대구지방세무사회 회장 10만원 ▷죽전샘편한내과 10만원 ▷창성정공(허만우) 10만원 ▷국제정밀(김용근) 5만원 ▷다빈치커피대명마루점 5만원 ▷달서구보건소(박은수) 5만원 ▷동산내과 (박경아) 5만원 ▷동산내과 (박준석) 5만원 ▷베드로안경원 5만원 ▷봉산교회(김명묵) 5만원 ▷선남의원(김홍구) 5만원 ▷선진건설(주)(류시장) 5만원 ▷세무사박장덕사무소 5만원 ▷이전호 세무사 5만원 ▷전피부과의원(전의식) 5만원 ▷채성기약국 5만원 ▷칠곡한빛치과의원(김형섭) 5만원 ▷토스건천제일약국 5만원 ▷현대전산인쇄(주)(이기복) 5만원 ▷국선도풍각수련원 3만원 ▷매일신문구미형곡지국(방일철) 3만원 ▷청산(우창하) 3만원 ▷사단법인대한민국힐링문화진흥원 1만원 ▷하나회(김미라)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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