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으로 된 이 소설의 제1장은 두 남녀의 특이한 연애를 다루고 있다. 30대 중반의 한나와 15세 남고생 미하엘의 비대칭적인 사랑이 서사의 중심을 이룬다. 제2장은 한나가 나치 때 강제수용소 감시원으로 일한 전력이 드러나 재판을 받는 내용이다. 이러한 로맨스와 아우슈비츠의 결합에 대해 홀로코스트 포르노라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을 나치 고발문학으로만 보기에는 미학적 측면이 너무 도드라진다.
황달을 앓고 있는 미하엘은 어느 건물 안에서 구토를 하던 중 한나의 도움을 받고 위기를 면한다. 이것이 계기가 돼 두 사람은 잠까지 자는 관계로 발전한다. 미하엘은 수업까지 빼먹으며 20세 연상의 여자에게 빠져든다. 그러나 한나는 미하엘이 수업을 소홀히 하면 안 만나겠다며 한 가지 조건을 내세운다. 그것은 자기와 자기 전에 책을 낭독하는 일이다.
이리하여 두 사람은 기이한 의식을 수행하는데, '낭독-샤워-섹스-잠시 누워있기'가 그것이다. '의식'(Ritual)이라 한 것은 이 과정이 너무나 철저하기 때문이다. 책이 좋으면 직접 읽으면 되지 않느냐는 미하엘의 말에 한나는 '네 목소리가 너무 아름다워서 그렇다'고 대답한다. 이 말에 고무된 미하엘은 독일어 시간에 다루거나 언급된 책을 가져와 큰 소리로 낭독한다. 한나는 최고의 청중이 된다.
웃음, 야유, 외침은 그녀가 얼마나 집중하여 책을 따라오는지 알 수 있었다. 계속 읽으라고 재촉할 때의 초조함은 주인공의 바보 같은 행동이 어서 끝나기를 바라는 간절한 희망이었다. 나로서도 더 읽지 않을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해가 긴 날은 오래 낭독하며 저녁까지 한나와 누워있었다. 그녀가 내게 기대어 잠들 때 뜰에 지빠귀의 노래가 들려오고 부엌의 물건들은 잿빛 어스름에 잠겼다. 나는 실로 행복했다.
듣는 한나에게 낭독은 최음제가 되고 읽는 미하엘에게는 진정제가 된다. 가라앉은 미하엘의 욕망은 함께 샤워하면서 다시 고조된다. 그러나 특이한 이 관계는 반년 정도 지나 한나가 흔적 없이 사라지면서 막을 내린다. 그사이 미하엘은 건강을 되찾고 낙제생에서 우등생으로 발전해 있다. 고전 낭독의 효과다. 몇 년 뒤 미하엘은 명문대 법학과에 들어가 공부에 매진한다. 연애도 하지만 마음속에 남아 있는 한나 때문에 번번이 실패한다.
어느 날 미하엘은 재판을 견학하던 중 피고석에 앉아 있는 한나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나치 때 수용소 감시원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 재판을 받고 있다.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리도 똑똑했던 한나가 문맹이었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자신의 문맹을 숨기기 위해 동료 감시원들의 죄까지 뒤집어쓰고 종신형을 감수한다. 미하엘은 이제야 한나의 비밀을 깨닫는다. 그러나 문맹에 대한 부끄러움이 그렇게도 큰 것일까?
한나는 글은 못 배웠지만 어릴 때부터 매우 똑똑했다. 그녀를 문맹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몸으로 하는 일을 찾아 직장에 들어가면 얼마 안 가 사무직으로 승진시켜준다. 그러면 그녀는 홀연히 직장을 떠나 새로운 기능직을 찾는다. 그러나 문맹에 대한 수치심이 두터워지는 만큼 글에 대한 욕망도 강해진다. 글 읽는 소리에 성욕이 발동할 정도다. 그렇게 한나의 에로스는 눈이 아니라 귀를 통한다. 인류사를 보면 독서는 낭독이 주류였고 묵독은 근대 이후의 현상이다. 고도의 묵독 시대에 나온 '책 읽어주는 남자'는 낭독에 대한 비가로 볼 수 있다.
댓글 많은 뉴스
홍준표 "한동훈, 새카만 후배…저격할 만한 대상 돼야 저격 용어 쓰지"
"尹·韓 면담, 보수 단결해 헌정 정상화·민생 챙기는 계기 삼아야"
한동훈 “특별감찰관 추천 진행…당대표가 원·내외 총괄”
'개선장군' 행세 한동훈 대표 "尹대통령 위기 몰아, 원하는 것 이룰 수 없다"
안동 도산·녹전 주민들, "슬러지 공장 반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