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의 재상 노인(路人)
농민 출신 한고조 유방劉邦이 진(秦)나라를 멸망시키고 한(漢)나라를 건국, 한족이 만리장성 안쪽의 중원을 지배하는 새로운 세력으로 등장했으나 당시 만리장성 안팎을 지배하던 강성한 흉노족에 비하면 그 존재가 사실 보잘 것 없는 것이었다.
예컨대 한고조 유방은 백등산(白登山)에서 흉노족의 천자 모돈(冒頓)에게 7일 동안 포위되었다가 그 부인 알씨(閼氏)에게 후한 뇌물을 주고 구사일생으로 겨우 풀려난 뒤 흉노에 대해 화친정책으로 일관했는데 이는 당시 한족이 처했던 약세를 잘 설명해 준다고 하겠다.
한나라는 매년 흉노에게 비단과 양식, 미녀 등을 상납하며 근근이 정권을 유지하다가 서한의 7대 황제인 한무제 유철(서기전156~서기전87)에 이르러 흉노에 대해 수세적인 자세에서 공세로 전환하였다.
이때 북방의 흉노를 공격하여 사막의 북쪽으로 몰아냈고 남쪽으로 민월(閩越), 남월을 공격하여 강역을 확대했으며 동북쪽으로 고조선 서쪽을 침략하여 군현을 설치했다.
동이족이 주역으로 지배하던 중국 역사상에서 한족이 중국을 지배하는 새로운 주도 세력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은 바로 한무제에 의해서였다.
한족이 전성기를 구가하던 한무제 시대에 태어난 사마천은 동이족을 제치고 중국의 새로운 중심세력으로 등장한 한족의 역사를 자랑스럽게 정립할 필요를 느꼈다.
그래서 한족을 중국 역사의 정통으로 세우고 황하중류를 기반으로 발전한 황제헌원을 시조로 삼아 한나라 이전의 3,000년 중국 역사를 정리한 것이 사마천의 '사기'이다.
'사기'는 화하족의 시조 황제로 첫 장을 열었고 동이족의 시조인 복희는 제외시켰다. 동이족의 영웅 치우천왕은 배신자, 패자로 묘사하고 화하족의 황제헌원은 위대한 영웅으로 그렸다.
하(夏)나라와 은(殷)나라는 계승 관계에 있지 않았다. 민족도 다르고 문화도 달랐다. '사기'에서 동이족의 은나라가 화하족의 하나라를 계승한 것으로 기술한 것도 올바른 시각은 아니다.
따라서 사마천의 '사기'는 동이족과 한족의 역사를 공정한 시각에서 다룬 것이 아니라 한족의 입장에서 쓴 한족의 역사서인 셈이다.
사마천은 '사기'에 조선열전을 수록했다. 사마천이 조선열전을 쓴 목적은 고조선의 역사를 후세에 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한무제가 고조선을 정벌하여 한사군을 설치했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리기 위한 것이었다.
조선열전을 저술한 목적이 한무제의 고조선 정벌과 한사군 설치를 말하려는데 있었으므로 한무제에 대한 과장과 고조선에 대한 왜곡이 존재할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의 선조들이 직접 쓴 '고조선비사'와 같은 책이 이름만 전할 뿐 실재하지 않는 현재 상황에서 2천년 전 사마천이 쓴 '사기' 조선열전은 고조선사 연구에서 더없이 귀중한 자료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사기' 조선열전에서 한나라의 군대가 고조선의 왕험성을 급하게 공격하자 "조선의 재상 노인이 도망쳐 한나라에 항복했다(朝鮮相路人 亡降漢)"라고 말했다. '사기색은'에 왕소王劭의 주석을 인용하여 "노인은 어양현 사람이다(路人 漁陽縣人)"라고 하였다.
고조선의 재상 노인이 어양현 출신이었다는 이 기록은 고조선 평양설, 대동강 낙랑설의 오류를 잠재울 수 있는 매우 획기적인 자료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동안 반도사학과 민족사학을 물론하고 고조선 연구에서 이 대목을 주목하지 않고 간과하였다.
▶노인은 옛 유주(幽州) 어양군(漁陽郡), 지금 중국 북경시 출신
고조선 재상 노인의 출생지역 어양현은 어디인가. 지금의 중국 북경에 있던 고대 지명이다. '사기' 흉노열전에 연(燕)나라가 동호(東胡)를 공격하여 천리 땅을 빼앗아 거기에 상곡군, 어양군, 우북평군, 요서군, 요동군 5군을 설치하여 동호를 방어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전국책'에 "연나라 동쪽에 조선이 있다"고 하였다. '전한서' 현도군 조항에는 왕소의 주석에 조선호국(朝鮮胡國), 구려호(句驪胡)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고조선과 고구려를 호족으로 지칭한 것을 본다면 전국시대의 동호, 즉 동쪽에 있던 호족은 고조선에 대한 다른 호칭임을 알 수 있다.
'수경주'에 진시황 22년에 어양군을 설치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전국시대에 설치한 어양군은 진시황시대에도 그대로 존속된 것을 알 수 있다.
'사기색은'에서는 왜 노인을 가리켜 어양군 사람이라 하지 않고 "어양현 사람이다(漁陽縣人)"라고 말했는가.
군에 현을 설치하는 제도는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한 뒤에 봉건제를 폐지하고 군현제를 시행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전한서'에 의하면 어양군은 유주(幽州)에 속했는데 어양현, 요양현(要陽縣), 백단현(白檀縣) 등 12개현을 관할했다.
'청일통지(淸一統志)'에 "어양현의 옛 성이 순천부(順天府) 밀운현(密雲縣) 서남쪽 30리에 있다"라고 하였다. 지금의 북경시 밀운현 서남쪽이다.
지리적으로 옛 어양현은 지금 밀운현과 이웃한 고을인데 밀운현은 바로 북경 북쪽의 조선하, 밝달산(白檀山)이 있던 곳이다.
따라서 '사기색은'에서 말한 "고조선의 재상 노인이 어양현 사람이다"라는 내용은 우리에게 두 가지 새로운 역사 사실을 알려준다.
첫째 고조선이 대동강 유역에 있었다면 당시는 지금과 같이 교통이 발달했던 시기도 아닌데다가 거리적으로 수천리나 떨어져 있는 북경 지역의 어양현 사람이 고조선에 와서 재상으로 재직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당시 고조선은 발해유역의 북경 지역 밀운현 조선하 부근의 노룡현에 수도가 있었다. 그래서 밀운현과 이웃한 어양군 출신 조선 사람 노인이 조선의 재상으로 발탁될 수 있었다.
둘째 오늘날처럼 개방된 사회에서도 외국인을 데려다가 한 나라의 국정을 책임지는 재상으로 임명한다는 것은 거의 전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폐쇄적인 고대 봉건사회에서 과연 그런 일이 가능했겠는가.
고조선이 연나라 전성기에 서쪽의 5군 땅을 연나라에 빼앗겼으나 진나라 말엽 항우와 유방이 천하를 다투며 중원이 혼란에 빠진 틈을 타서 잃어버렸던 북경 일대의 5군 지역을 다시 되찾았음을 알수 있다.
즉 한나라 때는 북경 일대의 고조선 고토가 수복되어 어양군이 고조선영토로 편입되어 있었으며 그래서 고조선의 어양현 출신 노인을 재상으로 삼았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지금까지 한, 중 학계가 상곡군, 어양군, 우북평군, 요서군, 요동군은 전국시대 연나라 땅이 된 이후 진, 한을 거치면서 줄곧 중국 땅이었던 것으로 인식해왔는데 이런 견해는 앞으로 수정되어야 한다.
▶북경 출신 고조선 재상, 발해조선 입증하는 또 하나의 증거
지금도 북경에 가면 어양호텔(漁陽飯店)이 있어 이곳이 옛 어양군 지역임을 실감케 한다. 북경의 어양군 출신 노인이란 인물이 고조선의 재상을 역임했다는 '사기'의 기록은 고조선사 연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이런 중요한 내용이 전혀 알려지지 않다가 이제야 필자에 의해서 최초로 공개되는 이유는 다음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한양조선에서는 문헌의 보급이 지금처럼 원활하지 않았다. 일반인은 물론 학자의 경우도 연구에 필요한 서적을 구비하기 아려웠다.
또한 한양조선에서 선비가 주로 공부한 역사방면의 책은 '통감'과 '사략'이었다. 왠만한 학자 집안에서도 사마천 '사기'를 소유한 경우는 흔치 않았다. 따라서 고조선사 연구에서 매우 중요한 이런 사실이 한양조선 500년 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둘째 현대사회에서는 인쇄술이 크게 발달하고 책이 널리 보급되어 원하는 책을 구입하기 쉽다. 또 왠만한 책은 도서관에 가면 빌려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요즘 한글세대들은 고전이 있어도 이를 해독할 능력이 없다. 비록 역사를 전공한 사람이라도 원전을 읽을 수 있는 한문 실력이 뒷받침이 안 된다. '사기' 조선열전 원전을 읽고 거기서 조선 재상 노인이 북경의 어양군 출신이었다는 사실을 밝혀낼 실력이 없다.
따라서 한국의 반도사학은 고조선 사료의 빈곤만을 탓하며 광복 80년 동안 일본의 식민사학에 머물러 있고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북경의 어양현 출신 노인이 고조선의 재상을 역임했다는 '사기' 조선열전의 기록은 '무경총요'에 나오는 북경 북쪽의 조선하, '태평환우기'에 나오는 하북성 노룡현의 조선성 기록과 함께 발해조선의 실체를 입증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근거가 된다고 여긴다. (역사학박사·민족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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