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지난 3일 펴낸 초저출산과 초고령사회의 원인과 대책을 논한 심층연구 보고서가 관심을 끌고 있다. 국가의 명운이 걸릴 만큼 중요한 저출산 문제에 대해 냉정한 지적과 대안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대한민국이 인구 위기에 빠져들고 있다. 합계출산율이 바닥을 모르고 떨어지고 있다. 올 3분기 합계출산율(여성 1명의 평생 출생아 수)이 급기야 0.7명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78명이었다. 세계 최저이고, 인구 학자들은 전염병 창궐이나 전쟁, 체제 붕괴를 겪지 않는 한 0점대의 합계출산율은 인구학에서 거의 불가능한 숫자로 여겼다. 인구학 분야 권위자인 데이비드 콜먼 영국 옥스퍼드대 명예교수는 "이대로면 2750년에 한국이 소멸할 수 있다"는 섬뜩한 경고를 내놨다.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2018년 0.98명으로 1.0명을 밑돌기 시작했다. 2017년생인 내년 초등학생 입학생 수가 사상 처음으로 40만명에 못 미친다. 2016년 40만6천여명이던 출생아 수는 2017년 35만7천여명으로 1년 새 5만명 가까이 줄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행은 최근 중장기 심층연구 보고서 '초저출산 및 초고령사회: 극단적 인구구조의 원인, 영향, 대책'을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각종 정책 수단을 활용해 경제·사회·문화 여건을 개선하면 출산율이 최대 0.845명 높아질 수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0.78명인 것을 고려하면 최대 1.625명 수준으로 높일 수 있다고 했다. 반면 저출산에 대한 효과적인 정책대응이 없다면 2050년대 0% 이하 성장세일 확률이 68%, 2070년 인구수가 4천만명 이하일 확률이 90%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합계출산율 감소율 전 세계 단연 1위
보고서에 따르면 우선 우리나라 저출산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합계출산율이 2021년 0.81명으로 OECD 회원국 중 최저이고 전 세계(217개 국가‧지역)에서 홍콩(21년·0.77명) 다음으로 낮다. 전 세계 평균(2.3명), 인구 대체 수준의 출산율(2.1명), OECD 회원국 평균(38개국, 1.58명)에 크게 못 미친다.
둘째, 하락 속도와 지속기간도 이례적이다. 저출산의 진행 속도가 매우 가팔랐다. 합계출산율 감소율이 전 세계 1위이며, 지속기간도 20년 이상 초저출산을 기록한 인구 1천만명 이상의 유일한 국가이다.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1960년 5.95명에서 2021년 0.81명으로 약 86.4% 감소했다. 전 세계(217국가)에서 가장 큰 폭의 하락률이다.
셋째, 출산율 하락은 혼인율 하락이 주도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부분 혼인관계에서 출산이 이루어진다.(2022년 혼인외 출생아 비중: 3.9%) 따라서 미혼율 증가는 출산율 하락으로 직결된다. 실제 25~49세 여성의 미혼율을 살펴보면 1990년 8.0%로 매우 낮았으나 2020년 32.9%로 크게 증가했다. 특히 30대 여성의 미혼율은 2020년 33.6%로 30대 여성인구의 3분의 1이 미혼이다.
넷째, 저출산으로 인구구조가 급속히 고령화되고 있고, 진행 속도가 전세계 1위다. 이에 따라 초저출산 및 초고령사회라는 극단적 인구구조에 직면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고령 인구비중은 2022년 전체 인구의 17.5%이며 2025년 20.3%로 초고령사회(고령인구비중 20% 이상)에 진입한다. 2018년에 고령사회에 진입한 지 약 7년 만이다.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OECD 국가('21년 기준 17개국; 일본 10년, 이탈리아 18년) 중 가장 빠르다.
◆초저출산의 원인, '경쟁 압력'과 '불안'
보고서는 초저출산의 원인으로 '청년'들이 체감하는 높은 '경쟁 압력'과 '불안'(고용, 주거, 양육에 대한 불안)을 꼽았다. 이 두 가지로 인해 결혼과 출산의 연기와 포기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청년(15~29세) 고용률이 2022년 46.6%로 OECD 평균(54.6%)보다 크게 낮았다. 25~39세 고용률도 우리나라는 75.3%로 OECD 평균(87.4%) 대비 12.1%포인트(p) 낮았다.
청년층 일자리의 질적인 면도 악화됐다. 청년층(15~29세) 임금근로자 중 비정규직 비중은 2003년 31.8%에서 2022년 41.4%로 증가(9.6%p)했다. 이에 따라 양질의 일자리를 얻기 위한 취업경쟁이 심화되고 있고, 취업 스트레스를 받는 청년이 늘고 있다.
보고서는 '주택마련 비용에 대한 부담'이 결혼·출산을 낮추고, 취업 여부 및 고용 안정성 역시 결혼과 출산에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했다. 실제 한국갤럽 서베이 자료를 통해 분석한 결과, 취업자의 결혼의향(49.4%)은 비취업자(38.4%)에 비해 평균적으로 높았다. 취업자도 비정규직(36.6%)은 오히려 비취업자보다 결혼의향이 낮았고, 공공기관 근무자이거나 공무원인 경우 결혼의향이 58.5%로 현저히 높았다. 이는 취업여부 및 고용안정성이 결혼의향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또 보고서는 자녀에 대한 지원 의무감이 강할수록, 결혼의향이 낮고 희망자녀수가 적다고 지적했다.
◆불안과 경쟁 압력을 낮추려면 구조정책이 절실
보고서는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대안을 제시했다. 우선,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족 관련 정부지출 규모를 늘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현재 이 비중은 1.4%가량이다. OECD 평균(2.2%)보다 0.8p 낮다. 보고서는 OECD 평균 수준으로 높이면 합계출산율은 0.055명 늘어날 것으로 분석했다.
둘째, 육아휴직을 실사용 기간을 늘려야 한다고 제안했다. 우리나라의 법정 육아휴직 기간은 52주(1년)로 OECD 평균(여성 기준 65.4주)에 비해 크게 짧지 않다. 하지만 실제 사용률은 2020년 기준 출생아 100명당 여성 48.0명, 남성 14.1명으로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을 기록했다. OECD 평균 수준으로 늘리면 출산율은 약 0.096명 증가한다고 추정했다.
셋째, 청년층(15~39세) 고용률(58.0%·2019년 기준)이 OECD 평균(66.6%)까지 높아진다면 출산율은 0.12명 늘어날 수 있다. OECD 평균 수준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약 78만명의 청년이 추가적으로 취업해야 한다. 보고서는 청년 구직자의 눈높이에 맞는 양질의 일자리가 많아질 수 있도록 성장동력을 확충할 것을 제안했다.
전문가들은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서 디지털 전환 가속화, 경제안보 부각 및 문화 산업 재발견, 기후위기 및 탈탄소 전환, 초고령사회 진입 등의 변화에 대응한 신성장 산업을 발굴 육성 등을 제안했다.
넷째, 우리나라 도시인구 집중도(인구밀도×도시인구 비중)가 431.9로 OECD 평균(95.3) 수준으로 낮아져야 한다고 충고했다. 우리나라 인구밀도는 ㎢(제곱킬로미터)당 530명으로 여타 OECD 회원국들의 평균치(123명)에 비해 4배 이상 높다. 도시에 거주하는 인구 비중 역시 81%로 인구 집중도가 매우 높다. 보고서는 OECD 평균 수준으로 인구 집중 현상이 완화하면 출산율이 0.41명 늘어난다고 분석했다.
다섯째, 부모 및 정상가정(법률혼) 중심의 지원 체계에서 '아이 중심의 지원 체계'로 전환을 주장했다. 다양한 가정 형태에 대한 제도적 수용성을 높여가야 한다는 얘기다. 보고서는 혼인 외 출생아 비중(2.3%)이 OECD 평균(43.0%)으로 상승하면 출산율이 0.16명 증가한다고 했다.
유럽 국가들의 경우 비혼 동거 문화가 보편화되고 혼인 외 출생아에 대해서도 차별 없는 지원을 제공한다. 혼인 외 출생아 비중이 2019년 기준 OECD 평균 43%이며 프랑스는 61%, 아이슬란드는 69.4%에 이른다. 우리나라에서도 결혼을 하지 않더라도 자녀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청년의 비중이 증가하고 있다.(19~34세 청년의 비혼출산 동의 비중: 2012년 29.8%, 2022년 39.6%; 통계청)
여섯째, 주택가격 안정화를 강조했다. 2019년 한국의 실질 주택 가격(OECD DB 기준 104)이 2015년 수준(100)으로 안정화된다면 출산율이 0.002명 늘어날 수 있다.
보고서는 "청년의 어려움을 덜기 위한 '정책적 지원'과 노동시장 등의 문제점을 개선하는 '구조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해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성장잠재력 약화 문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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