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종종 일을 하지 않는 삶을 꿈꾼다. 직장 생활과 사회생활에 치이지 않고 일과 돈에서 자유로운 삶을 바란다. 그러나 일을 잃거나 떠난 사람도, 돈에서 자유로워진 사람도, 다시 일을 갈망(渴望)한다. 일터 안의 사람들은 일에서 탈출하고 싶어 하고, 일터 밖의 사람들은 일을 하고 싶어 한다.
일이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일은 에이브러햄 매슬로우(Abraham Maslow)가 말한 먹고, 자고, 입는 등 생리적 욕구가 해결되지 않았던 과거에는 돈을 벌기 위한 생업(生業)이라는 구시대 개념이 필요했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일이라는 의미가 매슬로우가 말한 최고 수준의 욕구인 '자아실현 추구'로 시대전환(時代轉換)을 해야 한다. 즉, 일은 우리가 지식과 지혜를 습득하여 우리를 발전하게 하고 성장하게 해주는 자아실현의 원동력이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사랑하고 일하고, 일하고 사랑하라. 그게 삶의 전부이다"라고 설파(說破)했다. 당대 프로이트와 쌍벽을 이루었던 분석심리학의 창시자 칼 융(Carl Jung)은 일과 놀이의 관계를 "즐겁게 일하고 열심히 놀아라"라고 설파하였다.
일은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일은 우리의 삶이기 때문이다. 죽을 때까지 사랑하고 일해야 한다. 사랑은 인간의 본능 중 성욕이 승화된 형태이고, 일은 또 다른 본능인 공격성이 승화된 것이다. 사랑과 일을 통해 우리는 기본적 본능을 만족시키고 행복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또한 일을 잘 하기 위해 놀 수 있지만, 잘 놀기 위해 일을 할 수도 있다.
캐나다 토론토대학교(University of Toronto) 마이클 인즐리트(Michael inzlicht) 교수는 직장에서 일을 하고 노력하여 힘든 일을 완수하는 것이 사람에게 만족과 자부심을 주며 '삶에서 얻어내는 행복의 근원'이라고 말했다. 시카고대학교(The University of Chicago) 크리스토퍼 시(Christopher Hsee)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일이 쉼을 더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요소'라고 말했다.
2018년 4월 아마존 CEO 제프 베이조스(Jeff Bezos)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악셀 스프링어(Axel Springer) 2018' 시상식에서 "일과 삶의 균형을 찾으려고 하는 워라밸(work life balance의 줄임말)을 하지 마라"라고 말했다. 최근 수십 년간 노동시장에서는 '워라밸'이 유행이었다.
사실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자는 이 말은 일과 삶을 분리하려는 오해를 낳을 수 있다. 이 말은 일과 삶을 상반된 관계로 만든다. '일'은 부정적인 의미이고 '삶'은 긍정적인 의미가 된다. 일은 단순히 생계를 위해 하는 것이며, 좋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일에 집중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을 심어 줄 수 있다.
일과 삶은 상반된 관계가 아니다. 또한, 지금은 일과 삶의 분리가 힘든 시대이다. 일과 삶의 분리가 아닌 일과 삶이 서로 어우러지는, 일과 삶이 잘 혼합되는 '워라블'(Work-Life Blending의 줄임말)이어야 한다. '워라블'에는 일도 삶도 긍정적일 수 있다.
물은 수소와 산소의 결합체인 H2O이다. 물에서 수소와 산소를 서로 분리해서 생각한다면 그것은 이미 물이 아니다. 일도 일 이외의 삶(예: 쉼과 놀이)도 모두 합쳐 우리의 삶이다. 인생은 거대한 바다이다. 인생은 일, 쉼, 놀이 등이 결합체로 있는 바다이다.
이 인생의 바다에서 이를 구분하며 허우적거리는 삶과 이를 통합하여 자유자재로 유유히 헤엄치며 사는 삶은 분명 다르다. 일이든 쉼이든 놀이이든 도전(挑戰)이다. 일이든 쉼이든 놀이이든 자기실현의 삶을 추구하는 도구(道具)이다. 일이든 쉼이든 놀이이든 참된 의미가 부여(附與)될 때 행복이 된다.
사공정규 동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학박사
댓글 많은 뉴스
한동훈 이틀 연속 '소신 정치' 선언에…여당 중진들 '무모한 관종정치'
국가 위기에도 정쟁 골몰하는 野 대표, 한술 더뜨는 與 대표
비수도권 강타한 대출 규제…서울·수도권 집값 오를 동안 비수도권은 하락
[매일칼럼] 한동훈 방식은 필패한다
"김건희 특검법, 대통령 거부로 재표결 시 이탈표 더 늘 것" 박주민이 내다본 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