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시어머니가 말투가 어눌한 필리핀 며느리(결혼이주여성)를 다그친다. "우리 아들 돈 빨아먹으려고 그러지?" TV 개그 프로그램에서 나온 대사다. 요즘 개그 프로그램에서 동남아시아 여성 캐릭터가 화제다. 1980년대 '시커먼스', 2000년대 "사장님 나빠요~"를 유행시킨 '블랑카'가 생각난다. 이주외국인의 희화화는 시대착오적이다. 특히 동남아 사람들을 폄훼하는 장면은 불편하다. 이주외국인에 대한 어설픈 일반화는 편견을 강화한다. 그들에겐 마음의 상처가 된다.
개그는 사회를 풍자(諷刺)한다. 현실에서 소재를 얻는다. 그러니 개그 프로그램만 나무랄 일은 아니다. 이주외국인을 향한 우리 시선을, 사회구조를 돌아봐야 한다. 일터에서 이주노동자의 말투를 흉내 내며 놀리지 않는지, 국제결혼을 '돈으로 맺은 결혼'으로 여기지 않는지, 가난한 나라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지…. 말로 뱉지 않아도 생각이 그렇다면, 편견이며 차별이다.
국내 산업 현장에 들어올 외국 인력이 크게 늘어난다. 정부는 내년 고용허가제 외국인 근로자 규모를 16만5천 명으로 정했다. 역대 최대 규모다. 중소기업·소상공인들의 인력난 해소를 위해서란다. 외국인 근로자 없이는 산업이 돌아가지 않는다. 제조 공장, 건설 현장, 식당, 농어촌 등 어디든 그렇다. 머지않아 외국인 의사에게 심장 수술을 받게 될 것이란 얘기도 나돈다.
지난 9월 말 우리나라의 장·단기 체류 외국인은 251만4천 명이다. 전체 인구 5천137만 명의 4.89%에 이른다. 43만 명의 불법 체류자를 포함하면 5.7%다. 한국은 내년에 공식적으로 '다인종·다문화 국가'에 진입한다. 아시아에서 처음이다. 외국 인력 도입 확대의 영향이 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외국인이 체류 인구의 5% 이상이면 다인종·다문화 국가로 분류한다. 다인종 국가 진입은 인적 구성과 사회·문화 지형의 대전환이다. 국민통합위원회는 '다문화가족' 대신 '이주배경주민'(약칭 이주민) 사용을 제안했다. 다인종 국가를 대비하자는 취지다.
문호를 열고, 다양성을 존중한 나라들은 번영했다. 로마제국이 그랬고, 미국이 그렇다. 한국은 외국인 유입이 절실하다. 적정 인구 유지와 생산 지속을 위해선 대안이 별로 없다. 이민 유치는 글로벌 경쟁이다. 지난해 OECD 38개 회원국에 유입된 해외 이민자는 610만 명이다. 전년보다 26% 증가했다. 경제 회복을 위한 이민 유치는 선진국의 공통 과제다. 외국인 비율만 충족하면 다인종 국가가 되는가? 그렇지 않다. 진정한 다인종 국가는 다양한 인종·문화가 공존공영하는 나라다. 받아들일 준비가 미흡한 이민 유입은 사회 갈등만 부른다. 외국인을 사회 구성원으로 포용할 시스템이 필요하다. 외국인 근로자와 이민자에게 권리를 주면서 합당한 의무를 줘야 한다. 그래야 사회통합이 가능하다.
우리의 채비는 성글다. 외국인 업무를 총괄할 이민청 설립은 더디다. 이민청을 어느 부처 아래에 두느냐를 놓고 논란이다. 체류 통제에 집중하는 법무부 산하보다 독립 부처로 만들자는 의견도 있다. 경북도가 제안한 '광역비자'(광역자치단체가 지역에 필요한 외국인 유입을 위해 발급하는 비자)는 논의만 거듭되고 있다. 시간을 끌면 안 된다. 국민들의 생각도 달라져야 한다. '단일 민족 국가'란 미망(迷妄)에서 벗어나야 한다. 피부, 언어, 종교가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야 할 시대가 성큼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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