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취재현장] 대학 통합, 그 멀고도 험한

배주현 사회부 기자

배주현 기자
배주현 기자

통합 검토에서 통합 백지화. 고작 7일 만에 시작과 끝이 났다. 최근 지역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던 경북대와 금오공대의 통합 소식 얘기다.

지난 4일 두 대학은 학령인구 감소에 따라 통합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고 통합안에 대한 검토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대구와 경북의 대표적인 국립대인 두 학교의 통합 움직임은 생존 전선에서 벼랑 끝에 몰린 것에 대한 돌파구로 분석됐다. 2007년 한 차례 통합 시도에 나섰다 무산된 지 16년 만의 재시도였다.

여기에 '글로컬 대학'이라는 정부 지원 정책으로 전국에서 국립대 통합이 생존 전략의 핵심으로 떠오른 시기와도 맞아떨어졌다. 두 대학의 통합이 이뤄지면 공학 분야에 대한 상승 효과가 기대되면서 대구경북의 반도체 산업과 연계 측면에서도 장밋빛 전망이 예상됐다.

하지만 통합 검토는 '한여름 밤의 꿈'에 그쳤다. 통합 소식에 경북대 학생 등 구성원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통합 검토 보도 직후 경북대 학생들은 본관 앞 계단에 학과 점퍼를 벗어 놓으면서 집단행동에 나섰다.

시간이 흐를수록 학과 점퍼 시위에 참여하는 학생들이 많아졌고, 근조 화환과 경북대 상징 영정 사진까지 등장했다. 구성원의 의견 수렴 없는 통합은 진행될 수 없다는 이유였다.

나날이 거세지는 반발 탓일까. 학교는 일주일 만에 백기를 들었다. 지난 9일 경북대 총학생회는 "통합을 미추진하겠다는 홍원화 총장의 입장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경북대 대학본부 관계자도 "금오공대와 통합과 관련된 논의를 한 적이 없기 때문에 미추진한다고 밝혔다"고 설명했다.

7일이라는 시간은 학교 간의 통합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 여실히 보여줬다. 학생뿐만 아니라 교직원, 동창회 등 학내 수많은 이해관계자 간에 얽힌 실타래를 풀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제는 '지방자치단체'라는 이해관계자까지 고려해야 한다. 교육 재정 지원 권한을 지자체에 이양하는 정부의 '라이즈(RISE) 사업'이 추진 중인 상황에서 지자체의 협조는 통합 이후 학교 운영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지난 8일 홍준표 대구시장이 자신이 운영하는 온라인 소통 플랫폼에 대학 통합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내놓은 점도 통합 백지화에 영향을 미친 셈이다. 시류는 어쩔 수 없다. 대학 통합에 불씨를 던진 정부의 '글로컬 대학' 사업도 중요하지만, 이미 학령인구 감소에 따라 위기를 겪는 지역 대학들이 너무 많다.

단순히 정부 사업 따내기가 아니라 이제는 실전이다. 전국의 대다수 지방대가 신입생 정원을 못 채우는 상황에서 수년 후 지방대는 존폐의 기로에 설 수밖에 없다. 통합도 중요하지만 대학과 지방이 살 수 있는 구조개혁 계획을 마련해 학교와 학생, 지자체가 서로를 설득해야 한다.

대학은 학교의 미래를 위한 세부 계획을, 지자체는 대학과 지역이 상생할 수 있는 협조의 태도를, 학생들은 대학 지명도 차이 등에 대한 정서적 반감을 덜어내야 한다. 통합 검토 논의를 손바닥 뒤집듯 쉽게 뒤바꾸는 무책임한 행동도 더 이상은 없어야 한다.

물론 불붙고 있는 대학 통합이 속 시원하게 진행된 사례는 아직 찾아보기 어렵다. 통합 추진 계획안으로 글로컬 대학에 선정된 부산과 충북도의 대학들 역시 통합에 대한 구성원의 반대에 발목이 잡혀 있다. 이들을 반면교사 삼아 학교와 학생, 그리고 지자체는 만반의 준비에 나서야 한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