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혜 연출의<두 코리아의 통일> (작 조엘 폼므라, 프로젝트 아일랜드)는 2013년 프랑스에서 초연된 후 극단'프랑코포니'(연출, 까티 라뺑 번역, 임혜경, 2016)로 국내 무대에서 소개된 작품이다. 서지혜 연출은 <아일랜드>(2012)를 기점으로 극단 프로젝트 아일랜드를 창단해 <일상의 광기에 대한 이야기>(2017), <고독한 목욕>(2019), 〈BULL〉(2019), 〈Love Song〉(2021), <장녀들>(2023) 등 대체로 창작극보다 초연 번역극으로 연출의 색채를 무대로 드러내며 희곡을 발굴해 내는 감각적인 연출가다. 그런 만큼 조엘 폼므라의 <두 코리아의 통일>은 전작 무대와는 연출적으로 다른 작품이다. 에피소드는 130분 동안 분열, 증오, 광기, 혐오와 사랑의 욕망으로 둔갑 된 분열적 사랑에 전쟁을 상기시키고 있다. 두 장면의 삽입곡' Mamny blue '와 마지막 'Last Breath' 로 작품의 주제를 관통하는 장면의 시퀸스는 서지혜다운 연극적 미학성을 발휘하고 17개의 에피소드 객차(客車)를 연결하는 배우들의 연기도 극의 종점까지 달리게 할 수 있는 강력한 전압의 전류를 형성하고 있다. <두 코리아의 통일>은 불완전한 인간들의 균열적인 사랑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발포 지점은 전쟁이다.
◆ 전쟁터 잔해에 세워진 분열과 인간의 사랑
그로테스크한 무대는 전쟁으로 폐허가 된 것처럼 현실적이면서도 몽환적인 비현실적 구조를 이루고 있는데 전쟁터를 배경으로 꿈에서 사랑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인간이 살아가는 집은 평지에 세워진다. <두 코리아의 통일> 극 중 인물들이 살아가는 전경은 불균형한 비대칭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불완전한 자아와 분열의 사랑처럼 이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조작 난 의자, 떨어져 나간 생활 가구, 서로 다른 출입문의 색감, 불균형한 계단, 돌 더미의 지하 공간의 무대는 핵무기와 미사일 폭격으로 집과 건물이 무너져 내린 전쟁터의 전경이다. 중앙 뒤편 좌측은 남북 공동경비구역 최전방 철책선처럼 되어있고 빼곡한 종이에 '전쟁반대'라는 문구도 보인다. 사랑을 키워드로 해 대한민국을 울음바다로 만들어버린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KBS 건물 외벽에 붙여진 혈육의 생사를 확인하는 이산의 아픔과 그리움들처럼 보인다. 프랑스 작가 조엘 폼므라 시선으로 바라보는 한국전쟁과 분단은 숭고한 인간의 사랑을 이산의 아픔으로 분열된 전쟁의 역사이다. 그런 만큼 극 중 인물들의 자아로 내재되어 있는 사랑은 전쟁터처럼 뜨거우면서도 온전한 혈육(인간)으로 살아갈 수 없는 폐허가 돼버린 내면들이며 전쟁터 잔해처럼 분열되어 있다.
핵미사일로 한·중·일·미의 미묘한 셈법과 국내 정치의 평화 해법으로 돌아올 수 없는 분열의 물길은 갈라진 이념의 방향으로 흐르고 있고 작가는 인간의 근원적 사랑에 대한 질문으로 그 유사성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두 코리아의 통일>에서는 온갖 사랑의 형식들을 쏟아내면서도 보편적인 사랑이 부재되어 있는 것처럼 진정한 사랑만이 전쟁을 구원해 낼 수 있다면, 국민적 사랑만으로 통일을 녹여낼 수 있을까. 에피소드에서 발화되는 극 중 인물들의 분열적 사랑처럼 한반도 통일은 남북이 한 몸의 육신으로 될 수 없는 엇갈린 사랑과 통일의 그리움만이 지속되어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만큼 연극을 통해 드러나는 극 중 인물들의 사랑은 '두 코리아' 문장의 병치(竝置)처럼 두 개 땅과 이념으로 갈라져 있는 이질적인 낮 섬으로 부동(不動)하고 있다. '통일'은 분열과 갈등이 침전(沈澱)하지 않은 완전한 평화적인 사랑으로 용해되었을 때 가능하다는 점에서 연극 <두 코리아의 통일>은 전쟁과 이산의 아픔처럼 유사하면서도 인간의 사랑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연출은 전쟁터의 잔해처럼 무대구조를 전경화해 인간들의 사랑과 증오, 광기와 분열, 또 다른 사랑의 욕망으로 분열되어가는 극 중 인물들의 사랑 방정식들을 잔해 위로 인간의 불완전한 사랑을 파편적인 에피소드로 연결한다.
◆ 위선의 가면, 배우의 연기
옴니버스 형식의 희곡은 주제를 관통하는 연출의 에피소드 배치와 극 중 장면의 확장성, 배우들의 연기, 무대 전경화로 은유하는 극적 이미지 정도가 에피소드 연극을 무대에서 지속시킬 수 있는 스트리밍(Streaming)적인 연출 방식이다. 130분을 템포의 균형을 균열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관건일 것이다. 옴니버스 형식은 무대의 지속성인데, 파편적인 스토리를 연결하는 것은 연출의 배치 감각이고 에피소드를 화력으로 몰고 가는 것은 배우의 연기이다. 두 가지가 무대에서 유연하게 회전되지 못하면 연극은 공중분해 되고 전달은 모호함으로 남게 된다. <두 코리아의 통일>은 '두 코리아'처럼 이질적인 사랑과 욕망을 드러내면서도 이념의 갈등을 사랑으로 치환해 전쟁과 사랑을 인류 보편적인 문제로 다루고 있다는 점을 환기해 볼 필요가 있다. 사랑, 이별, 남녀의 이질적인 욕망은 전쟁처럼 분열, 증오, 광기, 승리의 욕망으로 폐허가 된 잔해처럼 균열 적이며 에로스(Eros) 본능의 자아는 충돌되면서 진정한 사랑을 통일처럼 갈망하는 것일지도. 그만큼 17개의 에피소드로 살아가는 극 중 인물들의 삶과 인생, 욕망의 내면들을 전쟁 잔해의 공간 위로 올려놓은 것은 전쟁과 분열, 사랑과 분열, 그리고 아픔과 이별로 상충하며 이질적이면서도 유사한 주제를 관통시키는 무대구조와 에피소드 연결방식이 감각적이다.
배우들을 속도감 있게 에피소드별로 배치해 결정적인 장면은 대어를 낡은 체는 노련한 낚시꾼처럼 9번째 기다림 에피소드 후 '당신의 손을 잡을 수 있다면, 난 당신이 필요해요.'가사의 'Mammy blue'와 마지막 에피소드 '가치'(남기애, 임경훈) 장면 후 안느 브런의 'Last breath' 곡으로 마지막 인간의 숨결(사랑)을 느끼며 이질적인 낮 섬으로 부동 하는 이념을 물화해 전쟁 없는 세상과 완전한 인간으로 회복하기 위한 노래 선곡과 배우들의 무대 위 퍼포먼스는 핵미사일의 잔해에서 진정한 사랑을 구원해내고자 하는 바람일 것이다. <두 코리아의 통일>의 에피소드에서 전쟁과 사랑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은 '전쟁' 에피소드 장면이다. 전쟁터로 향하는 아들을 바라보는 여자(남기애 분)는 전쟁은 아들과 관계가 없다며, 전쟁터로 향하는 아들이 자랑스러워 하는 남편을 향해"당신 아들이 죽으러 간다는데 자랑스러워?"라며 되묻는다. 남자(최무인 분)는 전쟁은 우리 모두와 상관이 있어, 저 애와도 상관있는 거고.. 불행하지만 중요하고 필요한 전쟁이야‟라고 받아친다. 대화에서 드러나는 것은 전쟁터로 향하는 아들을 각기 다른 사랑으로 바라보는 차이는 전쟁 없는 세상이다. 전쟁은 우리 모두에게 관계되어 있는 것이 아니며(남편), 전쟁터로 향하는 아들을 구하지 않으면 부인도 영원히 읽게 될 수 있는(부인) 죽음의 세상으로, 전쟁은 위선의 가면으로 가려져 있는 사랑이다.
이번 공연에서 눈에 띄는 두 가지는 17개의 에피소드를 관통시키는 서지혜 연출의 무대 미학성에 있고 에피소드가 이탈되지 않도록 장면을 탄력적으로 몰고 가는 남기애, 최무인, 남동진, 김동순, 김형범, 김성태, 이진경 등 중견 배우들의 연기에 있다. 김성태는 이번 무대에서 연기의 진실성은 보이는 데 연기적인 테크닉이 아쉽다. 남기애는 삶의 고독함으로 이혼하고자 하는 여인(이혼), 단돈 5달러로 사랑을 구걸하는 늙은 창녀로 분하면서 절제된 연기와 극중인물의 캐릭터와 내면을 파동 시키는 대비적인 연기를 보여주었다. 늙은 창녀는 가발로 환락의 욕망을 거래하고 벗겨진 가발로 드러나는 듬성듬성한 대머리는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그만큼 진정한 사랑이 빈곤한 노쇠한 욕망은 육체를 팔아도 진정한 사랑을 쟁취할 수 없어 늙은 창녀는 또다시 가발을 쓰고 환락의 거리만 서성일 뿐이다. 신부와 창녀의 사랑을 그리고 있는 (돈), 기억상실증에 걸린 여자의 에피소드(기억)에서 보여준 배우 이진경은 연기 감각이 탁월한 배우이다. 아쉬운 점은 그로테스크한 구조만큼 몇 가지 에피소드가 무대로 흡수되지 못한 점이다. 몇 가지 과감하게 삭제하고 <두 코리아의 통일>로 좁혀지는 에피소드를 시각적인 연출로 극대화되었다면 어땠을까. 에피소드 연극은 극 중 인물의 대화와 대사의 의존성이 높아지면 배우들의 동선과 움직임의 변화가 있다고 해도 단조로워진다. 그 사이를 연출적으로 시각화할 수 있는 입체적인 방식이 중요한데 이번 <두 코리아의 통일>의 장점은 병렬적인 에피소드를 서지혜의 연극성으로 탄력 있게 유지하는 무대 배치와 배우들의 활용 방식에 있고 아쉬운 것도 에피소드를 덜어내지 못한 지점들이다. 재공연을 한다면 조엘 폼므라의 <두 코리아의 통일> 퍼즐을 한 번 더 맞춰보길 바란다.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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