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 우산을 들고 어정쩡하게 선 채 당선 소식을 들었다. 본격적으로 글을 쓰겠다고(사실 이런 결심은 전에도 했었지만), 구체적으로는 소설을 써서 생활을 유지하겠다고 다짐하고 난 뒤에 받은 통보라서 기쁘기보다는 복잡한 기분이었다. 이제는 정말로 물러설 수가 없는 것이다.
소설을 쓴다는 건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무슨 일이든 그렇겠지만) 적당히 보기 좋게 만드는 것 이상의 열정과 에너지를 요구한다. 어떤 마음으로 쓰는지가 글에 다 드러난다. 나는 언제나 그것이 좀 두려웠다. 내 안에 무엇인가를 드러내고 싶으면서도 드러나지 않기를 바랐다. 내면에서 흘러나오는 것을 말하고 싶으면서도 때로는 그것과 완전히 상관없이 있고 싶었다. 나의 내부와 외부 사이에는 유리문이 있는데, 마음 같아선 언제까지나 안쪽에서 그저 멀거니 밖을 내다만 보고 싶었다. 그것은 안전에 대한 욕구인가.
소설을 쓰겠다고 결심한 이상, 안이한 태도로 쓸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진짜를 쓴다는 것은 저 바깥으로 존재를 던지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보이지 않는 의미를 향해 꾸준히 나아가는 성실과 끈기도. 무엇보다 사랑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때문에 여전히 나는 그것이 좀 무섭다.
앞으로의 태도나 각오 같은 것을 생각하자 이자크 디네센의 소설 '바베트의 만찬'이 떠오르고, 따라서 요리사 바베트의 말을 끝으로 당선 소감을 맺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바베트는 복권에 당첨된 만 프랑을 하룻저녁 만찬을 위한 식재료를 준비하는데 써버린다. 그녀가 준비한 요리를 먹고 난 뒤 이웃들은 음식에서 단순한 맛 이상의 감동과 환희를 느끼면서도 한 끼를 위해 당첨금을 다 써버린 사실을 알고 걱정스레 묻는다. 앞으로 평생 가난하게 살게 되지 않겠느냐고. 그러자 바베트는 빙긋 미소 지으며 말한다. "아니에요, 전 절대로 가난하지 않아요. 저는 위대한 예술가라니까요. 위대한 예술가는 결코 가난하지 않아요, 마님. 예술가들에겐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것이 있어요."
83년생
명지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서울시립대 철학과 석사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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