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을 지속하고, 전시를 지속하고, 작가라는 직업을 지속한다는 것. 작가들에게 '지속 가능성'이라는 키워드는 평생 피할 수 없는 고민거리다. 특히 삶과 예술 사이 가느다란 선 위에서 줄타기를 하는 젊은 작가들에게는 더욱 그럴 터.
권효정(31) 작가가 작업실 한 켠에 '지속 가능성'이라고 적은 종이를 가훈처럼 걸어 놓은 것도 그 이유다. 최근 대구 중구 방천시장 인근의 예술 편집숍 플랫폼 '뚜누(TOUNOU)'에서 만난 그는 "작업과 생계 사이에서 삶의 균형을 찾는 일이 지금 나에게 고민이다. 어떻게 하면 유연하게 둘 사이에 설 수 있을까, 지원을 떠나 자생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생각한다"며 "지속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두고 지켜나가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뚜누'에서는 지난 17일까지 그의 개인전 'Moment by moment'가 열렸다. 전시 작품들은 노랑과 검정, 대비되는 두 색이 섞이고 겹치며 의외의 조화로움과 공존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대표작 'Moment'는 지난해 개인전에서 선보인 'Switch' 작품의 연장선에 있다. 'Switch'는 노란색, 검정색의 물과 기름을 투명한 수조에 넣어 외부의 힘으로 두 색을 섞었다가, 시간이 지나면 원래의 위치와 색으로 돌아오길 반복하는 설치 작업이었다.
작가는 그 과정의 이미지를 40장 정도 발췌해 조각으로 나눠, 56개의 모듈박스에 넣고 기계적 매커니즘에 의해 움직이도록 만들었다. 총 2천240개의 조각이 시간차를 두고 섞인다.
"누군가가 노랑과 검정이라는 대비가 뚜렷한 색을 섞으려는 노력이, 결국 예술과 삶의 균형을 찾으려는 의지로 보여진다는 얘기를 했어요. 저의 앞선 작품들 역시 모래시계 양쪽의 물고기들이 물을 나누는 방법을 찾거나, 질량과 무게가 각각 다른 공들이 물 위에서 멈췄다, 가다를 반복하며 함께 흐르는 것을 보여주려 했었죠. 작품 속에 현실과 예술에 대한 공존의 의지를 계속 반영해온 게 아닌가 싶어요."
하지만 공존이라는 키워드에 앞서, 섞인다는 것은 '회화'에 대한 작가의 깊은 고민을 담고 있다. 주로 설치 작업을 선보여온 그는 지난해부터 평면 작업과 회화 재료의 물성에 대한 실험을 이어오고 있다.
그는 "설치 작업은 확장 가능성이 무한하고 계속 이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30대에 들어서며 본질을 찾고 싶었고, 그것을 실험하기에 적합한 매체가 회화라고 생각했다"며 "어느날 도화지에 습작을 그리다, 색이 자연스레 섞이는 것이 결국 회화가 지닌 본질적인 특징이 아닐까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여러 방법으로 캔버스 위에, 혹은 관람객의 망막 위에 색을 섞고 쌓아보며 매체에 대한 진정성 있는 연구와 함께 작업의 깊이를 더해가고 싶다"고 덧붙였다.
그에게는 꼬박 1년을 준비해 선보이는 개인전인만큼, 그에 대한 소중함도 컸다. 전시는 곧 끊임없이 고민해온 나만의 방향, 속도를 확인하고 확신하는 자리가 된다는 것이 그의 얘기다.
작가는 "혼자 작업하는 시간 동안 스스로에 대한 의심과 불안이 그림자처럼 따라왔지만, 그런 시간들을 이겨내고 결과를 보여주는 자리였다. 내 작업에 대한 확신을 얻는 동시에, 다양한 의견을 듣고 다음 작품에 대한 가능성을 발견하고 생각하는 기회가 됐다"고 말했다.
"결국 태도가 중요한 것 같아요. 눈에 띄고 화려한 작품도 중요하겠지만 작업의 기본이 되는 성실함, 진정성을 지켜나가는 것이 우선이지 않나 싶습니다. 지속 가능성을 실현할 수 있는 바탕도 거기에 있지 않을까요. 이명미 선생님의 조언처럼 꾸준히 개인전을 열고 작품을 선보이며, 앞으로 나아가려 합니다. 이 말을 꼭 적어주세요. 제가 생각보다 의지가 약해서 이런 말을 인터뷰에 박제해놔야 해요. 스스로 뭔가를 할 수밖에 없게끔 나 자신을 그렇게 만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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