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지난 해 7월부터 14개월 간 검거한 전세 사기 관련 사범은 1765건, 5568명에 달하고 있다. 481명이 구속되었고 몰수·추징 보전된 금액만 1163억 5000만원에 이를 정도로 전세 사기 피해 규모는 상당하다. 전세 사기 피해 당사자인 극단 신세계의 연출가 김수정은 그 과정을 <슈퍼맨 오브 부동산>(공동창작/김수정 작·연출, 극단 신세계,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2023.10.14.〜10.22)으로 무대화 했다. <슈퍼맨 오브 부동산>에 등장하는 '슈퍼히어로'들의 캐릭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노숙인 난동 말린 스파이더맨‥‥지하철역 히어로」라는 뉴스 내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것은 영화 장면을 묘사한 헤드라인 기사가 아니다. 서울 인근 지하철 역사에서 위협적인 난동을 부리는 노숙인과 스파이더맨의 이야기다. 손을 잡고 깡충깡충 뛰고 손뼉을 치며 흥분을 가라 앉히던 스파이더맨은 경찰이 출동하자 노숙인을 밖으로 내보낸 후 홀연히 사라졌다는 미담(美談) 기사다. "대한민국의 슈퍼히어로 '스파이더맨'을 만나고 싶습니다. 사진 찍어주세요." 라는 누리꾼들의 댓글이 달렸다. 사실은 슈퍼히어로 코스프레를 하며 사진을 찍어 주는 남성으로 추측되지만, 네티즌들은 영웅을 실제 현실로 받아들이고 싶어 하는 듯하다. 이러한 심리는 일종의 영웅의 미러적 동일화다. 초월적 존재가 되고 싶은 판타지적 욕망이 엿보인다.
맨홀로 추락하는 인간을 구원하고, 악당을 물리치며, 인류를 구원하는 슈퍼맨, 스파이더맨, 원더우먼, 배트맨의 영화적 행동만으로도 캐릭터를 실제하는 존재로 믿고 싶은 것이다. 영웅 심리는 슈퍼히어로 코스프레로 나타난다. 슈퍼맨과 스파이더맨은 위기의 순간, 탈인간이 되어 지구를 지키는 영웅적 존재로 변화하지 않는가. 영웅적 만화 캐릭터를 절대적으로 동경하는 유형일수록 미러적 투사를 통해 슈퍼히어로를 동경하는 심리가 부적같은 효과를 발한다. 대공항의 시대(1933), 두 고등학생(제리 세겔과 조슈스터)에 의해 탄생된 슈퍼맨을 시작으로 슈퍼히어로들의 나이를 짐작해 본다면, 슈퍼맨은 이미 90세(최초 실사영화, 1948)이 넘는다. <배트맨>(1939), <원더우먼>(1941), <스파이더맨>(1962) 등의 평균 연령도 70세가 넘는다. 지하철의 스파이더맨의 등장으로부터 슈퍼히어로들의 나이를 들추어낸 것은 극단 신세계의 <부동산 오브 슈퍼맨> 때문이다.
◆ 영웅의 허상, 슈퍼맨 대 빌라왕
<부동산 오브 슈퍼맨>은 전세 사기 피해 사례를 파헤치는 다큐멘타리에 허구적 서사를 가미한 모큐멘타리 형식을 취하고 있다. 실제 전세 피해 사례와 유형, 한국형 전세 제도의 계약방법과 유형, 부동산 행정 용어, 법률적 해석을 곁들이는 장면에서는 부동산 기초 실무를 토크콘서트로 다루는 것처럼도 보인다. 다큐적인 대목은 전세 사기 피해를 허구로 재구성해 영상으로 촬영한 장면이다. 구체적으로 전세 사기를 주제로 다큐와 드라마, 강의를 무대와 영상으로 융합한다. 전세 피해 사례의 실제와 연극적 허구, 다큐, 영상, 만화, 뮤지컬적 요소를 혼합해 무대와 영상을 번갈아 보여준다. 극의 시작인 프롤로그부터 영상으로 슈퍼맨의 등장을 알리는 동시에, <부동산 오브 슈퍼맨>은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창작한 픽션임을 밝힌다는 자막을 투사한다. 슈퍼맨, 원더우먼, 배트맨을 영웅이 아닌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으로 설정한다. 이들은 부동산 공화국의 빌라왕으로부터 전세 사기를 당한 지구 영웅 슈퍼맨(이강호 분)을 비롯, 부동산 투자를 부추기는 원더우먼(한지혜 분), 부동산 투자로 성공한 배트맨(장우영 분)을 그려낸다. 김수정 연출은 슈퍼히어로를 인간으로 희화화해 한국사회의 부동산 영웅은 인간의 욕망을 대리할 수 있는 메시아 같은 존재가 아니며, 성공투자의 가면을 쓴 사기꾼일뿐이라고 일갈하면서도 빌라왕에게 당할 수밖에 없는 한국 사회구조와 부동산 시장을 조롱한다.
그동안 극단 신세계는 <그러므로, 포르노>, <인간동물원초>, <파란나라>, <광인일기>, <생활풍경>, <망각댄스 시리즈>, <공주들> 등으로 현실의 모순과 부조리, 사회제도와 역사인식의 문제에 도전적으로 대항하는 거친 서사를 무대화해왔다. 극단 신세계의 배우들은 날 것 그대로 무대로 전진하고, 김수정 연출은 가학적이고 불편할 수 있는 방식으로 대사와 표현을 무대에 들이대면서 날카로운 비판과 문제 제기를 서슴없이 해왔다. 김수정 연출은 무대를 에둘러 채우는 법 없이, 노골적으로 까발리고 서슴없이 질문을 던진다. 그런 방식이 불편하게 다가오면서도 돌직구로 쏟아내는, 극단 신세계 특유의 스타일은 미학적으로 포장되지 않은 채 재현에 갇히지 않고 무대를 채운다. 어수선하면서도 정돈되어 있고, 거칠면서도 극을 끌고 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배우들의 대사와 행동도 가공되지 않고 원초적인 감각을 더 선호하는 것 처럼 보인다. 때로는 투박해 보이는 연기지만, 그 감정의 신호와 진정성은 확장되는 것이 극단 신세계 공연의 장점이다.
<부동산 오브 슈퍼맨> 역시 전세 사기 피해자의 고백적 서사이면서도 빌라왕에게 당한 자신에 대한 반성적 태도를 담아, 제2의 빌라왕 피해 사례가 없도록, 국민 모두가 부동산 기초 실무에 달인이 될 수 있도록, 전문서적 1권 정도는 통달케 하려는 김수정의 집념과 열정이 무대를 가득 채운다. 빌라왕에게 전세 사기를 당한 극 중 슈퍼맨은 김수정과 동일화된 캐릭터이다. MZ오포 세대가 살아갈 한국 사회는 서민의 애환을 구원하는 영웅이 부재하는 부동산 공화국이며, 투자와 '부'의 욕망만을 부추기는 허상의 영웅들만 존재하고 있을 뿐임을 비판한다. 영웅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에서 슈퍼맨은 허상의 존재일 수밖에 없다. 하여 <부동산 오브 슈퍼맨>에서 슈퍼맨은 은퇴를 선언하면서 "이제 전 척하는 연극을, 그만두겠습니다. 영웅이라는 자리에서 내려오겠습니다"라고 한다. <슈퍼맨 오브 부동산>이 연극임을 환기하면서도, '척' 하는 연극을 그만두겠다는 것은 전세 사기를 방지하고 빌라왕의 출현을 막을 정부 대책이 현실적으로 부재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지구 영웅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타자화된 '슈퍼맨'
올해 4월 한 일간지에서는 「전세 사기 피해 경험, 연극 준비 중」이라는 연출가 김수정에 관련된 뉴스가 보였다. 전세 사기를 당한 김수정 연출이 부동산 사기 피해에 노출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으로 연극 <부동산>을 기획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금융 지식이 전혀 없던 '부동산'이라는 인물이 부동산 사기에 처하게 되면서 황급히 지식을 쌓아 부동산 투자에 도전하는 좌충우돌 고군분투기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 시점으로 6개월 뒤, 김수정 연출의 <부동산>은 <슈퍼맨 오브 부동산>으로 제목이 바뀌었다. '부동산'이라는 가상인물을 설정해 전세 사기 피해를 다루는 내용에서 연예인 대접을 받던 지구 영웅에서 비정규직 노동자가 된 슈퍼맨으로 설정과 내용을 바꾼 것이다. 지구 영웅, 슈퍼맨도 전세 사기와 싸워 이길 수 없는 한국사회, 슈퍼맨의 타자화는 내 집 마련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한국사회의 현실을 비정규직 청년세대의 문제로 환유(換喩)하기 위한 설정이다.
무대는 예능프로그램 녹화장을 방불케 할 정도의 대형 스크린 3대가 설치되어 있는 빌라 구조의 2층 무대이다. 1층은 슈퍼맨의 전셋집을 미니멀한 구조로 연출했다. 내레이터(고용선 분)가 등장해 전세 사기를 극복해 가는 과정을 <그것이 알고 싶다> 처럼 3인칭 시점에서 서술 혹은 설명한다. 내레이터는 슈퍼맨의 전세 사기 피해 사례를 추격하는 동시에, 부동산 관련 실태와 정보, 변화되어가는 슈퍼맨의 내면을 설명한다. <부동산 오브 슈퍼맨>에서 영상은 드라마적 다큐로 제작되었다. 무대와 영상은 공연에서 수평적 전환을 이루는데, TV드라마가 쇼트와 쇼트의 영상 이미지로 전환된다면, <슈퍼맨 오브 부동산>에서는 무대 공간과 영상 장면이 동일 공간의 구조로 이동되는 식이다. 무대와 영상이 이어지며 전개되지만, 무대와 영상의 시공간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도 유연하다. 무대 공간에서는 슈퍼맨의 집 내부를 보여주고, 슈퍼맨의 하루 일과는 영상으로 전달하는 식이다.
<슈퍼맨 오브 부동산>은 총 3부 180분 정도 공연된다. 1부에서는 지구 영웅 슈퍼맨이 은퇴 기자회견을 한 뒤 빌라형 아파트에 전세로 입주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보여준다. 은퇴한 슈퍼히어로는 능력을 지구에서 사용할 수 없다는 UN 협약에 따라, 슈퍼맨은 전세 3억 5천만 원으로 전셋집을 장만하고 오토바이를 타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살아간다. 2부는 '슈퍼맨의 위기1'로 채워진다. 전세를 살아가는 슈퍼맨은 집주인이 바뀌었다는 통보를 받으면서, 분식점을 운영하는 부부와 전세 사기 피해자가 되어가는 과정을 다룬다. 등기부 등본 열람 등 부동산 계약 관련 행정 지식들이 틈틈이 전달되는데, 부동산 박람회에 온 것 같은 장면들 파편적으로 보여진다.
3부는 지구인의 세상에 살아가기 위해 안전자산으로 생각했던 전세자금으로는 내 집 마련을 할 수 없다는 현실을 깨달은 슈퍼맨이 자본과 투자의 개념을 배우는 과정을 다룬다. 금융자본의 '정의(正義)'를 새로운 정의로 알아가는 슈퍼맨의 도전기가 펼쳐진다. 여기서 원더우먼은 부동산 투자 전문 일타 강사로 등장한다. '슈퍼맨의 위기2'에 해당하는 4부는 전셋집이 압류되면서 전세 사기 위기에 직면하는 슈퍼맨의 이야기다. 변호사들이 등장해 한국사회의 캡투자와 기획부동산들의 전세 사기와 경매 이야기를 쏟아낸 후, 피해를 막기 위한 정보들을 알차게 들려준다. 전셋집이 경매로 넘어가는 과정(전세반환소송, 내용증명, 상계신청, 임차권등기명령, 특약, 추징보전 가압류, 전세 피해자 증명)을 강의와 영상, 내레이터의 시선을 통해 전달한다.
5부 '슈퍼맨의 미래'에서는 전세 사기 피해자를 두 번 울리는 국가의 저금리 대출로 신축 빌라 매매를 부추기는 기획부동산들의 전화가 울린다. 슈퍼맨은 돈이 정의가 되는 한국사회에서는 하늘을 날 수 없다는 절망을 동요 <하늘의 나라>로 표현한다. 프롤로그에서도 들려줬던 동요 <하늘의 나라>에서 희망의 동산을 노래했다면, 에필로그에서는 주거가 아닌 부의 축적이 되어버린 한국사회의 '동산(動産)'을 노래한다. 한국사회의 동산(動産)은 서민들과 청년세대의 내 집 마련의 희망을 거세하는 부(富)의 동산이다. 이제 언덕에 올라 할 수 있는 것은 천사와 엄마의 얼굴을 마음 속에 그리는 것 뿐이다. 마지막 장면은 원더우먼, 슈퍼맨, 배트맨과 홍길동까지 등장해 빌라 사기 대마왕에게 격렬히 저항하는 대결 장면으로, 마치 에니메이션 더빙 장면처럼 연출된다. 슈퍼히어로들도 빌라왕에게는 당할 수 밖에 없다는 만화보다 더 만화같은 현실을 풍자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희망이 거세된 채 무기력해진 슈퍼맨은 진공청소기를 돌리며 휴지만을 빨아드릴 뿐이다. 돈이 정의가 된 사회에서 슈퍼맨의 진공청소기에 흡수되어야 할 것은 상식과 정의가 작동하지 못하는 부동산 관련 법과 정책, 정책입안자인 국회위원,투자전문가, 빌라왕이 아닐까.
<부동산 오브 슈퍼맨>은 모큐드라마라는 형식을 시도하여, 슈퍼맨의 전세 사기 피해담이 현실적으로 공감될 만큼, 한국의 부동산 정책 문제들을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비판적으로 다루었지만, 정작 슈퍼맨의 비애는 느낄 수 없었다. 예능프로그램의 시청이 끝난 후, 그 효과가 쉽게 소멸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것은 많은 장치들이 혼합되었기 때문인데, 때로는 슈퍼맨의 에니메이션 한 편, 특수한 사례를 담은 다큐멘타리, 부동산 실무 내용, 그 각각이 혼융되지 못한 채 환기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슈퍼맨의 오브 부동산>은 아픔보다는 캐릭터 설정이, 극보다는 정보가 더욱 전경화되었다. 슈퍼히어로라는 설정, 부동산 관련 정보, 슈퍼맨과 부부의 피해 사례가 평행적으로 나열되는 느낌이 강한 만큼, 김수정 연출 자신의 실제 경험과 미리 알았더라면 피해를 방지했을 정보가 극적으로 연결되기에는 담고 싶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극단 신세계의 배우들은 다큐와 연극무대를 왕복하며 캐릭터를 소화해 냈다. 특히 배우로서 김보경의 성장이 돋보였다. * 김수정 연출 <슈퍼맨 오브 부동산> 연극 리뷰는 연극평론(한국연극평론가협회) 12월 겨울호에 게제 된 원고를 일부 수정해 게재했음을 밝힙니다.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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