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면의 절반은 소나무, 절반은 초상화식으로 반신상 인물을 그린 '검선도'는 18세기 문인화가 이인상의 작품이다. 앞을 똑바로 응시하는 정면정관(正面正觀)의 엄숙한 포즈에 흔들림 없는 눈매, 꼭 다문 입이다. 푸른 건(巾)과 수염이 살짝 날리는 모습이 상쾌하다. 표정은 깐깐한 듯, 온화한 듯 절제돼있다.
주인공의 오른쪽 팔꿈치 아래에 칼자루와 칼날 윗부분이 조금 보인다. 그 위쪽으로 써 넣은 제화에서 검선을 그렸다고 했다. 인장은 '이인상인', '천보산인(天寶山人)'이다. 천보산은 이인상이 태어나 22세 때 서울로 이사하기 전까지 살았던 경기도 양주 고향의 산이다.
방(倣) 화인(華人) 검선도(劒僊啚) 봉증(奉贈) 취설옹(醉雪翁)
종강(鐘崗) 우중작(雨中作)
중국인의 검선도를 방하여 취설옹께 받들어 올린다. 종강에서 비 오는 날 그리다.
중국에서 들어온 검선도를 재해석해 취설옹께 그려드렸다. 검선은 중국 도교의 팔선(八仙) 중 한 명인 당나라 문인 출신의 여동빈이다. 팔선의 시조인 종리권을 만나 불사의 비결과 검술을 배워 신선이 됐는데 시도 잘 짓고 검도 잘 썼다. 그래서 문사의 옷차림에 무사의 검을 지녔다.
두 그루 노송이 주인공을 장엄한다. 곧은 소나무에는 둥치를 타고 올라간 넝쿨풀이 구불구불한 가지에 드리웠고, 또 한 그루는 사선으로 힘차게 뻗었다.
이인상은 20년 연상인 취설 유후에게 '검선도'를 헌정했다. 이덕무의 글 '유취설(柳醉雪)'에 의하면 유후는 "용모가 청수(淸秀)하고 성품이 맑았으며 수염이 아름다워 헌칠한 선인(仙人)의 기상"이 있어 당시 사람들이 지행선(地行仙)이라 했다고 한다. 지행선은 신선의 10가지 유형인 십종선(十種仙)의 하나로 지상의 신선이다.
왜 검선을 그렸을까? 유후의 세속을 초월한 풍모와 기상이 검선과 어울린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18세기 문인들에게 검은 외부의 적을 물리치는 살상의 무기라기보다 선비로서의 결기와 엄정함에 대한 상징으로 애호됐다.
유후는 이인상, 이덕무, 박제가 등의 명사들에게 가난 속에서도 깨끗한 정신으로 평생을 산 고매한 인격의 소유자로 존경 받았다. 이들은 뛰어난 재능을 지녔지만 서자였기 때문에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 불우한 처지였다.
이인상은 유후의 시에 차운한 시도 지었고 부채 그림도 선물했다. 마치 신선처럼 여겨졌던 한 인간의 고결한 삶에 대한 깊은 공감이 이인상의 득의작이자 시대를 초월한 은유적 초상화로 우리에게 남겨졌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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