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각과 전망] 나라는 넓고 매력도시는 많다

최경철 동부지역 취재본부장
최경철 동부지역 취재본부장

한 달여 전 근무지가 바뀌었는데 최근 10년간 기자는 조금 거창하게 말하면 '국토 대장정'을 벌여 왔다. 대구시민으로 오랫동안 살다가 서울특별시민이 됐었다. 그랬다가 세종특별자치시민도 돼 봤고, 요즘은 생활인구 개념으로 따졌을 때 포항시민으로 살아가고 있다. 아직 동서남북도 잘 모르는 초보 시민이지만 포항 하늘 아래 공동체의 일원으로 생활 중이다.

함께 일하는 후배 기자에게 약속 장소 가는 길을 몇 번 물었는데 "포항은 어디든 차로 15분 이내에 이동이 가능하니 안심하셔도 됩니다"라는 말을 건네 왔다. 정말 그랬다. 아침에 일어나면 포항 북구에 있는 집에서 남구의 사무실까지 5㎞ 거리를 차로 이동, 15분 만에 닿는다. 시내버스도 타 보고 있는데 휴대전화 앱으로 버스가 오는 시간에 맞춰 정류장으로 나가면 사무실까지 도보 이동을 합쳐 40분이면 충분했다.

대학 진학을 준비하는 고교생들은 '인서울'을 외치고, 구직자들은 '서울로'를 부르짖는 것이 일상이 된 상황에서 선망의 도시 서울, 그곳에서 서울특별시민으로 살았던 기억을 떠올려 보면 지금의 포항 생활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기자가 살던 서울 영등포시장 부근에서 출입처였던 청와대까지 거리는 13㎞쯤 됐다. 청와대 주차장이 협소하니 차를 몰 생각은 접어야 하고 지하철과 마을버스를 번갈아 타면 출근 시간이 1시간 넘게 걸렸다. 출근길 서울지하철 5호선은 항상 붐비고 청와대로 가는 마을버스도 콩나물시루에 가까웠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사람들의 고단하고 팍팍한 삶을 통계청조차 최근 이례적으로 조명하고 나섰다. 통계청이 이동통신사 데이터 등을 분석해 전국 직장인들의 통근 시간을 조사, 지난 21일 내놓은 자료를 보면 통근자 거주지 기준으로 전국에서 가장 통근 시간이 긴 곳은 수도권이었고 출퇴근하는 데 하루 평균 83.2분가량이 걸렸다. 수도권은 전국에서 평균 통근 거리(20.4㎞)도 가장 길었다.

통계청이 통근 시간과 거리를 이동통신사 데이터까지 들고와서 정밀하게 분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기자가 겪어 본 바로는 수도권 사람들의 '통근 지옥'은 드러난 수치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수도권은 남하를 계속해 이미 충청권까지 세력을 넓혀 놨다. 기자가 세종에서 근무할 때 세종과 서울을 오가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는 것을 체감했다. 새벽 5시가 조금 넘으면 세종에서 서울로 가기 위해 KTX가 서는 오송역으로 향하는 세종시민들로 인해 시내버스는 만원이 됐다.

자유시장경제 체제에서 수도권으로 달려가는 사회적 이동의 자유를 막을 수 없다. 하지만 명백한 시장의 실패가 있다면 정치가 개입해 오류를 바로잡아야 한다. 기나긴 통근 시간으로 인해 파김치가 돼 살아가는 수도권 사람들이 급증하고, 이런 반면 수도권이 대부분의 인적·물적 자원을 빼앗아 가면서 지방은 공동화하고 있다. 명백한 시장의 실패다.

짧은 시간 안에 목적지 도착이 가능한 이른바 '15분 도시'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포항이든, 구미든, 이보다는 조금 더 붐비는 대구든, 서울 말고도 매력 도시가 많다. 기자가 근무 중인 포항만 봐도 글로벌 기업 포스코의 본사 소재지이고 세계적 대학인 포스텍까지 자리해 세계 어느 유명 도시와 비교해도 도시 경쟁력이 밀리지 않는다. 굳이 매력 도시를 발명하지 않아도 된다. 두눈 크게 뜨고 매력 도시를 발견, 국가 주요 기능을 분산시켜 나가면 균형발전의 실패를 극복할 수 있다. 새로운 국회가 출범하는 내년에는 '발견의 정치'가 구현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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