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영일만항 북극항로 거점 도약 과제…11m 수심·부족한 항만시설 가장 큰 걸림돌

소형 컨테이너선 여러번 쓰면 유류·인건비 부담
전문가들도 영일만항 인프라 한계 지적…정부, 활로 모색 방안 내놔냐

포항 영일만항 터미널 레이아웃. 포항영일신항만주식회사 홈페이지 갈무리
포항 영일만항 터미널 레이아웃. 포항영일신항만주식회사 홈페이지 갈무리

항만의 성장은 물동량이 좌우한다. 화주와 선사들은 물동량이 많은 항만으로 갈 수밖에 없다.

경북 포항 영일만항의 현재 가장 큰 약점은 물동량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인입철도와 도심 우회도로를 깔아 해상과 육상을 잇는 교통 인프라를 마련했고, 항만 물류 기업을 입주시킬 배후산업단지를 조성했음에도 아직은 역부족이다.

경북 영일만항을 '북극 항로' 거점항으로 육성하자는 목소리 커지는 가운데 얕은 수심과 부족한 항만 시설이 최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북극 항로 거점항으로 선정된다 해도 대형 선사 유치를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정부의 관심과 대책 수립을 강하게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영일만항의 약점은?

영일만항의 수심은 11m에 불과하다. 부산항 등을 다니는 1만TEU급 대형 컨테이너선이 필요로 하는 수심은 약 20m로, 영일만항의 2배에 달한다.

현재 영일만항에 들어올 수 있는 배는 3천500TEU를 실을 수 있는 소형 컨테이너선이다. 이보다 3~4배 큰 규모의 컨테이너선 1대를 한번 운용하는 것이 소형 컨테이너선을 여러 번 쓰는 것보다 유류·인건비 등 돈을 더 아낄 수 있다. 대형 선주에게 영일만항은 매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경북도·포항시·포항영일만항㈜(이하 PICT)는 이를 해소하기 위해 지난해 연안선을 활용한 컨테이너 운송을 추진했다. 강원 동해항과 부산 북항을 연안선 2척이 오가는 사업이다. 이 항로를 통하면 국제 선사가 별도로 노선 취득을 할 필요 없이 해당 구간에 화물을 운송할 수 있어 물동량 증가에 대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이 사업도 코로나19와 관련 업체 부도 등을 겪으며 중단된 상태다.

일본에서 영일만항을 거쳐 러시아로 가던 마쯔다 자동차 운송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중단되면서 운송사가 경영난을 호소하고 있어 이 또한 골칫거리다. 이 물량은 영일만항 전체 물동량의 30%를 차지했다.

영일만항 배후단지 조성 계획도. 포항영일신항만㈜ 제공.
영일만항 배후단지 조성 계획도. 포항영일신항만㈜ 제공.

영일만항 물동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목재펠릿(동남아 국가 수입)의 경우는 육상 철로가 지난해 태풍 힌남노에 파손된 것 외에는 타격이 별로 없어 그나마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 현재 철로 보수작업 때문에 차량 등 대체수단이 이용되고 있으며, 내년 초 복구작업이 끝나면 정상 운송될 예정이다.

편의성 면에서도 영일만항은 부족하다. 항만에는 3만DWT(재화중량톤(t)수=선박이 적재할 수 있는 화물의 중량) 4척이 동시에 접안할 수 있는데, 영일망한 크레인은 안벽(하역용) 2대, 야드(이동용) 5대 등 7대뿐으로, 물동량 대응에 한계가 있다.

PICT 관계자들은 "현재 화물 처리량으로는 부족함이 없지만 다른 대형 항만에 비교하면 턱없이 작은 수준"이라고 하소연했다.

영일만항은 배후단지에 기업을 입주시켜 항만 물동량을 늘릴 수 있는 여건도 갖추고 있지만 현재 조성된 부지도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배후단지 공급예정지 126만㎡ 중 62만㎡는 조성이 완료된 상태로 분양 절차만 남았다. 그러나 울릉공항 건설을 위한 자재 적재 등의 용도로 이 부지가 사용되면서 분양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울릉공항이 완공되는 2026년 초쯤에야 부지 분양이 이뤄질 것으로 포항시는 보고 있다.

항만 운영 전문가들도 영일만항의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지난해 3월 한국항만경제학회에 실린 '포스트 코로나 시대 지역거점항인 포항영일만항과 배후단지 활성화 방안에 관한 연구' 논문에 따르면 영일만항은 ▷얕은 수심 ▷부족한 항만시설 ▷배후산업단지의 자유무역지대 미지정 ▷항만 네트워크 및 항차의 부족 ▷낮은 항만 서비스 품질, 통관 및 검역센터 비효율성 등의 약점을 갖고 있다.

영일만항의 운영을 위협하는 요인으로는 ▷인접 대형항만(부산항, 울산항)에 물동량 유출, 북극항로의 채산성 부족 및 환경문제 ▷코로나19로 인한 국제여객사업 중단 및 이를 이용한 물류 중단 ▷북한과의 요원한 관계 개선으로 환동해 사업의 정체 등이 지적됐다.

◆영일만항의 강점은?

이런 현실적 상황에도 불구, 이 논문을 보면 영일만항은 많은 강점을 갖고 있다. ▷배후단지에 철강, 배터리 산업 등 물동량 창출 산업 집적 ▷ 인입철도가 연결돼 환경친화적, 대규모 운송 가능 ▷포항항계 내 부두 기능 재조명 및 지속적 개발계획 ▷로로선(RO-RO, 철강 전용 운반 선), 페리, 크루즈 등 산업을 통한 여객운송 및 물동량 증대 인프라 구축 등이다.

북방항로의 거점항에 도전하고 있는 영일만항. 포항영일신항만㈜ 제공.
북방항로의 거점항에 도전하고 있는 영일만항. 포항영일신항만㈜ 제공.

기회 요인으로도 ▷러시아 극동항만의 적극적인 항만 인프라 확충 추진 및 시베리아 횡단 철도(TSR)와의 연계 가능성 증대 ▷환동해 교역 및 북극항로의 중심항만으로의 발전 가능성 ▷통합신공항과의 바다-하늘 연계를 통한 복합물류체계 구축 및 물동량 창출, 구주해상운임 폭등에 따른 TSR 이용 증가 등이 제시됐다.

이 논문 저자는 "신생 소규모 항만인 영일만항은 철재부두, 동해 최북단 컨테이너 부두 등의 다양한 포지셔닝을 갖고 있으나 결국 항로의 연결성과 배후권역이라는 관점에서 환동해권 중심항만의 정체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며 "동해안고속도로와 부산~유럽 아시안하이웨이를 연결해 북방교류협력을 선점함과 동시에 북방진출의 시작점을 포항 영일만항으로 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연안선 재개를 통해 글로벌 허브항인 부산항과의 경쟁이 아닌 협력 관계를 맺는 등 항만 활성화를 모색하고, 장기적으로 북극항로 거점항으로서의 기반을 확충할 수 있는 항로의 개설과 운영이 요구된다"며 "대형화주인 포스코와 협력해 프로젝트성 화물이 아닌 상시 화물 운송체제로의 전환도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부의 역할도 주문했다. 저자는 "포항권 내 무역항과 연안항을 국가단위 개발계획에서 장기적인 정책이 도출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부 정책과 반영의 현실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논문은 정부출연 연구기관인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의 우리 바다 현장 연구지원사업(Sea-Grant)에서 지원을 받았다. 제1저자는 곽동욱 경북대 대학원 무역학과 부교수, 공동저자는 이성우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선임 연구위원 등으로, 모두 4명의 저자가 논문에 참여했다. 이들은 해양수산부, 경북도, 포항시, 해양수산개발원 등 공공기관과 대구·경북지역 전문가 40여 명에게 설문한 결과 등을 분석해 이번 논문을 작성했다.

◆팔짱만 낀 중앙정부

경북도·포항시는 영일만항이 향후 진정한 환동해권 중심항만으로 성장하기 위해선 정부의 대규모 투자가 있어야 한다면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들 지자체는 PITC의 지분을 각각 10%씩 갖고 있는 주주이기도 하다. PITC 주주사는 이들 외에도 두산, 한라, 코오롱글로벌, 대림, 흥우건설, 포스코이앤씨 등이 3~29%의 비율로 지분을 갖고 있다.

포항시 관계자는 "영일만항은 현재 대구경북의 거점항이자 국제무대에서도 환동해권의 중심항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들에 가로막혀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며 "수심, 항만시설 확충 등 중앙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과 투자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한 주주사 관계자는 "사업에 투자한 것도 정부 눈치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했는데, 이제는 손실까지 떠안게 생겼다"며 "정부는 영일만항의 발전을 민간에 맡기지 말고 직접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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