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임터뷰] "10원을 넣어도 그건 나눔" 자선냄비 지키는 구세군을 만나다

김찬호 구세군 대구경북지방장관
거액 성금 넣고 사라지거나…고사리 손·지갑 털어 모금도
연말 이외 365일 나눔 활동…소외계층·해외구호 위해 온힘

22일 오후 5시경 상인역 지하철 입구. 김찬호 구세군 대구경북지방장관이 자선냄비 모금을 위해 종을 흔들고 있다.임소현 기자 hyoni@imaeil.com
22일 오후 5시경 상인역 지하철 입구. 김찬호 구세군 대구경북지방장관이 자선냄비 모금을 위해 종을 흔들고 있다.임소현 기자 hyoni@imaeil.com

유난히 추웠던 지난 22일. '땡그랑' '땡그랑' 귀에 익은 종소리가 대구 상인역 출구에 울려 퍼졌다. 소리를 따라 걸음을 옮겼더니 어렵지 않게 구세군 자선냄비를 찾을 수 있었다. 몇몇 시민들은 갈 길을 멈추고 주머니 속 동전과 지폐를 꺼내 넣었다. 두 볼이 빨개진 구세군은 쉼없이 종을 흔들기 바빴다.

"아휴~ 기자님 추우시죠. 그래도 모금하는 모습 직접 보니 참 아름답지 않나요? 많든 적든 금액은 중요하지 않아요. 나눈다는 이 모습에 저는 항상 감동을 받습니다" 김찬호 구세군 대구경북지방장관의 말에 기자는 문득 궁금해진다. 이들은 추운 날 밖에 나와 왜 이렇게 고생을 하는 걸까. 그리고 기자는 김 장관과 자리를 옮겨 꽤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눴다.

-구세군이라는 단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복지단체인가 생각했다. 그런데 단어 뜻을 뜯어보니 세상을 구하는 군대, 이런 뜻이더라. 그리고 사관학교도 있다고 하는데 어떻게 운영되는 곳인가?

▶구세군은 전 세계 134국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는 기독교 교회가 본체다. 아울러 전 세계 국제 구호, 개발, 사회복지를 하고 있는 NGO 단체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모든 이들을 구세군이라고 칭한다. 그중 나 같은 사관이 되고자 한다면 경기도 과천에 있는 구세군대학원대학교에 진학하면 된다. 이곳에 입학을 하면 학생들은 2년동안 기숙사 생활을 하며 공부와 훈련을 받은 뒤 구세군 사관으로 사역을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사관들은 군인처럼 제복도 입고 진급도 한다.

-김 장관은 어떤 계기로 구세군 활동을 시작하게 됐는가

▶우리 가족은 모두 구세군이다. 내가 8살 때 아버지가 구세군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셨다. 그러니 나는 8살 때부터 구세군이었다. '마음은 하나님께, 손길은 이웃에게'라는 구세군의 선한 마음이 좋았다. 나는 8남매인데 그중 6남매가 구세군 사관이다.

김찬호 구세군 대구경북지방장관은 올해 1월 대구경북본영으로 발령 받아 지역을 위해 힘쓰고 있다.임소현 기자 hyoni@imaeil.com
김찬호 구세군 대구경북지방장관은 올해 1월 대구경북본영으로 발령 받아 지역을 위해 힘쓰고 있다.임소현 기자 hyoni@imaeil.com

-8살 때부터 활동을 하셨다면 자선냄비 모금활동 경험도 많을 것 같다.

▶자선냄비 모금 현장은 삶을 나누는 현장이다. 한 겨울의 매서운 한파 속에 참여하시는 시민들의 모습을 보면 가슴이 따뜻해진다. 성금 할 때 이름을 써가지고 오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자선냄비야말로 진짜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는 기부다. 때때로 거액의 성금을 넣고 유유히 사라지는 분들도 계신다. 3~4일 전에 안동 자선냄비 거리모금 현장에 갔었는데, 어르신이 지갑을 여시더니 5만원짜리 한 장, 또 한 장, 만원 한 장 꺼내시더니 통에 다 넣으시더라. 지갑을 털어서 넣으신 것 같았다. 너무 감동이었다.

-요즘에 고물가, 고금리, 불경기가 겹치면서 기부의 손길이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든다. 그리고 현금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잘 없지 않은가.

▶그렇다. 그래서 구세군에서도 디지털 모금이나 ARS 참여를 독려하기도 한다. 이건 서울권에서만 시도 중인데 카드를 대기만 하면 결제가 되는 시스템을 시범운영 중이다. 교통카드랑 비슷한 개념이라고 보면 되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일부러 찾아와서 성금을 해주시는 분들도 많고 따뜻한 손길들도 참 많다. 전국으로는 17개 시·도 330개 포스트(장소)에서 자선냄비를 운영 중이고, 대구경북은 24곳에서 거리모금 중이다.

이 외에 어린이집을 찾아가서 모금 활동을 펼치는 '찾아가는 자선냄비'도 있는데 열기가 무척 뜨겁다. 올해 118개 어린이집에서 요청이 들어왔다. 모금액의 많고 적음을 떠나 아이들에게 어려서부터 나눔을 실천하게 하는 게 좋은 교육도 되는 것 같다. 아이들 고사리 같은 손에 돈을 쥐어 보내주는 학부모들에게도 너무 감사하다.

22일 오후 5시경 상인역 지하철 입구. 김찬호 구세군 대구경북지방장관이 모금하는 시민을 향해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임소현 기자 hyoni@imaeil.com
22일 오후 5시경 상인역 지하철 입구. 김찬호 구세군 대구경북지방장관이 모금하는 시민을 향해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임소현 기자 hyoni@imaeil.com

-그렇다면 자선냄비 옆에 서 계신 분들은 구세군인건가. 아니면 자원봉사자도 받고 있는 건가.

▶구세군도 있지만 자원봉사자 분들도 많다. 아까 우리가 만났던 상인역 포스트에는 달서구 통장 5분이 교대로 봉사해 주시고 계신다. 벌써 8년째다. 구세군 교회에 다니시는 분들도 아닌데 10년 가까이 봉사해 주시는 거다. 너무 감사하다. 봉사자들의 말을 빌리자면 춥고 힘이 들지만 시민들이 나눔에 동참하는 모습들을 바로 눈앞에서 본다는 게 참 즐겁다고 한다. 또 나눔에 조금이라도 동참할 수 있다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고 하시더라.

-'내가 기부한 돈이 어디에서 쓰이나' 이걸 몰라서, 아니면 혹시나 걱정돼서 기부를 꺼리는 분들도 있을 것 같다. 자선냄비 성금은 어떻게 관리되는가.

▶이 기회를 통해 알려드릴 수 있어 너무 기쁘다. 지방에서는 우선 거리에서 모금이 되면 매일 봉인된 상태로 각 계수처로 이동한다. 3명 이상의 계수인이 모여 정확하게 계수를 하고 다음날 은행에 들고 가서 계좌이체를 한다. 철저하게 허투루 빠져나가는 돈이 없도록 관리한다. 모금은 해마다 행안부 감사를 받고 있고 공식 회계법인을 통해서도 감사를 받는다. 3년마다 국제 구세군(영국) 감사팀도 감사한다.

상인역 자선냄비는 8년째 달서구 통장 5명이 교대로 봉사하고 있다. 김찬호(왼쪽)구세군 대구경북지방장관과 달서구 통장.임소현 기자 hyoni@imaeil.com
상인역 자선냄비는 8년째 달서구 통장 5명이 교대로 봉사하고 있다. 김찬호(왼쪽)구세군 대구경북지방장관과 달서구 통장.임소현 기자 hyoni@imaeil.com

-선거처럼 관리를 하는 것 같다. 이러한 과정을 시민들이 알게 된다면 모금을 하는 데 있어 걱정 없이 할 것 같다. 운영은 어떻게 되는가

▶운영에 대해 답하기 전에 이 이야기부터 해야 할 것 같다. 우리 구세군이 자선냄비로 워낙 알려지다 보니 연말에만 활동하는 단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꽤 된다. 거리모금이야 12월 한 달 집중적으로 하지만 365일 다양한 방법으로 연중 모금을 한다.

그래서 작년에는 83억원의 온정이 모아졌고 올해는 125억이 목표다. 모금된 성금은 구세군의 5가지 원칙(기초생계, 역량강화, 사회안전, 건강증진, 환경개선)과 7가지 영역(아동·청소년·청년, 여성·다문화, 소외계층·위기가정, 지역사회·기후변화, 해외심장병 어린이, 노인·장애인)에 따라 분배된다.

22일 오후 5시경 상인역 지하철 입구. 김찬호 구세군 대구경북지방장관이 자선냄비 모금을 위해 종을 흔들고 있다.임소현 기자 hyoni@imaeil.com
22일 오후 5시경 상인역 지하철 입구. 김찬호 구세군 대구경북지방장관이 자선냄비 모금을 위해 종을 흔들고 있다.임소현 기자 hyoni@imaeil.com

-구세군이 연말의 상징과도 같아서 평소에 하는 사업들에 대해서는 잘 모를 것 같다. 기억에 남는 사업을 소개해달라.

▶3월 중순부터 11월 말까지 대구역 광장에서 무료급식을 지원했던 '한끼드림' 그리고 경북지역에 문화 혜택이 적은 어르신들을 찾아가는 '행복학교'가 있다. 특히 행복 학교에서는 사관들이 어르신 집에 찾아가 칼도 갈아 드린다더라. (웃음) 이외에도 봉화군 산사태가 났을 때 이재민들 대상으로 무료급식을 한다든지 상수도가 없어 수질이 너무 나쁜 영덕군 낙평마을에 생수지원을 한다든지. 참 많다.

또 전국적으로는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했던 '긴급 지원사업'이 기억에 남는다. 재난지원금처럼 전용 체크카드(체리카드)를 발급해서 의료나 생계 등의 이유로 필요한 가정에 지원하는 사업이다. 아, 코로나 때는 마스크 모금도 했었다. 튀르키예 지진이나 우크라 긴급 구호 등 전 세계적 나눔에도 참여하고 있다.

김찬호 구세군 대구경북지방장관.임소현 기자 hyoni@imaeil.com
김찬호 구세군 대구경북지방장관.임소현 기자 hyoni@imaeil.com

-기사가 나가는 날이 크리스마스 당일이다. 오늘 이야기를 나눠보니 구세군은 누군가의 소망을 들어주는 산타 같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성탄의 기쁨을 즐기고 있을 우리 대구경북민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는가.

▶해마다 구세군 자선냄비를 기억하고 따뜻한 마음을 담아 줘서 진심으로 감사하다. 저희는 시민들의 마음을 전달하는 심부름꾼일 뿐이다. 보내주시는 성금과 성원을 구세군은 반드시 필요한 이웃들에게 전달할 것이다. 대구경북 모든 시민들에게 성탄의 기쁨과 평화가 가득하길 바란다. 다가오는 새해에도 하나님의 축복이 풍성하기를 소망한다. 메리 크리스마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가는길. 기자는 집 근처 자선냄비에 들르기로 한다. '다가가는 것이 부끄러워서' '액수가 적어 미안해서' 기자는 다양한 이유로 자선냄비를 숱하게 지나쳐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준비한 지폐를 당당하게 집어 넣는다. 그리고 김 장관의 말이 귓가를 계속 맴돈다. "10원을 넣어도 그건 나눔입니다. 다가와서 추우시죠 묻는 것도 나눔이고요. 또 기자님이 부끄러워서 행동을 못했던 그 마음도 나눔입니다. 생각보다 나눔의 범위는 넓습니다. 그리고 그 나눔들에 우리 구세군은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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