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반도체 수출의 전진기지로서, 대한민국 산업화를 견인하며 '낙동강의 기적'을 일궈왔던 구미 국가산업단지가 '변화와 혁신'으로 제 2의 도약을 예고하고 있다.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첨단 방위산업, 2차전지 등 스마트 전략산업으로 재편, 新성장 엔진을 다시금 가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미국가산단은 낙동강을 낀 지리적 이점과 풍부한 노동력을 바탕으로 섬유·전자산업 중심의 수출 전문 산업단지로, 경북을 넘어 국내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해 왔다. 하지만 삼성과 LG 등 대기업에 의존했던 호황기에 제대로 된 준비없이 대기업의 해외 이전이 본격화되자 침체기를 겪고 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의 흔들림 없는 국토균형발전의 정부 기조 ▷이철우 경북도정의 새 성장판 구축 ▷김장호 구미시정의 발빠른 구미산단 산업재편 노력 등이 구미산단의 미래를 밝게 하고 있다. 매일신문은 구미산단 산업구조 재편이 어떤 방향으로 진행돼야 할 지 두 편에 걸쳐 살펴본다.〈편집자 주〉
◆박정희 대통령이 '산업의 쌀' 곡창지대로 낙점
구미국가산업단지는 1969년 박정희 대통령이 첨단기술과 수출주도형 산업 육성을 위해 조성했다. 당시 전자공업진흥 8개년 계획 수립 후 4대강 유역 조사사업 자료를 토대로 전자공업 전문단지로 구미가 최적지라는 결론을 내렸다.
구미는 넓은 평야 지대로, 낙동강 등에서 풍부한 용수를 공급받을 수 있는 환경을 갖췄다. 경북·중부내륙·중앙고속도로, 경부선 등을 갖춘 교통 요충지로 접근성도 좋았다. 김천-칠곡-대구로 이어지는 IT 산업벨트가 형성돼 있어 국내 수출 거점으로 충분했다.
지난 50년간 구미산단의 주력산업은 크게 변했다.
1970년대~1990년대 섬유·전자·백색가전에서 2000년대~2010년대 IT·LCD·모바일·스마트기기·디스플레이로 산업의 중심축이 변화됐고, 현재는 반도체 소재부품, 방산, IT의료기기, 2차전지 등 차세대 전자소재 업종으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입주기업은 2천659곳(가동업체 2천152곳)으로, 가동률 70%를 기록했다. 전체 입주기업 가운데 기계·전기전자 업종이 1천835곳(69.01%)으로 비중이 가장 높다.
구미산단은 1산단 조성 이후 전자산업을 육성하며 연평균 34%씩 고속 성장했고, 1997년 단일 산업단지 최초로 수출 100억 달러를 달성하며 대한민국과 경북지역의 경제 중심도시로 성장했다.
하지만 2004년을 기점으로 생산액과 수출액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구미산단 생산액은 2004년 46조원으로 전국 산단 생산액(408조원)의 11.4%를 차지한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해 2022년 3.9% 수준에 그쳤다.
수출액은 2005년 383억달러를 달성해 전국 산단 수출액 대비 20.3%를 차지했으나, 2010년 초부터 대기업 생산라인 해외이전 등으로 급격한 하락 이후 점진적으로 감소, 2022년 230억달러로 전국 산단 수출액의 5.1%를 기록했다.
구미산단이 침체를 겪게 된 원인으로는 ▷대기업 하청 계열화 구조 ▷대기업 생산공장의 수도권·해외 이전 ▷노후화, 기반시설 부족 등으로 정주 여건이 악화되면서 청년층 근무 기피 ▷대기업 이탈 및 하청 계열화 해체로 기업 규모 영세화 ▷외부환경 변화 충격에 직접적인 타격으로 인한 회복력 저하 등을 꼽을 수 있다.
◆ '변신은 무죄', 구미산단 新 성장판 구축
전통 주력산업이 힘을 잃어가던 구미산단은 새로운 기회를 맞았다. 구미산단과 10㎞ 떨어진 곳에 대구경북신공항이 들어서고 반도체 특화단지, 방산 혁신클러스터 등 대규모 국책사업에 잇따라 선정됐기 때문이다.
먼저 총사업비 14조원의 대구경북신공항은 건국 이래 대구·경북 최대 사업으로 중남부권 항공물류 거점공항으로 추진된다. 공항이 들어서는 군위-의성과 공항배후 구미를 중심으로 경북 중서부권 산업지도에도 커다란 변혁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구미시의 경우 IT전자, 광학 등 고부가가치 제품이 주요 수출품목으로 2022년 기준 전체 수출액 298억달러의 53%인 158억달러를 항공물류(인천공항)에 의존하고 있다. 따라서 신공항 개항으로 기존 산단 입주기업의 물류비 절감뿐만 아니라 새로운 신성장산업 및 기업투자 유치에도 활기를 띨 것으로 전망된다.
반도체의 경우 구미산단은 SK실트론·LG이노텍·매그나칩반도체·KEC·삼성SDI·원익큐엔씨·엘비루셈 등 반도체 기업 344곳이 밀집해 있는 등 충분한 경쟁력을 갖췄다. 수도권 외 지역에 반도체 기업이 이 정도로 밀집한 곳은 구미가 유일하다.
산업용지·공업용수·안정된 전력 등 반도체 산업에 필요한 인프라도 완비돼 있다. 최근 반도체 특화단지 지정 후 처음으로 투자유치에 성공하는 등 반도체 특화도시로 도약하는데 한 걸음을 내디뎠다.
구미시는 방산매출 국내 2위 도시로서 K-방산의 중추적인 역할도 담당하고 있다. 전국 10대 방산 관련 기업 매출의 36%를 차지하고 있고, 구미시 전체 기업 대비 방산 관련 5개 업종 기업의 종업원수 비중은 7.8%, 매출액 비중은 6.9%를 차지하고 있다.
LIG넥스원, 한화시스템 등 방산 분야 대표기업과 234개 관련 중소기업이 입주하고 있는 데다 방산기업 원스톱지원센터, 구미국방벤처센터, 국방기술진흥연구소 산하 방산육성사업단 등 인프라가 구축돼 있다. 구미에서 생산되는 탄도탄 요격미사일 천궁-II 등 각종 무기체계가 세계 각국에 공급되고 있다.
이 같은 호재를 계기로 반도체, 방위산업, 2차전지 등 첨단산업 분야 대기업들의 투자도 이어지고 있다. 구미시에 따르면 현재 SK실트론(2조3천억원)·LG이노텍(1조4천억원)·LG BCM(5천억원)·한화시스템(2천억원)·원익큐엔씨(1천200억원)·LIG넥스원(1천100억원)·LS전선(1천억원)·아바텍(1천18억원) 등의 투자가 진행 중이다.
◆제 2의 낙동강 기적 일구려면
한국산업단지공단 경북본부가 분석한 '구미국가산업단지 마스터플랜'에 따르면 구미산단 산업구조를 재편하기 위해선 첨단특화산업을 육성하고 공간혁신으로 민간투자 중심의 완성형 자생생태계 선도 산업단지를 구축해야 한다.
구미산단 1.0이 '정부 주도의 산단 조성', '제조업 중심의 경직된 부지 용도 사용'이었다면 구미산단 2.0은 '지역·민간 주도의 산단 구조고도화'와 '근로자 중심의 유연한 부지 용도 사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선 기존 주력사업의 고도화가 필요하다. 대기업 중심 단일산업 수직협력형 구조를 가진 구미산단의 전기전자, 모바일 산업은 2010년 이후 주요 대기업 이탈 및 낮은 가동률 등으로 구조적 한계점에 봉착했다. 주력산업의 해외 제조 및 R&D기능의 수도권 집중은 불가피한 현상으로, 구미 산업의 신성장동력 확보, 네트워크형 상생협력을 통한 밸류체인 강화 등 혁신적 변화가 시급하다.
중소기업 역량강화도 필수다. 구미산단 내 지속 증가 중인 중소기업은 저성장 기조 및 양극화 현상, 디지털 전환 가속화 등의 환경변화에 대응이 미흡하나 자력을 통한 역량 확보에 한계가 있다. 이에 따라 스마트그린, 디지털 트윈 등 주력산업의 체질 개선을 통해 반도체, 방산 등 성장 유망산업의 공존을 통한 시너지 창출이 필요하다.
기존 주력산업 고도화 방안으로는 ▷기존 주력업종 중심으로 혁신 밸류체인 기업군 발굴 ▷영세 중소기업 대상 스마트공장 솔루션 등 디지털 전환 기술의 도입▷친환경 탄소중립 체계 구축 등이 있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도 반드시 필요하다. 신공항이 들어서고 반도체 특화단지와 방산 혁신클러스터로 각각 지정됐지만 후속 조치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성공을 보장할 수 없다.
김장호 구미시장은 "지난해 반도체 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 방산혁신클러스터 지정 등으로 구미산단을 첨단전략산업단지로 변모시키기 위한 초석을 확보했다"며 "구미가 지난 50여년간 국가 경제 발전을 위해 이바지한 만큼 구미 재도약을 위해 정부의 추가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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